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지영기자의 ‘프리스타일’ 고수에게 배운다<상>- 전설의 가드 ‘화랑’을 만나다

속에서 천불이 났다. 겉잡을 수 없는 불기둥이 얼굴까지 화끈 거리게 했다.

25 대 0. 화랑은 ‘버저비터’까지 그것도 3점으로 장식했다. 참담한 패배였다. 어떻게…. 예상은 했지만, 한골도 넣지 못하는 상황에서 말문이 막혀버렸다.

한편으로 괴씸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초면에 첫 게임인데 이렇게 무참하게 짓밟아야 직성이 풀리냐고 따지고도 싶었다. 하지만 화는 내가 자초했다.

“봐주는 것 없어. 일단 한번 붙어보자고….”

화랑을 만나자 난 대뜸 정면승부를 신청했다. ‘프리스타일’ 최고수의 실력이 과연 어느 정도인지 시험해보고 싶었다. 내 실력도 가늠할 요량이었다. 그 결과는 25대0. 키득키득거리는 사진기자 H의 웃음소리가 유난히 귀에 거슬렸다.

화랑. 온라인 농구게임 ‘프리스타일’의 최고수. 현재 조이시티 파란리그 4강 진출. 본명은 김용훈. 나이 26살의 이팔 청춘. 인터넷업체 기획부장….

앳띤 얼굴의 그와의 첫 만남은 분노와 부끄러움으로 뒤범벅이 됐다.레이싱게임 ‘카트라이더’가 한참 주가를 올리던 올해 초. 난 ‘카트’보다는 ‘프리스타일’에 빠졌다. 원래 스포츠게임을 좋아한 것도 이유였지만, 길거리 농구하면 떠오르는 ‘일탈’과 ‘자유본능’의 이미지가 왠지 멋있어 보였다.

물론 더게임스에서 ‘게임치’로 통하는 나로선 레벨업은 그렇게 중요하지 않았다. 그래도 지난달 내 캐릭터 ‘XX녀(풀네임은 비밀임)’가 레벨6으로 업그레이드 됐을 때 난 스스로 얼마나 대견스러워 했는지 모른다.

지난주 기획회의때 ‘고수에게 배운다’ 코너에 ‘프리스타일’을 다루자고 혼자서 우긴 것도 이같은 이유였다.

그러나 화랑을 만나면서 ‘짝사랑’은 물거품처럼 허망하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꼈다.

화랑은 먼저 내 캐릭터를 새롭게 단장했다. ‘고수에게 배운다’ 코너 연재를 위해 ‘프리스타일’ 개발사 제이씨엔터테인먼트는 내게 새로운 캐릭터를 빌려줬다.

이름하여 ‘fstester57’. 레벨25에 여자 슈팅가드 캐릭터였다. 레벨6의 원래 내 캐릭터로는 쓸 수 있는 기술이 너무 제한적이라 어쩔 수 없는 조치였다. 슈팅가드를 선택한 것은 나의 스승이 될 화랑의 포지션이 바로 슈팅가드였기 때문이다.

화랑은 내 캐릭터에 노란 반팔 점퍼와 분홍 주름 핫 팬츠를 입혔다. 하얀 면티에 곤색 바지를 입고 있던 예의 캐릭터는 어느새 예쁘고 섹시한 캐릭터로 탈바꿈 했다. 점퍼는 길지만 핫팬츠가 너무 짧아 얼핏 보면 바지를 입지 않은 것 같기도 했다.

“프리스타일에서 캐릭터를 꾸미는 아이템은 무조건 예쁘다고 좋은 것이 아니에요. 아이템마다 특정 스킬을 올려주는 보너스가 숨어 있어요. 점퍼는 슈팅가드의 생명인 3점슛과 레이업슛 능력치를 올려줘요. 핫팬츠는 스틸과 블록 능력치를 높여주고요.”

화랑은 예쁜 캐릭터에 동한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본격적인 강연을 시작했다.그는 ‘프리스타일’은 게임이지만 실제 농구와 거의 흡사하다고 강조했다. 다만 레벨업과 아이템 장착 여부에 따라 캐릭터 능력치가 좌우되는 만큼 오랜시간 게임에 투자한 유저가 유리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다행히 내가 받은 캐릭터의 레벨은 25. 화랑의 레벨42에 비하면 절반밖에 안 되지만 게임속에서 이 정도면 중상위권은 된다고 화랑이 귀띔했다.

캐릭터 치장이 끝나자 화랑은 자신의 길드원들에게 메시지를 날리기 시작했다. 3대3 팀플레이를 한번 해보자는 것이었다.

