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정장호·이건수 회장의 선택

 옛날 이야기 하나. 김대중 정부 시절 정보통신부에 비상이 걸렸다. 중국과 CDMA 관련 현안이 발생, 장관이 베이징으로 날아갈 채비를 했다. 중국 신식산업부 장관을 만나 해결책을 찾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워낙 다급하게 추진된 일이라 중국 장관 면담 일정이 불투명했다. 애를 태우던 정통부 실무진은 외교부에도 도움을 요청했다. 그래도 사정은 비슷했고 결국은 한 기업인이 나섰다. 평소 방대한 중국 인맥을 갖고 있던 그는 정부 관계자들과 협력해 중국 장관의 일정을 빼내는 데 성공했다. 양국 장관은 머리를 맞대고 CDMA 표준문제를 논의할 수 있었다.

 옛날 이야기 둘. 지금은 초일류로 성장한 국내 모기업의 고위 임원이 90년대 후반 베트남을 처음 방문했다. 통신 장비와 휴대폰 공급 가능성을 타진했다. 사회주의권 국가들이 대개 그렇듯 정부와 공기업 실력자들을 우선 설득하는 데 주력했다. 그가 놀란 것은 베트남 정부와 IT거물들의 시각이 아니었다. 처음 만난 한국인에게 던지는 똑같은 질문이었다. 명함을 받자마자 그들은 말했다. “정장호, 이건수를 아시오? 양승택을 알고 있습니까?”

 첫번째 이야기의 주인공 이건수 동아일렉콤 회장은 일반인에겐 낯선 인물이다. 그는 미국에서 백만장자가 돼 귀국한 사람이다. 80년대 전공과도 거리가 먼 동아전기라는 다 쓰러져가는 파워서플라이업체를 인수하면서 한국 통신사에 이름을 올린다. 국산 전전자교환기 TDX에 들어가는 전원장치를 개발했다. 그가 주목받은 것은 이보다는 IT, 통신외교의 막후 조력자, 실력자라는 소리를 들으서면서부터다. 미국에서도 전설적 무기상 카쇼기와 비즈니스를 할 정도였던 그는 마침 한국이 CDMA수출을 추진하면서 특유의 역량을 한껏 발휘했다. 특히 중국과 베트남을 제집 드나들듯 하며 현지 정부의 실력자, 기업인들과 교유했다. 그의 막강한 휴먼 네트워크는 공식 외교라인의 부족한 점을 보완했다. 장관회담이나 심지어 정상회담에도 통신분야가 의제에 오르면 그의 숨은 노력이 요구됐다. 명함에는 기업 CEO보다 대통령 특사 고문이나 정통부 장관 고문이란 명칭이 쓰였다.

 두번째 이야기의 주인공 정장호 전 정보통신산업협회장은 LG정보통신 시절부터 스타 CEO로 각광받았다. 설명이 필요 없을 정도로 유명한 정보통신업계 대부다. 재미있는 것은 그도 이 회장처럼 전공과 무관한 길을 걸었다. 그는 공인회계사다.

 표본 조사는 없지만 두 사람은 통신 1세대 기업인의 표준에 가깝다. 황무지에서 출발해 오늘의 통신 한국을 만드는 밑거름이 됐다. 일에 대한 열정, 성공에 대한 확신, 탱크 같은 추진력과 결단력으로 무장하고 질풍노도의 세월을 거쳤다. 창업형 기업인의 덕목을 앞세워 CDMA신화를 이룩한 주역 가운데 하나로 불린다. 물론 통신산업이 초압축성장을 거듭한 탓에 그들에게도 구설수가 있었지만 일에 관한 한 후배들의 본보기가 될 만한 1세대 기업인으로 평가받는다.

 이제는 환갑을 훌쩍 넘긴 두 사람이 최근 새로운 도전에 나섰다. 정 회장은 정동극장의 이사장으로 변신했다. 통신업계의 대부, 스타 CEO가 문화계에 정식으로 몸담는 것이다. 이 회장은 글로벌 전원장치 기업에서 에너지 분야로 영역을 넓히는 일에 몰두한다. 그에게는 또 다른 도전이다.

 한 분야에서 평생을 바쳐 사회적 성과를 일궈낸 사람들을 원로라 한다면 이들은 정보통신분야의 원로다. 그들에겐 지혜와 존경이란 단어가 따라 붙는다. 20대 후반, 30대 스타가 즐비한 정보통신업계에 올곧은 선배들이 있다는 것은 좋은 일이다. 노욕 부리지 않고 새로운 변화와 도전을 두려워 하지 않는 이들의 모습은 그래서 신선한 충격이다.

 이택 편집국 부국장 etyt@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