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6월 13일, 지구촌의 눈과 귀가 한반도에 집중됐다. 분단 이후 55년 만에 남북 정상이 두 손을 맞잡으며 첫 만남을 가졌던 역사적인 날이었기 때문이다. 마치 온 겨레가 그토록 염원했던 통일이 이뤄진 듯 가슴 뭉클한 순간이었다.
6·15 남북 공동선언 발표 이후 남북관계 추진 현황은 당시의 벅찬 감동과 기대에도 불구하고 북핵문제를 비롯한 정치·경제·사회·문화 전반에 걸쳐 이질화된 구조적 문제 등 현실적으로 선결해야 할 수많은 과제로 인해 힘겹지만 의미 있는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이러한 어려움 속에서도 우리는 남북한 경제교류의 물꼬를 트고 새로운 상생모델을 제시하고 있는 개성공단 개발사업은 물론이고 경의선·동해선 등 도로와 철도연결 공사를 차질 없이 진행, 지금은 육로를 통해 남북 간 인원·차량·물자의 원활한 왕래가 이뤄지고 있다. 금강산 관광사업 또한 전체 관광인원 100만명이 넘어설 정도로 활성화 단계에 들어섰으며, 향후 금강산특구 종합개발계획을 조기에 확정하고 활발한 투자유치 및 관광상품 다양화 등을 통해 안정적 성장 기반을 마련한다는 계획이다.
이 밖에도 남북관계 발전과 한민족 공동체로서 동질성 회복을 위한 학술·종교·지자체 등 다양한 분야의 남북 간 사회문화교류사업 추진과 함께 정부 및 민간 차원에서 식량, 보건의료, 어린이 지원사업 등 대북 지원에 적극 나서고 있다.
IT 분야도 예외는 아니다. 전략물자 북한 반출에 대한 국제 및 국내법의 제약에도 불구하고 남북 IT교류협력 활성화를 도모하는 각종 학술회의를 비롯해 실질적 협력방안을 모색하기 위한 움직임이 정부 주도에서 벗어나 민간 부문에서 구체화되고 있다.
그러나 이 같은 우리의 남북 교류 노선과는 달리 북한은 독자적으로 과학·정보산업 중시노선을 강화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북한은 작년부터 선진과학기술 도입을 위해 우리를 비롯한 전통적 우방국인 러시아·중국 외에도 미국·독일·스위스 등 서방국가들과의 대외 교류·협력활동을 확대 추진하고 있어 예의 주시할 필요가 있다. 이를 통해 북한이 얻고자 하는 것이 무엇이고, 향후 우리의 역할 변화에 따라 남북관계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더욱 구체적으로 가늠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실질적으로 지금까지의 남북 IT교류사업은 SW 공동 연구개발 및 하드웨어 조립·생산 등 주로 남한의 기술·자본·설비와 북한의 값싼 임금 및 공단입지 등을 결합하는 방식으로 추진되어 왔다.
최근 북한의 대외 과학기술 도입 주요 동향을 살펴보더라도 남북 IT교류 성과와 앞으로 방향을 신중하게 검토해 봐야 할 시점에 이르렀다. 북한은 경제기반 강화를 위해 남북협력 방식 외에도 선진기술 보유국가들과의 교류협력사업을 확대해 나갈 것으로 보여 향후 지속적으로 남북 IT교류를 추진하기 위한 새로운 패러다임의 협력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IT산업 육성에 주력하고 있는 북한의 이러한 정책 기조는 단기적 경제이윤 창출 차원이 아니라 IT를 통해 낙후된 경제 인프라 향상을 꾀하고 이를 통해 인민경제 현대화와 자립경제를 동시에 이루고자 하는 장기적 안목에서의 중요 국책사업이다.
하지만 우리가 추진하고 있는 남북 IT교류협력 사례는 대부분 실질적인 수익사업모델 개발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다. 우리가 통일 후 무궁무진한 IT 잠재시장으로 평가받고 있는 북한에 대해 현재 진행되고 있는 여러 대북사업의 독점적인 참여권을 인정받고 있다고 자만하는 등 앞에 놓인 치즈에만 눈이 멀어 더 큰 치즈를 발견하지 못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지는 않은지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 지금 당장의 경제논리를 앞세워 우리의 역할과 방향을 상실해서는 안 될 것이다.
◆백원인 (현대정보기술 사장) wonin@hi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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