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논단]자유주의와 디지털 정책방향

개인의 자유를 존중해 국가의 간섭을 최대한 줄이려는 사상을 자유주의라고 부른다. 자유주의자들은 권위주의적 통치방식이나 관료주의적 특권의식 등을 거부한다. 나아가 시민의 자유가 침해당하는 시대, 인권이 억압받는 사회는 더는 용납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이들은 자유주의야말로 세상을 다양성의 공간과 열려 있는 장으로 만든다고 확신한다.

 정보통신기술과 인터넷문명 역시 ‘따뜻한 디지털세상’을 희망하는 자유주의 관점에서 보면 복잡한 현안들의 정책방향을 의외로 쉽게 설정할 수 있다. 인터넷게시판 실명제는 익명성이 보장하는 표현의 자유를 억제하므로 정부는 가급적 인내하는 것이 좋다. 인터넷요금 종량제도 네티즌의 권익을 단순히 경제논리로만 규제하자는 것이므로 때가 이르다는 생각이다. 자유는 책임을 동반한다지만, 무책임이 지나치다는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지기 전에는 자유와 평등을 통제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모두 함께 디지털문명을 누리게 하려면 세대 간, 지역 간의 정보격차해소는 물론이고 노인과 장애우를 위한 특단의 대책을 세워야 한다. 통일한국에 대한 준비도 이르지 않다. 남북이 우선 IT로 만날 수 있다는 사고의 전환이 필요하다. 건전하고 안전한 사이버사회 구현에도 더욱 노력해야 한다.

 특히 정보인권이 중요하다. 삶의 권리를 침해하는 정보화라면 단호하게 거부해야 한다. 따라서 개인의 생년월일과 출신지역 정보를 노출시키는 현행 주민등록번호체계는 행정편의주의의 산물이므로 개정을 서둘러야 한다는 입장도 성립된다. 통신업계의 SMS문자 장기간 보관방침도 위험하다. 개인의 위치정보(LBS)나 전자태그(RFID)에 의한 구매정보의 악용 가능성만은 적극 막아야 한다. 인체관련 정보수집도 조심해야 한다. 전자정부의 성공을 위해서라도 ‘권위 높은’ 개인정보보호위원회의 발족이 시급하다. 디지털시대의 자유주의는 정보인권의 보호가 핵심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신자유주의까지 수용하자는 것은 아니다. 아니, 미국식 자본주의에 충실함으로써 맞게 된 우리의 경제 양극화 현실은 매우 안타깝다. 까닭에 중소IT기업 우대, 내수 IT시장 활성화, 지방 IT산업단지 조성, 소프트웨어산업 육성, 도·농 간 정보격차 해소, 전통산업의 정보화수준 향상, IT일자리 창출, 보편적 통신서비스의 확대 등은 IT 839전략과 함께 펼쳐가야 할 중요한 디지털정책으로 꼽힌다. IT가 ‘약육강식’의 세상을 ‘더불어 사는 세상’으로 바꾸어 주어야 한다.

 신자유주의가 허용하는 ‘부익부 빈익빈’만은 경계한다는 시각에서 정부의 규제관련 현안들에 관해서도 생각할 점이 많다. 예를 들면, 후발 통신서비스업계를 보호하기 위한 ‘비대칭 규제정책’의 필요성은 여전히 인정된다. 규제혁신은 오로지 국민복리와 소비자를 먼저 생각하는 정책으로 접근해야 한다. 뉴미디어에 대한 방송위원회의 정보통신부와는 다른 해석이 IPTV를 비롯한 통·방융합서비스의 개시를 지연시키고 있는 것이 안타깝다. 통·방융합은 중복규제가 가져오는 폐해를 최소화하는 데 중점을 두어야 한다. 민감한 사회현안일수록, 정치성을 배제한 연구와 공청회를 존중하는 열린 정책만이 자유주의적 이념과 합치한다고 믿는다.

 국가 IT정책을 논하면서 웬 이념이냐고 물을지도 모르겠다. 내 답은 오히려 이념이 없는 정책이나 철학이 없는 연구는 무의미하다는 것이다. 이상과 현실의 괴리를 좁히기 위해서라도 올바른 가치관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헌법에 명시된 자유민주주의가 IT정책의 기본이 된다면 디지털문명이 좀더 행복한 세상을 만들어 주리라고 확신한다. 내가 디지털 한국의 미래를 ‘잘’ 설계하자고 강조하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이주헌 (정보통신정책연구원장) johnhlee@kisdi.r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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