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린 경마게임의 사행성 논란이 아케이드 게임 시장을 뒤흔들고 있다. 문화광광부와 영상물등급심의위원회가 스크린 경마를 사행업종으로 규정, 법적인 규제를 강화하려 하자 스크린 경마게임장과 아케이드 게임업계는 ‘합법적 인허가 절차를 거쳐 건전한 영업을 하는데 일방적 규제가 웬말이냐’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몇몇 시민단체와 게임 전문가들 사이에는 스크린 경마게임의 순기능과 역기능, 나아가 사행성 게임과 일반 게임을 구분하는 잣대까지 다양한 방면에서 논란이 일고 있다. 스크린 경마게임은 과연 사회적인 병폐인가 아니면 아케이드 업계의 새로운 희망인가.
# 불황 속 호황업종 스크린 경마
‘스크린 경마’란 실제 경마가 아니라 화면에서 컴퓨터 프로그램에 의한 가상 경마를 벌인 뒤 배당금으로 상품권을 지급하는 게임이다. 지난해 3월 처음 등장해 하반기 들어 급속도로 확산됐고 최근에는 전국적으로 게임장수가 700여개 이를 정도로 번창하고 있다.
규제 일변도인 정부부처의 심의로 인해 기존 성인게임기의 재미가 크게 반감되면서 아케이드 게임시장은 침체 일로를 걸어왔다. 고객을 게임장으로 끌어들이는데 한계가 있다보니 기기 개변조라는 무리수를 두기도 했고 곧바로 불법, 탈법 행위가 적발되기도 했다. 덩달아 성인 아케이드 게임 전체가 여론의 도마위에 올라 싸잡아 비난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이에 반해 정상적으로 등급분류를 받아 유통되는 스크린 경마 게임기는 아케이드 게임 시장에 새로운 대안으로 떠올랐고, 제한적일 수밖에 없는 성인 게임시장에서 업주에게 새로운 수익창출의 기회를 주었다. 특히 대형화면에서 쏟아지는 다이내믹한 그래픽과 현장감 있는 더빙, 높은 환수율(payout) 등 게임성이 뛰어나 게임장으로 유저를 끊임없이 끌어들이고 있다.
이를 바탕으로 스크린 경마게임 업계는 스크린경마가 아케이드 업계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고 있는, 성인 게임시장의 새로운 희망이라고 주장한다. 일본 경마게임기가 판치던 상황을 국내 기술력으로 개발한 새로운 게임기로 대체했다는 점이 그렇고, 스크린 경마게임 이용자의 대부분이 건전한 오락으로 즐기고 있기에 성인 게임 문화에 새로운 전기를 마련하고 있다는 점 등을 내세우고 있다.
반면 지난해말 일부 언론에서 ‘하루 수십, 수백만원을 잃고 가정파탄까지 속출하고 있다’며 스크린 경마게임의 도박성, 사행성 등을 지적하자 정부 관계부처는 스크린 경마게임의 사행성을 일정부분 인정하고 올들어 사행성 간주 게임물로 새로운 규제안을 마련, 시행한다고 고시했다.
# 도박의 범위와 사행성의 기준
스크린 경마가 사행을 조장하는 사행성 게임이냐 아니냐는 이번 사태를 촉발한 배경이 됐고 그동안 많은 성인 게임을 대상으로 이미 오래전부터 논란이 돼 온 문제다. 사행성 게임의 기준이 모호할 뿐더러 적용 범위도 게임 종목이나 기기에 따라 천차만별로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복권처럼 많은 돈을 따거나 잃더라도 사행심리를 조장한다는 비난은 나올지언정 전면적인 규제로까지 이어지지는 않는 경우가 있으며, 국민게임으로 널리 애용되는 고스톱은 점당 10원을 쳐도 방식에 따라 한판에 수십만원을 잃을 수 있고 딸 수도 있다.
문제의 핵심은 스크린 경마를 바라보는 인식의 차이다. 하루에 수십, 수백만원을 잃는 사람이 많으니 규제를 통해 바로잡아야 한다는 생각과 그런 사람은 소수에 불과하므로 건전하게 즐기는 다수 이용자와 업자는 보호받아야 한다는 생각이 충돌하고 있는 것이다.
나아가 이 부분도 피해자가 양산되고 있는지, 아니면 극소수에 불과한지를 딱 잘라 선을 긋기가 매우 어렵다. 얼마를 잃어야 많이 잃은 것인지, 또 하루에 100명이 이용할 때 몇명이 피해를 입어야 다수 피해자가 발생했다고 볼 수 있는지 논란의 여지가 많다. 간과하지 않아야 할 점은 정부의 규제 일변도의 정책이 이제는 사후 관리와 계도 중심으로 바뀌어야 할 때라는 것이다. 따라서 아동이나 청소년이 아닌 성인을 대상으로 한 업종이라면 불법 탈법이 조성되지 않는 한 소비자의 판단에 맡기는, 즉 시장 논리로 정책 방향이 맞춰져야 한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 스크린 경마 업계, 정부 규제 기준과 절차에 강력 반발
이러한 견해 차이와 동시에 업계와 정부가 현재 가장 첨예하게 대립각을 세우고 있는 문제는 정부의 규제 기준과 방향, 그리고 절차 때문이다. 스크린경마게임 업계에서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는 점이기도 하다.
