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
지난 96년 국내에 시스템반도체 벤처들이 처음 모습을 드러냈을 때 아라리온, 아이앤씨테크놀로지 등 초창기 회사들을 중심으로 최초의 집적 단지 형성 시도가 있었다. 새롭게 등장한 산업이니만큼 협의회를 통해 의견도 모으고 공동으로 일을 처리하게 되면 ‘시너지’가 있지 않겠느냐는 의도에서다.
이에 따라 서초동에 작은 건물을 중심으로 업체들이 모이기 시작했고, 지난 2002년에는 본격적으로 확장해 현재의 서울 가락동 IT벤처타워에 ‘IT SoC 파크’라는 간판을 걸고 다시 오픈했다. 당시에 업체들과 협회만 모인 것이 아니라 한국소프트웨어진흥원의 IT SoC사업단도 같은 건물에 위치하면서 명실상부한 집적단지의 형태를 취하게 된다.
이후 국내 팹리스 산업이 이 단지를 중심으로 성장하게 되며, 이제 이 단지의 많은 업체들은 새로운 집적단지를 꿈꾸기에 이르렀다.
◇비용 절감이 당초 목적=집적단지가 형성되게 된 첫 번째 계기는 영세한 벤처업체들이 저렴한 사무실 임대 공간을 찾으면서부터다. 지난 96년 서초구 서초동에 ASIC지원센터에 정부가 지원하는 보육실이 있었고, 새로 생기는 업체들이 저렴한 가격으로 사무실을 쓰기 위해 하나둘씩 모였다. 서울 강남 지역이 벤처 열기로 부동산 가격이 급상승하면서 SoC 벤처 기업은 지난 2002년 가락동으로 이전한다. 포스코건설에서 대형 벤처타워를 지었고, 저렴한 가격으로 입주할 기회가 생겼다. 당시 쌍둥이 빌딩인 이 건물의 서관은 정보통신부 무선관리단이 구입사용하기로 했으며 서관에는 IT SoC사업단 등 정부 지원 조직과 업체들이 건물 한 층에 대거 입주했다. 시가의 절반도 안 되는 저렴한 비용으로 24시간 연구 개발 활동을 할 수 있었던 가락동 IT 벤처타워는 ‘IT SoC 파크’라는 이름으로 업체들이 모여들어 지금의 모습을 형성했다.
◇정부의 효과적인 자원 활용 사례=공간 문제 해결이 전부는 아니었다. IT SoC 파크는 적정한 공간을 저렴하게 확보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정부의 자원을 효과적으로 활용할 수 있었다. IT SoC사업단은 벤처기업이 구매하기에는 비싼 고가의 ‘반도체설계 툴’을 다수 보유하고 있었고, 업체들은 같은 건물 내에 이 시설이 있어, 개발을 보다 쉽게 할 수 있었다. 반도체 설계 툴을 활용하면서, 사람들의 교류가 많아지면서, 엔니지어들 사이의 정보교환도 활발해졌다. 설계 단계 외에도 사업단이 제공하는 시제품 제작 사업과 반도체 설계 후 검증 작업을 할 수 있는 공간에 쉽게 접근할 수 있다는 점도 집적의 효과로 꼽힌다. 이와 함께 인근 지역에 설립된 IT SoC아카데미도 시너지의 한 축으로 꼽힌다. 근무중에 잠시 시간을 쪼개어 인근 지역의 교육을 받을 수 있다. 또 게다가 IT SoC협회 등 이익단체 중심으로 업계의 의견을 모아 내는 것도 용이하다는 지적이다.
◇집적단지, 성장의 원동력=하지만 단순히 모인 것이 큰 의미를 갖는 것은 아니다. 공진흥 IT SoC사업단장은 “이제 EDA툴 등을 온라인으로 사용할 수도 있고 해서 과거와 같은 집적의 의미보다는 사업 측면에서 시너지 효과를 가질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기업에게 있어 정보는 돈이다. 모든 시스템반도체 관련 정보가 집적단지 주변을 흐르게 되고, 단지는 새로운 기술 흐름을 창출해 내는 역할까지 하게 된다. 궁극적으로는 전문분야별로 사업을 영위하는 기업 간의 기술 공동 개발, 시스템업체와의 분업화된 플랫폼 작업, 그리고 이를 한 단계 넘어 M&A를 통한 시너지 창출 등을 실현하는 기반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이는 진정한 의미의 클러스터가 조성되는 것. 주덕영 반도체산업협회 부회장은 “시스템반도체산업은 그 산업 자체의 발전 뿐 아니라 주변 산업의 성장에도 크게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며 “팹리스 클러스터는 창업보육·설계환경제공·테스트·웨이퍼 파운드리·시스템응용환경제공·국가 프로젝트의 알선 지원 등 산업 육성을 위한 원스톱 지원체제를 갖춰, 기업들이 똘똘 뭉쳐 미래를 개척해 나가는 장을 제공해야 한다는 것이 업계의 목소리”라고 전했다.
