[이현덕칼럼]도청 파문의 본질

“국민 여러분 안심하고 통화하십시오. 휴대폰은 감청이 안 됩니다.”

 지난 99년 9월 정부는 국회에서 휴대폰 감청의혹이 제기되자 이런 내용의 신문광고를 했다. 그로부터 6년여가 흘렀다. 지난 5일 국가정보원이 대국민 성명을 통해 휴대전화 도청사실을 공식 인정했다. 신문광고 내용이 거짓이었음을 정부가 이실직고한 것이다. 이후 옛 안기부 도청파문은 날이 갈수록 확산되고 있다.

 이제는 음모론까지 나왔다. 그 불통이 당장 정보통신부로 튀었다. 야당은 안기부 도청과 관련해 위증한 정부 관계자를 고발조치하는 방안을 검토한다는 방침이다. 진대제 장관은 이와 관련해 “이론상. 기술상으로 가능하나 현실적으로는 어렵다”고 말했다. 현실적으로 감청이 어려운 것은 사실이다. 기술적으로는 가능하지만 이를 위해선 부담해야 할 비용이 엄청나다.

 이번 일은 우리 사회에 불신의 그림자를 짙게 드리워 준다.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더니 맞는 말이다. 비밀을 무덤까지 가져가야 할 사람도 이를 사적으로 악용했다. 정부의 구성원도 사람이니 결국은 사람이 문제다. 그 사람의 본색을 파악하려면 함께 술을 마셔 대취해 보거나 돈거래를 해 봐야 한다고 말하는 이도 있다.

 정부와 정치권 등은 온통 이 문제에 매달려 있다. 이러다 보니 다른 현안은 뒷전이다. 여야는 특검이냐 특별법이냐를 놓고 세대결을 하고 있다. 얼마 전까지 경쟁적으로 목청을 높이던 경제살리기와 벤처활성화, 대·중소기업 간 상생협력, 통신과 방송융합, 남북 간 기술과 경제협력 등은 상대적으로 소흘히 하는 느낌이다.

 하루가 다르게 고유가 행진이 계속되고 미국의 금리인상, 중국의 한국 상품 베끼기와 기술 추격이 거세건만 관심 밖이다. 정부나 정치권 모두 도청파문의 이해 득실에 분주한 모습이다. 이러다가 경제가 아예 실종되지나 않을까 걱정이다.

 이번 도청의 본질은 간단하다. 국가권력이 개입해 정치인, 기업인, 언론인 등의 통화나 직접 대화를 불법으로 도청하고 이를 정치적 또는 사익(私益)용으로 악용했다는 데 있다. 다시 말해 ‘해서는 안 될 일’을 한 것이다. ‘해야 할 일’과 ‘해서는 안 될 일’을 구별하지 못한 자업자득이다. 감청은 국가안위를 유지하고 사회악을 근절하기 위한 불가피한 수단이다. 정부는 통신비밀보호법을 제정해 수사기관이나 정보기관이 적법한 절차에 따라 감청할 수 있도록 했다. 이것은 합법이다. 하지만 법에 따르지 않고 남의 대화나 통신을 도청했다면 당연히 불법이다. 이번 도청 대상이 누구이며 그 수가가 얼마인지는 알 수 없다.

 다만 당시 내로라하는 고위공직자, 정치인, 기업인 등으로 추측할 수 있다. 평범한 장삼이사는 도청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도청 대상이 된 사람들도 ‘해야 해야 할 일’과 ‘해서는 안될 일’을 명확히 했더라면 오늘의 화는 피할 수 있었을 것이다. 비밀은 자신이 지켜야 한다. 이도 저도 아니었다면 오금이 저릴 것이다. 밤잠도 설칠 것이다.

 국가정보원 해체를 주장하는 이도 있다. 그러나 정보가 없으면 개인이나 기업, 국가의 존립 자체가 위태롭다. 지금 세계는 정보전이 치열하다. 정보가 힘의 우열을 가리는 잣대다. 미국이 세계 최강의 위치를 지탱하는 원동력이 앞선 정보력에 있음은 다 아는 사실이다. 그런 점에서 이번 도청파문은 본질을 가려 냉철하게 처리해야 한다. 인기에 영합하거나 이해득실에 따라 처리하면 또 다른 재앙이 될 수 있다. 과거일에 매달려 미래를 준비는 데 차질을 빚게 해서는 안될 것이다. 그러자면 각자 ‘해야 할 일’과 ‘해서는 안될 일’을 명확히 해야 한다.

이현덕주간@전자신문, hd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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