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 정부 시절 ‘문화대통령’이 탄생하면서 영화계는 한껏 기대에 부풀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외환위기 사태를 맞아 정부는 국가 부도를 막느라 영화계를 돌볼 겨를이 없었고, 기존 영화계 재원이었던 삼성·대우·SKC 등도 영상사업에서 철수했다. 한국영화가 오랜 침체기에서 벗어나 도약하려던 시점에서 제작자본의 공백이 생긴 것이다.
예전 같으면 정부에서 긴급예산을 지원하면 간단히 풀릴 일이었지만 국가부도라는 비상 사태라 정부도 정치권도 영화계도 안타까워할 뿐이었다. 이때 영화계에서 낸 아이디어가 영상투자조합(펀드) 제도였다. 마침내 60억원 규모의 영상펀드가 결성돼 ‘쉬리’ 등에 투자되면서 분위기를 고양했으며, 영화산업을 서비스업에서 벤처산업으로 대우하는 등 간접 지원정책이 잇따라 발표돼 실의에 빠진 영화계에 희망을 주었다.
2000년과 2001년에 걸쳐 총 2000억원 규모의 23개 영상투자조합이 결성돼 한국영화 제작자본의 주류를 형성했다. 영화계도 ‘친구’ ‘JSA’ ‘실미도’ ‘태극기 휘날리며’ 등 대박영화와 임권택 감독 등 세계영화제 수상자를 배출하며 정부 지원에 보답했다. 이제 한국영화는 전국민의 관심사요, 아시아가 부러워하고 전세계가 주목하는 분야가 됐다.
그런데 한국영화산업 진흥의 견인차 구실을 했던 영상펀드 대부분이 올해로 시한이 만료된다고 한다. 영화 제작자본에 또 한 번 위기가 찾아온 것이다. 다행히 지난해 말 국회 미래전략특별위원회는 ‘영상산업도 미래전략산업’이라는 이름으로 영화계의 사정을 청취했으며, 중소기업청·재정경제부·문화관광부 등 관계 부처와 논의해 간접지원에 나섰다.
이때 영화계에서 요청한 내용은 정부 출자 1500억원, 민간 출자 1000억원을 합해서 2500억원 규모의 신규 영상투자조합을 결성하자는 것이었다. 특히 영상산업 특성상 올해 상반기에 지원을 받아야 하반기에 제작해 내년 상반기부터 상영할 수 있으므로 결성 시기를 앞당겨야 실효성을 거둘 수 있다고 입을 모았다.
그러나 여전히 전망은 밝지 않다. 얼마 전까지 중소기업청이 1조원 규모의 모태펀드 조성 정책을 대대적으로 발표해 영화계는 안심하고 있었지만 지난 4월 말 1차로 IT·벤처 등을 모두 합해 600억원을 배정한다는 발표가 나오면서 예년보다 훨씬 많은 영상투자조합을 준비하던 영화계와 벤처캐피털업계를 안타깝게 만들었다. 특히 모태펀드 중에서도 영상펀드에는 70억원 정도만 배정한다는 얘기가 흘러나와 예전의 100억원 규모와 달리 200억원, 300억원 펀드를 계획하고 있던 업계를 허탈하게 하고 있다.
지금 한류로 온 나라가 들썩이고 있는데 ‘겨울연가’를 비롯한 한류 콘텐츠가 언제 기획되고 제작됐는지를 돌아보자. ‘겨울연가’는 수많은 드라마 가운데 하나요 방송사가 투자를 기피했던 작품이지만 다양한 콘텐츠 중 하나로 기획·제작됨으로써 큰 반향을 몰고 올 수 있었다. 즉 한류열풍을 지속하기 위해서는 바로 창작자들이 다양하고 새로운 작품을 계속 만들 수 있도록 제작환경 조성이 최우선으로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다.
단지 한류 스타를 기용해서 손쉽게 제작하는 흐름으로 간다면 90년대 홍콩영화와 같은 운명을 맞을 것이며, 후속 문화 콘텐츠가 받쳐 주지 않으면 한류는 지속될 수 없다고 단언한다. 또 한류열풍의 그늘에 가려 수많은 시나리오 작가·감독·기획자·제작자·스태프가 투자자본 없이 열악한 환경에서 창의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게 영상산업 현장의 현실임을 감안할 때 우선적으로 창작을 할 수 있는 제작재원들이 갖춰져야 한다.
지금 한국의 문화산업은 부흥기 단계에 와있다. 옛말에 ‘바람 불 때 배 띄우라’는 말이 있듯이 지금 정부가 열의를 갖고 지원하면 문화 콘텐츠 생산자들은 더욱 분발해 더 좋은 작품을 만들어낼 것이며, 문화산업이나 한류도 한 단계 업그레이드될 것이다.
◆유인택 기획시대 대표 yit202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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