◆제2 집적단지 탄생은 필연
반도체 설계산업은 대표적 지식집약형·청정산업으로 분류된다. 특히 환경친화적이라는 특성 때문에 수도권 내에 집적단지를 조성하기에도 최적의 산업이다. 벤처기업이 주를 이루는 이들 기업에는 대학원 이상 박사급 인력이 타업종 기업에 비해 매우 높게 포진돼 있어, 지역사회 발전에도 매우 긍정적이라는 평가다.
송파구 가락동 벤처타워를 중심으로 조성된 팹리스 반도체설계업계 집적단지가 성공을 거두면서 제2, 제3의 집적화 단지에 관심이 모아 지고 있다. 현재 국내 팹리스산업의 발전 속도와 미래를 감안할 때 제2 집적단지의 탄생은 필연적이다.
업계에서는 판교·분당 지역이 시스템반도체 설계산업의 요람으로 조성된다는 것을 기정사실화하는 분위기다. 이미 분당·판교 지역에는 20-30여 개의 시스템반도체 설계업체가 모여있다. 여기에 최근에는 2006년 이후를 목표로 시스템반도체 설계산업 집적센터를 설립하려는 프로젝트가 진행되고 있다.
반도체산업협회와 반도체연구조합이 구상하고 있는 것은 시스템반도체 원스톱 솔루션 체계를 갖춘 ‘반도체 설계벤처 지원센터(가칭)’. 이 센터에는 △시스템반도체 설계벤처 창업센터 △설계지원시설 △클린룸 △테스트·분석 검증시설 등을 두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다. 이 사업은 이미 정부·반도체설계업계·패키징 및 테스팅업계·파운드리업계 등과 교감을 나눈 상태다. 또 IT SoC협회 회원사 가운데 판교에 둥지를 틀기를 원하는 20여 개 업체도 공동으로 분당·판교지역 이전을 검토하고 있다.
한편, 정부는 수도권 경쟁력 강화를 위해 서울과 인천, 경기도를 각각의 특성화 비전을 설정하고 산업클러스터 중심의 발전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이 가운데 경기지역은 7개 권역별 첨단·지식기반 산업을 육성해 실리콘밸리화를 검토하고 있는데, 경기동부의 경우 판교에 IT복합단지를 조성해 전국에 산재한 반도체·디스플레이 산업체의 연구지원 시설을 집적 키로 했다.
◆인터뷰-공진흥 한국소프트웨어진흥원(KIPA) IT SoC 사업단장
“IT SoC파크는 반도체 선진국인 대만에서 벤치마킹한 대상입니다. 앞으로 이를 더욱 발전시켜 강국으로 성장해야겠습니다.”
공진흥 IT SoC사업단장은 국내 시스템 산업이 한 단계 도약하기 위해서는 기존의 IT SoC파크 등을 중심으로 새로운 형태의 클러스터 형성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클러스터링의 요점은 저렴한 공간 사용 비용을 중심으로 해서 기발 시설을 효과적으로 활용하는 것입니다. 여기에 업체간 협력관계가 유기적으로 형성될 수 있도록 관련 프로그램들은 지원 조직에서 돌려줘야 합니다.”
그동안의 반도체 집적단지가 초기적인 모습일 뿐이라면 이제는 업체들의 기술 개발, 마케팅, 공동 구매 등을 통해 실질적으로 이익을 얻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 공단장의 생각이다. 그는 이를 위해 정부, 협회 등 지원 조직들은 다양한 프로그램을 마련하고 있다고 전했다.
공 단장은 “앞으로 특허 문제 등에 대해서 업체들이 공동 대처하며 멀티미디어 업체간의 협력이 될 수 있으며 복합 신호, 아날로그 업체 등과의 연계 등도 고민해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핀란드, 스웨덴 등은 벤처 간의 협력, 시스템업체와 벤처 간의 협력 등이 가능하도록 클러스터를 만들었으며 앞으로 생기게 될 반도체 클러스터에서는 이런 부분에 중점을 둬야한다는 지적이다.
공 단장은 “IT SoC아카데미가 주변 건물이 아닌 같은 건물에 있었으면 더 많은 시너지를 냈을 것”이라며 “앞으로 판교, 송도, 상암 등지에 추진하는 단지들은 단순히 모이는 단계를 넘어서 진정한 ‘윈-윈’이 가능해야할 것”이라고 귀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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