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을 그리기 전까지 도화지는 그저 하얀 백지일 뿐이다. 흰 도화지에 스케치가 되고, 채색이 되고, 많은 사람들에게 ‘좋은 그림’이라는 인정을 받게 될 때까지 ‘그림’은 구상에 지나지 않는다. 비로소 그림의 가치를 인정받을 때, 그때에야 명화는 사람들에게 행복을 가져다 준다. 그 그림을 향유하는 사람들과 그것을 창조한 작가들에게도.
‘WEG 2005’ 한국 본선이 끝났다. 게임리그라고 해봐야 ‘스타크래프트’ 한 종목에 천착해 있던 한국 e스포츠에 WEG는 하나의 작은 파문이 되었던 듯하다. 계획을 발표하기 불과 서너 달 전만 해도 ‘스타크래프트 없는 게임리그는 미친짓’ 이라는 비아냥을 들었던 WEG는 그러나 개막과 동시에 ‘스타크래프트’ 메이저 대회 못지 않은 현장 관객을 모았고 시청률에서도 결코 뒤지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
‘스타크래프트 때문에 안돼’라는 말에 익숙했던 타 게임 유저들을 하나로 규합한 것도 눈에 보이지 않는 성과다. 모 신문기자의 말에 따르면 WEG의 정식 종목 중 하나인 ‘워크래프트3’의 동시접속자가 WEG 개막전 랭킹 40위 후반에서 20위 초반으로 수직상승했단다.
해외 반응은 더 뜨겁다. 중국과 유럽, 미주를 잇는 중계방송 네트워크를 통해 전세계 게이머들이 WEG를 자국의 언어로 관전했고, 한국이 왜 e스포츠 선진국인지를 눈으로 확인했다는 분위기다. 넓은 공간에 수백명의 선수들을 몰아넣고 하루, 이틀 새에 모든 경기를 해치워 버리는 대회 방식에 익숙했던 게이머들에게 한 경기 한 경기 최고의 선수들이 치르는 경기 자체를 정성스럽게 중계방송하는 한국의 e스포츠 경기 진행방식은 신선한 충격이었으리라.
특히 대중 매체를 통하여 전파되는 e스포츠 콘텐츠에 목말라하던 중국 팬들에게 WEG는 올림픽과 월드컵 못지않은 의미로 다가갔다. 문자중계를 하던 포털 사이트의 서버가 다운되고, 결승전 티켓이 배포 두시간 만에 소진되었다. 그런데, 티켓을 가진 팬들 대부분이 관전을 하러 올 조짐이어서 중국 공안에 비상이 걸렸다. 안전사고와 혹시 있을 소란을 우려해 객석 수 만큼만 티켓을 새로 배포하라며 난리 법석을 부린다.
이번 북경 결승에는 또 국내 팬들에 의해 선보였던 ‘치어풀’도 등장할 조짐이다. 표준화란 이런 것이다. 한국에서, 한국인의 손으로 만든 문화가 세계인의 것으로 통용되는 것. 그것이 WEG가 진정 원하는 것이다. 결승전을 잘 치러야겠다. 이것은 한국 e스포츠가 해외에 수출되는 첫번째 사례로 기억될 것이니 말이다.
<게임케스터 nouncer@freech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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