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협의 시초가 무엇인가에 대해서는 세 가지 설이 있다.
첫째, 사마천의 ‘사기열전’에 포함된 ‘자객열전’과 ‘유협열전’을 시초로 보는 설.
둘째, 당나라 때의 전기(傳奇: 기이한 일을 전한다) 문학 중 몇몇 무협적 이야기들. 보통 ‘홍선’, ‘규염객전’, ‘곤륜노’, ‘섭은랑’의 네 작품을 무협적 성격을 가진 전기의 대표작으로 꼽는다.
셋째, 소설적 형식을 갖춘 명나라 말기의 공안소설(公案小說: 공공의 안, 즉 재판 이야기다), 특히 후세에 ‘판관 포청천’의 원형이 되는 ‘칠협오의(七俠五義)’를 꼽는다.
첫 번째 설에 대해서는 ‘사기열전’이 ‘있을 법한 허구로서의 소설’이 아니라 ‘사실의 기록으로서의 역사서’라는 점을 들어 무협의 시초로 보기 어렵다는 비판이 있다. 두 번째 설 역시 전기 문학이 아직은 소설로서의 요건을 갖추지 못했다는 점에서 비판 받는다.
만약 무협소설이라는 범주로 한정한다면 세 번째 설이 가장 사실에 근접할 것이다. 하지만 소설을 포함하는 문화로서의 무협이라는 범주에서 생각한다면 첫 번째 설이 가장 유력하다. 뿐만 아니라 ‘사기열전’에는 ‘협’에 대한 가장 유명한 정의가 피력되어 있다.
사마천은 한비자를 인용하여 ‘협자(俠者)란 무로써 법을 어지럽히는 무리’라고 협객을 폄하하고 뒤이어 ‘그들의 말에는 반드시 믿음이 있고 행동에는 반드시 과감성이 있으며 이미 허락한 것에 대해서는 반드시 성의를 다한다.
그 몸을 돌보지 않고 남의 곤경에 뛰어들며, 벌써 생사존망의 어려움을 겪었어도 그 능력이 있음을 뽐내지 않으며, 그 덕을 자랑하는 것을 부끄럽게 여긴다’라고 긍정적인 측면도 기술했다. 이것이 협객의 가장 특징적인 성격을 보여준다.협객은 단순히 폭력을 휘두르는 불한당이 아니라 신의를 중시하고 남의 곤경을 돕는 자들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춘추시대의 사상가이자 그 자신 협객의 한 사람이었던 묵자(墨子)는 ‘협이란 자신을 희생하여 다른 사람을 이롭게 하는 것’이라는 이상적인 가치를 제자들에게 가르칠 수 있었던 것이다.
‘자객열전’과 ‘유협열전’에는 여러 가지 재미있는 이야기들이 있지만 아마도 가장 유명한 것은 진시황을 암살하려 한 자객 형가(荊軻)의 일생일 듯하다.
바람은 쓸쓸하고 역수(易水)는 차구나
대장부 한번 떠나면 다시 오지 않으리
風蕭蕭兮易水寒, 壯士一去兮不復還
이 노래는 형가가 진시황을 암살하러 떠나면서 부른 노래다. 얼마나 비장했던지 ‘듣는 사람들의 눈이 부릅떠지고 머리카락이 곤두서서 머리에 쓴 관을 찔렀다’고 사마천은 기록하고 있다.
그는 원래 위나라 사람인데 연나라로 옮겨가 살고 있었다. 당시 진나라에 인질로 잡혀 가있던 태자 단(丹)이 탈출했는데, 그는 원래 진나라도, 연나라도 강성하지 못하던 시절에는 훗날 진시황이 되는 진왕 정(政)과 함께 조나라에서 인질로 지내며 친하게 지냈다. 그런데 진나라가 강성해지자 단을 인질로 잡아와 푸대접을 함으로 해서 진왕 정에게 원한을 품고 탈출했던 것이다.
단은 귀국하자 진왕 정을 죽이지 않으면 연나라는 반드시 패망할 것이라 생각하고 연나라의 명망 높은 인사 전광에게 방법을 물었다. 전광이 자신은 이미 늙어 쓸모가 없으므로 다른 인재를 소개하니 그가 형가였다.