업계는 문광부 경품게임 개정 고시와 세부 규정에 따라 규제를 받더라도 게임성이 배제된 개정 내용과 60일이라는 유예기간은 문을 닫으라는 조치와 다르지 않다고 주장한다. 업계 관계자는 “게임장에서 개인이 혼자 즐기는 오락기처럼 단순히 기능 몇가지를 수정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사람이 함께 즐기는 네트워크 프로그램을 통채로 바꿔야 하기 때문에 게임기를 새로 교체하는 것과 마찮가지”라며 “게임기가 어떻게 개발되고 작동하는지 모르면서 짧은 시간 내에 각종 게임 룰을 바꾸고 그렇지 못하면 단속을 통해 제제에 들어간다는 것은 영업정지를 먹이는 것과 다르지 않다”고 말했다.
나아가 업계는 게임성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고시로 인해 시장 전체가 소비자로부터 외면당하는 결과를 크게 우려하고 있다. 개정 고시 그대로라면 게임성이 없는 게임으로 전락하고 이미 그 자체로 시장에서 생존할 수 없다는 얘기다.
문화부 세부 규정에 따르면 스크린 경마 게임을 사행성 간주 게임인 경품 게임물 내 180초 이상(다구역 게임물)로 분류하고 1구역 당 정액 100원에 정액 합계 4500원 이하, 그리고 1회 게임당 최고 당첨액을 2만원, 최고 배율은 200배 이내로 규제했다. 이에 대해 스크린 경마 게임업계는 다양한 방식으로 진행되는 게임 특성상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불가능한 기준이라며 스크린 경마 게임에 관련된 개발, 제조, 유통업계의 의견 수렴 및 동의 과정을 거쳐 시행할 것을 주장하고 있다.
이와 더불어 스크린경마 업계는 그동안 국내 성인게임 시장을 장악해 온 일본산 경마게임기를 내몰고 이후 동남아시아를 비롯 세계 아케이드 게임 시장에 수출되고 있는 경마게임기에 대한 개발 기술력이 일순간에 사장될 것이라는 우려도 나타냈다.스크린 경마 게임장의 실태를 직접 확인하기 위해 신사동의 R 스크린 경마게임장을 찾았다. 시간은 오후 7시 정도. 100석 규모의 게임장에는 70∼80여명이 앉아 게임을 즐기고 있었다. 생각했던 후끈한 분위기는 아니었다. 시끄럽게 떠드는 사람도 거의 없다. 게임 한판이 끝날 때마다 여기저기 조그마한 탄식이나 탄성이 들렸다.
1만원을 넣으니 200점이 떴다. 배팅 버튼에는 1점부터 최대 50점까지 쓰여있다. 단승과 복승, 연승식을 번갈아가며 20분간 게임을 했다. 저배당 3번과 고배당이 1번이 맞아 상품권 한장을 건졌고 남은 점수는 124점. 거의 본전인 셈이다.
직접 게임을 해보니 경우에 따라 꽤 많은 돈을 잃을 수도 있고 거꾸로 운이 좋으면 짭잘한 수입을 챙길 수도 있을 듯했다. 한 종업원은 “누가 얼마를 잃고 따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잃고 가는 사람도 있고 따고 가는 사람도 있다. 가끔 많은 돈을 잃었다며 화를 내는 사람이 있지만 대부분 그냥 조용히 와서 한두시간 즐기고 조용히 간다”고 설명했다.
보기에 따라 도박장처럼 보일 수도 있고 그냥 일반 게임장처럼 느껴질 수도 있겠다. 주인인 김 모씨는 “도박하러 들어오면 도박장으로 보이는 것이고 게임으로 그냥 건전하게 즐기려고 들어오면 PC방과 다를 바 없다”며 “있는 돈을 다 쓰고도 모자로 현금서비스를 받아 무차별적으로 고액 배팅을 한 후 돈을 날리는 비이성적인 몇몇 사람 때문에 상관없는 업소까지 한꺼번에 규제를 받아야 한다는 점이 이해하기 어렵다”고 말했다.“지금까지 우리 협의회 소속 700여개 스크린 경마게임장 중에서 어떤 범법 행위로라도 단속에 단 한번 걸려본 적이 없습니다.”
스크린 경마게임장 업주들이 생존권 보호의 기치를 내걸고 결성한 전자게임사업자협의회 곽형식 회장의 첫 마디는 억울하다는 것이었다.
곽 회장은 “일부 신문 방송에 스크린 경마게임장이 마치 도박장처럼 비춰진 것은 스크린 경마게임기와 게임 방식을 몰라도 한참 모른채 취재했기 때문”이라며 “제발 게임장을 찾아가 직접 게임을 해본 후 스크린 경마가 어떤 게임인지 제대로 파악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자신도 경마게임장 한 곳을 직접 운영한다는 그는 문화부의 고시 및 세부규정 확정에 대응해 올초 협회를 결성한 후 문광부와 국회, 청와대 등을 찾아다니며 민원과 진정서, 탄원서 등을 제출하느라 눈코뜰새없이 바쁜 모습이다.
“이것 하나만은 꼭 알아줬으면 합니다. 스크린 경마장은 과거 사행 도박으로 문제됐던 종류나 게임장하고는 방식이나 운영에서 전혀 다릅니다. 퇴직금 받고 대출금 합쳐 게임장을 시작한 회원들 다 죽습니다. 업주와 이용자들의 정확한 실상을 봐주셔야 합니다.”
곽 회장은 이어 “다 죽어가던 아케이드 게임 시장과 아케이드 게임개발 업계가 스크린 경마게임으로 인해 모처럼 부흥기를 맞고 있다. 이번 스크린 경마게임기는 그 우수성이 인정돼 해외 여러나라로 수출되고 미국 라스베이거스에도 진출할 준비를 하고 있는 상황이다. 장려는 못해줄 망정 이번 조치는 아케이드 게임업계와 시장을 다 죽이는 조치”라고 말했다.
<임동식기자 임동식기자@전자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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