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인터넷에 떠돌던 중국 권법자들의 대련 동영상을 보신 분들이 많을 것이다. 1954년 마카오에서 불우이웃돕기 기금을 모으기 위해 당시 홍콩에서 유명했던 백학권의 고수 진극부와 태극권의 달인 오공의가 대련한 동영상이다.
동영상을 본 사람들의 반응은 대개 ‘저게 어떻게 고수들의 실력인가. 애들 싸우는 것보다도 못하다’, ‘중국 무술의 허풍이 드러났다. 혼자 연무할 때는 춤처럼 보기 좋지만 실전에서는 아무 쓸모도 없다는 게 저 영상으로 증명됐다’는 것이었다. 고수라는 사람들이 딱 어린애들이 싸울 때 그러는 것처럼 투닥거리는 것처럼 보이니 이런 이야기가 나올만도 하다.
중국무술을 수련한 사람들 중에서는 ‘고수들이 서로 안 다치게 하려다 보니 그런 식으로 싸우게 된 것이다’라거나 ‘그럼 실제로 싸울 때 무협영화에서처럼 아크로바틱한 동작을 보여주고 필살기를 쓰는 줄 아느냐’ 등의 반박도 나왔지만 대체로 분위기는 ‘웃긴다’는 쪽이었다.두 사람의 실력이 어떤지는 모르겠지만 이 대련이 무협사에는 아주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이 대련에 상상력을 자극받은 홍콩 사람 중 한 사람이 사흘 후부터 이 사건을 빌어 신문에 무협소설을 연재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 소설이 바로 ‘용호투경화(龍虎鬪京華)’고, 그 사람이 바로 양우생(梁羽生)이며, 그것이 바로 한동안 단절되었던 무협의 흐름을 다시 잇는 신파무협(新派武俠)의 출발이었다.
신파무협의 첫 작품, 그리고 첫 작가는 그러므로 양우생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양우생의 대표작품은 다음과 같다.
‘백발마녀전(白髮魔女傳)’, ‘평종협영록(萍踪俠影錄)’, ‘산화여협전(散花女俠傳)’, ‘연검풍운록(聯劍風雲錄)’, ‘대당유협전(大唐遊俠傳)’. 이 중에서 ‘백발마녀전’은 이제 고인이 된 장국영이 임청하와 함께 주연한 영화로 제작되기도 했다.양우생은 위와 같은 본인의 작품으로도 무협계에 기여 했지만, 또 다른 의미에서 무협계에 큰 영향을 미치기도 했다. 본인이 무협소설을 쓰는 것에 그치지 않고, 원래 취미가 있었던 친구 김용에게도 무협창작을 권한 것이다.
이리하여 1955년 김용의 첫 작품 ‘서검은구록(書劍恩仇錄)’이 태어났다. 3회에서도 언급했지만 천지회의 회주인 진가락이 당시 황제인 건륭제의 후궁 중 하나인 향비(香妃-특이하게도 조선 출신의 후궁으로 설정되어 있다)를 두고 건륭제와 삼각관계를 형성했다는 내용이다. 그래서 우리나라에는 ‘청향비’라는 제목으로 번역 출간된 바 있다.
김용은 한국에는 ‘영웅문 1부’로 잘 알려진 ‘사조영웅전’으로 인기 무협작가가 되었는데, 이후 친구와 함께 창간한 신문 ‘명보(明報)’의 판매를 위해서 ‘사조영웅전’의 후속편이랄 수 있는 ‘신조협려(神雕俠侶)’를 연재했다. 덕분에 명보는 오늘날 홍콩의 유력지가 되었고, 김용 또한 무협작가로서보다는 언론인으로서 성명하게 되었다.
김용은 따로 지면을 들여 소개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국내에는 가장 널리 알려진 무협작가다. 그의 작품은 대체로 역사무협적 경향을 띠고 있으며, 대표작품은 아래와 같다.
‘사조영웅전(射雕英雄傳)’, ‘신조협려(神雕俠侶)’, ‘의천도룡기(倚天屠龍記)’, ‘연성결(連城訣)’, ‘천룡팔부(天龍八部)’, ‘소오강호(笑傲江湖)’, ‘녹정기(鹿鼎記)’.