단은 전광을 배웅하면서 ‘이 사실을 절대 누설하지 말라’고 몇 번이나 당부한 모양이다. 전광은 형가에게 단의 뜻을 전하고는 ‘덕 있는 사람이 행동함에 있어서 남의 의심을 품게 해서는 안된다. 그런데 태자는 내게 비밀을 지켜달라고 몇 번이나 당부했다.
그러니 태자는 나를 의심하고 있는 것이다. 무릇 일을 함에 있어 남의 의심을 품게 해서는 절개와 협이 있는 사람이라고 할 수 없다’고 하고 자결해 버렸다.
이것 역시 자존심과 명예를 귀하게 여기고 목숨을 초개와 같이 여기는 협객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일화라 할 것이다.단의 앞에 나간 형가는 두 가지를 요구한다. 당시 진왕 정을 배신하고 연나라로 망명 와있는 진나라 장군 번어기(樊於期)의 수급과 연나라의 곡창지대인 독항의 지도였다.
독항의 지도를 바친다는 것은 곧 연나라를 바친다는 뜻이다. 즉, 무조건 항복의 의미를 갖는다.
태자 단은 독항의 지도는 내줄 수 있지만 번어기 장군의 수급은 줄 수 없다고 거절한다. 피신해온 사람을 죽일 수는 없다는 이유에서다. 형가는 번어기 장군을 직접 찾아가 말한다. 진왕 정을 죽일 방법이 있는데 그러려면 당신의 수급이 필요하다. 번어기는 두 말 않고 목을 찔러 자살한다.
이것 역시 원한이 있으면 반드시 보복해야 한다는 협객의 가치관을 보여주는 일화다. 진왕 정은 그가 탈출한 후 그의 일족 전부를 참살하였던 것이다.
이래서 두 가지 예물을 챙겨 들고 형가는 진나라로 떠난다. 그때 배웅 나온 사람들 앞에서 부른 노래가 위의 풍소소혜역수한이다. 성공해도 어차피 그 자리에서 참살될 것이기 때문에 돌아올 수 없는 길임을 알고 떠나는 것이다.
여기서 협객이라면 반드시 지켜야할 절대 가치가 드러난다. 남의 부탁을 받아 하기로 했으면 목숨을 바쳐서라도 수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역시 ‘자객열전’에 실려있는 예양의 일화에서도 공통적으로 강조되는 가치다. 이른바 ‘무사는 자신을 알아주는 자를 위해 죽는다’는 것이다.
잘 알려졌듯이 형가는 실패한다. 분노한 진왕 정은 장군 왕전에게 군사를 맡겨 연나라를 정복하고 태자 단을 죽인다. 연나라가 망한 그 이듬 해 드디어 중국은 통일되고 통일제국 진의 왕 정(政)은 진시황(秦始皇)이라는 이름으로 자신을 칭한다.
우리나라에서는 개봉되지 않았지만 ‘현 위의 인생’, ‘패왕별희’의 감독으로 유명한 첸카이거가 1998년 이 형가의 이야기로 영화를 만들었다. 제목은 ‘형가자진왕(荊軻刺秦王)’, 형가가 진왕을 찌르다라고 해석할 수 있다.
이보다 후인 2003년, ‘붉은 수수밭’, ‘진용’의 감독 장이머우가 ‘영웅’이라는 영화를 만들었다. 그는 이연걸을 주연으로 기용해서 진시황을 암살하려는 자객 무명(無名)을 연기하게 했는데, 형가 이야기와는 여러 가지로 다르지만 결국 형가가 진시황을 암살하려고 시도했던 이야기를 변주한 것이다.
특히 영화 ‘영웅’은 무협영화의 정통성을 홍콩으로부터 되찾기 위한 중국 본토출신 감독 장이머우의 야심이 드러난 영화라고 개인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세 번이나 반복해가면서 각기 다른 모습으로 변주된 결투장면들은 ‘봐, 이게 진짜 무협이야.
나만큼 멋지게 찍을 수 있어?’라고 하는 장이머우의 목소리가 배어있는 듯했다. 그리고 자객 형가의 이야기를 변주한 것도 재미있다. 마치 무협의 시초는 바로 이 자객 형가의 이야기라고 말하는 듯해서였다.무협작가로 ‘대도오’, ‘생사박’, ‘혈기린외전’ 등의 작품이 있다. 무협게임 ‘구룡쟁패’의 시나리오를 쓰고 이를 제작하는 인디21의 콘텐츠 담당 이사로 재직 중이다.<좌백(左栢) jwabk@freech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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