화랑이 속한 길드는 ‘The Basket’이다. ‘프리스타일’ 조이시티 서버 가운데 고수가 많기로 유명한 길드다. 화랑의 메시지를 받은 길드원들이 속속 들어왔다. 화랑과 난 같은 팀으로 경기에 임했다.

얼마나 긴장했는지 손가락에 땀이 다 났다. 방향키가 미끌어져 머뭇거리는 사이에 공을 빼앗기는 아찔한 상황이 심심찮게 연출됐다. 난 실수를 만회하기 위해 외곽에 머물며 슈팅가드의 필살기인 3점슛을 노렸다.

그러나 회심의 3점슛은 번번이 상대의 블록에 가로막혔다. 빼앗기고 막히고의 연속. 결과는 30대17. 가까스로 더블스코어는 면했지만 농락당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그것도 최고수 화랑과 같이 싸웠는데 말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오픈 찬스를 만드는 거에요. 수비수가 가로막고 있는데 3점슛을 남발하는 것은 자살행위나 마찬가지에요. 누누히 강조하지만 농구의 원리를 떠올려 보세요.”

화랑이 약간 흥분한 듯했다.

슈팅가드하면 ‘회심의 3점슛’이 떠오른다. 그러나 화랑의 설명은 달랐다. 3점슛도 찬스가 만들어졌을 때에만 작렬한다는 것이다. 현재 조이시티 3점슛 1위인 화랑도 3점슛 성공률이 45% 정도 밖에 안된다고 말했다.

대신 화랑이 강조한 것은 어시스트다. 포워드나 센터에 비해 발이 빠른 가드는 순발력을 이용해 오픈이나 나이스패스 상황을 쉽게 만들 수 있다는 것. 수비수가 없고, 나이스패스가 연출된 상황에서 슛은 어김없이 들어간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었다.두번째 팀플레이전이 시작됐다. 3점슛을 자제했다. 화랑의 말처럼 빠른 패스로 우리편의 슛찬스를 만드는데 온통 정신을 집중했다. 우리팀은 제법 손발이 잘 맞았다. 초반 ‘시소게임’처럼 엎치락 뒷치락하던 경기는 중반부터 화랑의 3점슛이 작렬하면서 우리쪽으로 완전히 기울었다. 34대25. 첫번째 경기와 정반대 스코어가 나왔다.

“바로 그렇게 하는 거에요. 슛을 넣겠다는 욕심보다 찬스를 만들겠다는 생각이 중요해요.”

화랑이 금새 잘 한다고 치켜세워줬다. 그러나 여전히 수비가 불안하다고 했다. 가드는 일단 상대 슈팅가드의 3점슛 찬스를 철저하게 봉쇄해야 하고, 빠른 발로 패스루트를 차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스틸 하나는 3점슛보다 더 값져요. 패스루트 차단과 블록에 대해 많은 연습이 필요할 거에요.”

3번째 팀플전마저 27대21로 이기면서 자신감은 충만했다. 그래서 화랑과 헤어지기전에 다시한번 1대1 정면승부를 신청했다.

“이번에는 만만치 않을 것이다. 이제 몸이 풀렸거든….”

그러나 결과는 예상대로 였다. 3점슛을 하나와 2점슛을 성공시킨 난 0점을 면했지만 17대5로 무릅을 꿇었다. 더욱 참담한 것은 화랑이 친구들과 귓속말로 채팅을 하면서 경기에 응했다는 사실. 경기도중 왜 열심히 자판을 두드리냐고 묻자 화랑은 친구들이 자꾸 말을 걸어온다고 했다.

오기가 발동했다. 내가 화랑의 42레벨 캐릭터를 사용하는 조건으로 다시 한번 도전했다. 그래도 결과는 마찬가지. 24대6의 형편없는 스코어에 다시 얼굴이 화끈거렸다.

화랑과 헤어지면서 앞으로 3주간 펼쳐질 ‘고수에게 배운다’의 최종 목표가 명확해지는 것 같았다. 기필코 화랑을 한번 이겨 ‘청출어람’의 귀감이 되리라….

회사로 돌아와 게임에 접속하니 내 아이디를 보고 기자냐고 물어오는 사람들이 있었다. ‘tester’라는 아이디를 빌려쓰는 기자들이 많은 것 같았다. 그들에게 화랑을 아느냐고 물었더니 하나같이 ‘3점슛의 제왕’이라고 했다. 화랑은 이미 게임 속에서는 전설로 통했다. 그런 그를 이길 수 있을까. 도전은 시작됐다.

<장지영기자@전자신문, jyajang@ 사진=한윤진기자@전자신문, p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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