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휴대폰 시장을 가다

모스크바 시내에 들어서면 두 가지에 놀란다. 하나는 사회주의 국가임을 무색케 할만큼 시내 빼곡히 들어차 있는 옥외 상업용 광고판. 다른 하나는 도로변, 가로등, 건물외벽 등 시내를 도배하고 있는 이 광고판들의 대부분이 언제부턴가 삼성전자에 점령됐다는 점이다. 모스크바 시내의 광고판 수는 이곳 주민들보다 많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나라의 명동 격인 모스크바 시내 중심부 트레르스카야에서 레닌그라드스키에 이르는 약 2.5km의 거리엔 20m 간격으로 삼성전자의 ‘블루블랙폰 D500’ 광고가 내걸려 있다. 러시아 사람들은 부지불식간에 조석(朝夕)으로 삼성전자 광고에 세뇌(?)당하고 있는 셈이다.

지난해 이후 삼성전자는 러시아 휴대폰 시장에서 제왕 자리에 올라있다. 이미 1000만대 이상이 팔려 나갔고, 지난 4월엔 러시아 국민브랜드로까지 추앙받고 있으니 어찌보면 이 같은 현상은 당연할 일인지도 모른다.

5월9일 러시아는 연합군의 2차대전 승리 60주년을 맞아 세계 52개국의 정상을 초대해 유래없이 성대한 전승기념 행사를 치렀다. 7일부터 10일까지는 세계 정상이 모인 모스크바 시내를 완전 봉쇄해 일반인들의 출입을 막았다. 심지어 모스크바 거주 주민들까지 이 기간동안 휴가기간이란 명목으로 시 외곽으로 옮겨놨다. 우리나라에선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다. 노무현 대통령도 행사에 참석키 위해 8일 수행원들과 함께 입국, 사흘간 이곳에 머물렀다. ‘연합군의 전승’ 의미와는 별도로 우리 기업의 ‘러시아 휴대폰시장 전쟁승리’에 대한 쾌감도 한껏 만끽했을 법하다.

삼성전자는 러시아 휴대폰 시장의 맹주로 군림하던 모토로라와 노키아를 제치고 2004년 1분기부터 러시아 휴대폰 부문 매출 1위에 올라선 뒤 지금까지 1위 자리를 놓치지 않고 있다. 2004년 3분기부턴 매출과 판매대수 모두 1위를 기록중이다. 1997년 이 시장에 처녀 진출한 이후 7년만의 쾌거다.

고가 제품을 중심으로 한 삼성전자의 프리미엄 브랜드 전략은 이곳에서도 적중했다.

2004년 기준으로 평균가격지수(API·전체 제품의 평균가격을 100으로 놓고 산정한 수치)를 낼 때 삼성 휴대폰의 API는 128인데 반해 노키아는 110, 지멘스는 81, 모토로라는 75다. 삼성 휴대폰 2대는 경쟁사의 3대와 같은 효과를 낸다.

지난해말 800달러에 출시돼 인기를 얻고 있는 ‘D500’은 최근까지 400∼500달러에 팔리고 있다. 러시아 중산층의 월 평균임금이 300∼400달러 수준임을 감안하면 삼성의 선전은 가히 경이적이다.

현지 통역을 맡은 유학생 신찬호 씨는 “한국인으로서 삼성 휴대폰에 욕심이 생기지만 경제사정이 뻔한 유학생 신분에 삼성제품은 그림의 떡인 셈”이라고 말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러시아 사람들 4명중의 1명은 삼성 휴대폰을 쓴다. 러시아 사람들 사이에선 삼성 휴대폰이 비싸도 제값을 하는 폰, 비쌀만한 이유가 있는 폰으로 이미 각인돼 있기 때문이다.

인구 1억5000만명인 러시아의 이동전화 가입자수는 2004년말 기준으로 전체인구의 46%인 6900만명 수준. 올해말엔 62%인 9000만∼9300만명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러시아 휴대폰 시장 점령군인 삼성전자 입장에선 러시아가 황금어장이자 성공의 땅인 셈이다.

최근 아무런 정보없이 가장 선호하는 브랜드를 묻는 ‘비보조 브랜드 인지도 조사’에서 지난해 삼성전자는 70점을 얻어 종전까지 부동의 1위를 지켜오던 소니(56점) 마저 큰 격차로 따돌리며 압도하고 있다.

크레믈린에서 5분거리인 삼성 갤러리아 홍보관을 찾은 현지인 드리미트 렝코 씨는 “이곳 젊은 이들은 삼성의 명성을 잘 알고 있다. 디자인과 성능이 좋다. 가지고 있던 삼성 휴대폰을 얼마전 잃어버려 새로 장만하려고 이곳을 찾았다.”고 말했다. “사용해 봐서 알지만 앞으로도 삼성 제품을 사겠다.”며 “친구들 사이에선 삼성을 포함해 LG, 팬택 등의 제품도 일본과 동급의 기술력을 가진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올해는 더 많은 수의 러시아 사람들이 삼성전자를 비롯한 한국산 휴대폰의 포로가 될 게 확실하다.

모스크바(러시아)=최정훈기자@전자신문, jhchoi@


브랜드 뉴스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