이 중 ‘소오강호’는 ‘소오강호’, ‘동방불패’ 등으로 영화화 되었고, ‘녹정기’는 주성치에 의해 코믹하게 각색되어 영화화 되었다. ‘사조영웅전’은 왕가위 감독에 의해서 재해석되어 ‘동사서독’이라는 영화로 만들어졌다.
‘동사서독’은 사실 ‘사조영웅전’을 재해석했다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영화는 그저 동사 황약사와 서독 구양봉, 북개 홍칠공이라는 이름만 가져갔을 뿐 ‘사조영웅전’의 내용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무협영화로서 ‘동사서독’은 큰 의미가 있다. 무협을 소재로 예술적인 표현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준 영화인 것이다. 혹자는 그걸 두고 ‘왕가위가 무협으로 시를 쓰려고 했다’고까지 평가하기도 한다. 김용의 팬들은 왕가위가 영화로 ‘사조영웅전’을 망쳐놓았다고 분노하기도 하지만.김용은 참으로 여러 가지 의미를 가진 작가다. 그는 물론 뛰어난 무협작가이며, 많은 추종자를 가지고 있다. 그의 작품들은 무협의 지평을 여러 모로 확장시켰고, 많은 독자와 작가의 눈을 넓히고 높였다.
그러나 김용이라는 별이 뿜어내는 빛이 너무 강하기 때문일까. 홍콩에서 김용을 뛰어넘는 작가가 나오지 않으면서 무협이 시들었던 것뿐 아니라, 대만 무협계와 심지어 한국 무협시장에서도 비슷한 일이 일어난다. 각각의 시장에 김용이 번역되어 들어가자 잠깐 눈부신 황금기가 찾아들었다가 급격한 쇠퇴를 맞이하게 된 것이다.
혹자는 이것을 일컬어 반 농담으로 김용은 한 무협 단계의 종말을 고하러 한 발짝 먼저 오는 저승사자라고까지 하고, 혹자는 김용이라는 작가의 능력이 워낙 출중해 일단 그 경지의 무협을 맛보고 난 이후에는 그보다 못한 다른 무협들을 볼 생각이 나지 않아 무협에 대한 열기가 오히려 시들해진다고도 한다.
홍콩이나 대만, 혹은 한국 무협의 쇠퇴기는 물론 꼭 김용 때문일 리는 없고 자체적인 이유가 있었지만, 어쨌든 한 가지만은 분명하다. 홍콩 무협의 거성 김용의 빛이 그만큼 밝고 강렬하다는 것이다.
김용은 1972년 발표한 ‘녹정기’를 끝으로 절필을 선언했고, 1994년 명보 그룹 회장직을 끝으로 신문사 경영에서도 은퇴하고 중국으로 건너가 버렸다. 중국 공산당은 그에게 절강대학 교수의 자리를 주고 해안에 별장까지 내주었다고 한다.
그가 간 이후 중국에서는 그의 작품세계를 재조명하고 각처에서 그의 작품들을 주제로 세미나가 열렸다. 현대에 이르러 중국 내에서 그의 작품은 문학의 새 지평을 연 것으로 인정되고 있다고 한다.
사실 공산화된 이후 그동안 중국 본토에서는 거의 무협소설이 창작되지 않았다. 대신 대만과 홍콩에서 출간된 작품들을 해적판으로 낸 것들이 돌아다녔을 뿐이었다. 그러나 김용이 건너간 이후로는 다시 창작이 시작되었는데, 대개는 구체적인 역사적 사실을 차용한 야담류의 분위기라고 한다. ‘서검은구록’이 딱 그랬던 것처럼.무협작가로 ‘대도오’, ‘생사박’, ‘혈기린외전’ 등의 작품이 있다. 무협게임 ‘구룡쟁패’의 시나리오를 쓰고 이를 제작하는 인디21의 콘텐츠 담당 이사로 재직 중이다.
<좌백(左栢) jwabk@freech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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