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모태펀드의 성공조건

문화콘텐츠산업 육성 의무를 지고 있는 문화관광부가 1조원대에 이르는 모태펀드를 조성한다는 방침을 정했다. 무엇보다도 차세대 성장동력으로 꼽힌 문화콘텐츠산업의 활성화에 대한 물꼬가 트일 것 같아 기대된다. 아직 구체적인 조성방안이 나온 것은 아니지만, 아마도 문화콘텐츠업계로서는 근래 이만큼 쌍수 들고 반길 사건도 없었을 것이다.

 펀드는 원래 원금 자체의 회수에 중점을 두는 융자나 대출과는 달리, 가능성 있는 사업이나 기업에 대한 투자 또는 출자 형식으로 운용되는 게 보통이다. 그러나 문화콘텐츠 비즈니스는 현실적으로 그 성공 가능성보다는 투자 리스크가 훨씬 많은 게 사실이다. 게다가 국내에서는 일부 영화나 게임을 제외하고는 산업 환경 자체도 매우 열악하다. 가능성만으로는 투자자들을 끌어모으는 게 쉽지 않은 것이다. 그러다 보니 대통령까지 나서 ‘차세대 먹거리’라고 강조했던 정부의 문화콘텐츠산업 육성 계획이 구두선이라는 비판을 면할 수 없었다.

 이런 와중에 정부가 모태펀드를 직접 조성하겠다는 것은 문화콘텐츠 업계로서는 그 자체만으로 가슴 뛰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번 모태펀드는 개별 기업에 투자를 꺼려온 투자조합이나 창투사들에 정부가 직접 안전장치를 마련해 줘 투자활성화를 유도하겠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1조원대라면 그 규모도 만만치 않다.

 성격이 좀 다르긴 하지만 문화부는 그동안 산하기관을 통해 문화산업진흥기금이라는 것을 운용해 오다 지난해 기획예산처로부터 폐지권고를 받은 바 있다. 극심한 실적 부진에다 효과도 별로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도 그럴 것이 자체 재원 없이 일반회계 출연금으로 운용돼 온 이 기금은 대출시 물적 담보가 필수인 한낱 일반 대출상품에 불과했다. 운영자로서는 대출보다는 원금 회수를 먼저 생각지 않을 수 없었고, 담보물건이 없는 대다수 기업들에는 그림의 떡일 뿐인 제도였던 것이다.

 문화부의 이번 펀드 조성 계획은 문화산업진흥기금 폐지의 대안으로서의 성격이 강하다. 이런 점은 2700억원의 문화산업진흥기금을 종자돈으로 하고 운용방식도 담보대출이 아닌, 투자나 출자형태로 하겠다는 초기 방향 설정에서도 분명하게 나타난다. 사실 문화부로서는 그동안 기금을 제대로 운용하지도 못한 데다 급기야 폐지 권고를 받을 때까지 방치했다는 관련 업계의 비난 여론 때문에 적지 않은 속앓이를 했음 직하다. 일부 관리들은 “기금 존치에 어떤 노력을 하는지 두고 보겠다”는 항의성 강경 발언도 들어야 했다.

 문제는 바로 여기에 있다. 모태펀드 조성계획이 산업적인 특성보다는 여론에 떠밀려 추진되는 게 아니냐는 지적이 바로 그것이다. 펀드의 운용은 투자 대상에 대한 적합성과 높은 회수율이 생명이다. 그러나 정부가 직접 운용할 모태펀드라면 여기에 전략성과 정책성까지 겸비해야 한다.

 투자 자금의 흐름은 아무래도 회수율과 회수 규모가 높은 사업에 쏠리기 마련이다. 그런데 정부가 조성하는 모태펀드가 이런 기류에만 휩싸인다면 폐지 권고를 받은 문화산업진흥기금과 하등 다를 바가 없다. 그렇지 않아도 새해 들어 신벤처 정책이 나오면서 과거와 같은 부작용을 우려하는 시각이 없지 않은 터다. 전략성과 정책성을 중시해야 할 모태펀드의 운용이 자금관리의 안전성만을 강조한다면 과거처럼 극소수의 검증된 기업에만 자금이 몰리는 부익부 빈익빈 현상을 면치 못할 것이다.

 차세대 먹거리로서 우리나라의 문화콘텐츠산업은 어쩌면 이 모태펀드의 운용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조금 늦더라도 차분하고 전략적이고 정책적인 조성계획과 운용방향이 정해졌으면 한다.

◆서현진 디지털문화부장 jsuh@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