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에 ‘교육용 컴퓨터’라는 명분 하에 MSX 8비트 컴퓨터가 정식 수입되던 때의 일이다. 당시 초등학생이었던 필자는 이 컴퓨터를 갖고 싶은 일념에 며칠을 단식투쟁했고 결국 쟁취 해냈다.
초등학교 저학년 코찔찔이 꼬마가 컴퓨터로 할 수 있는 가장 재미있는 일은 역시 게임이었고 수많은 게임을 해댔다.
그 중에서 지금까지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이 1편, 2편, 3편을 정말 수도 없이 깨고 또 깼던 ‘Ys’(이하 이스)시리즈였다.RPG의 개념 자체도 제대로 모르던 꼬마였음에도 싸울수록 점점 강해지는 자신의 모습에 뿌듯해하고 적에 따라 무기를 바꿔 드는 등 몸으로 RPG의 재미를 배워나가게 했던 작품이 바로 ‘이스’다.
나중에 알게 된 일이지만 전국에 있던 많은 MSX 유저들은 칼을 손에 쥐고 육탄 박치기 밖에 할 줄 모르는 바보 같은 빨간 머리 소년의 모험담에 동참했으며(MSX 유저라면 적어도 ‘이스’는 해봐야 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그런 유저들이 점점 자라 지금은 게임을 만들기도 하고 필자처럼 게임에 대해 글을 쓰기도 하고 있다. 물론 이제는 게임을 전혀 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들도 ‘이스’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면 눈이 빛난다. 그리고 말한다. 자기도 Yser였다고.
‘이스’는 1987년에 PC-8801이라는 일본산 컴퓨터로 처음 발매됐다. 그리고 괜찮은 반응 덕분에 다양한 기종으로 이식되었는데 그 중 MSX 이식작이 국내에 들어왔던 것이다. 많은 유저들, RPG라면 애플의 ‘울티마’가 전부라는 인식이 팽배했던 국내에서 일본식 RPG의 조용한 불길은 바로 ‘이스’가 지폈다. 물론 ‘드래곤퀘스트’가 시기상으로 먼저지만 적어도 국내에 있어서는 일본식 RPG의 성행은 ‘이스’의 공이다.
그것은 앞에서도 잠깐 밝혔던, 초등학교 꼬마도 재미있게 즐길 수 있었던 쉬운 시스템과 액션이 가미된 소위 액션 RPG라는 점 때문이었다(상대적으로 ‘드래곤퀘스트’는 ‘울티마’나 ‘위저드리’와 흡사한 커맨드 방식으로 매우 불편했다). 그 덕분에 적어도 국내에서는 이 작품이 더 큰 의미를 갖는 것이다.비단 한국의 유저들에게만이 아니라, 이 시리즈의 원산지인 일본에서도 큰 인기를 얻었다. 그것은 위에 말한 ‘쉽지만 재미있는 액션 RPG’라는 개성적이고 매력적인 시스템이 큰 역할을 했다. 그러나 그 외에도 이 게임의 즐거움은 다양하다.
먼저 매력적인 캐릭터와 아름다운 그래픽을 들 수 있다. 이 시리즈의 주인공 캐릭터들은 정말 매력적이다. 빨간 머리의 주인공 아돌 크리스틴이나, 피나, 레아와 같은 여신 그리고 영원한 헤로인, 리리아 등 주요 캐릭터의 매력은 차치하고서라도, 각 시리즈를 즐길 때마다 등장하는 조연 역할의 캐릭터들도 큰 비중이 있다.
게임을 클리어했을 때 주요 캐릭터 몇 명만이 기억에 남았던 당시의 다른 게임들과는 달리 ‘이스’는 잠시 등장했던 캐릭터들도 하나하나 머릿속에 기억이 선명할 정도로 그 캐릭터들의 매력을 표현하기 위해 신경을 썼다. 그리고 그런 매력이 충분히 분출될 수 있도록 뒤를 봐 준 것이 세련되고 아름다운 그래픽과 음악이다.
기술이 발달하고 수많은 게임들이 쏟아진 후인 지금 보더라도 ‘이스’ 시리즈의 그래픽은 아름답기 그지없다. 국내 게임메이커 소프트맥스의 ‘창세기전’ 시리즈와 일맥상통한다고나 할까.
또 세계관이 굉장히 잘 짜여있다는 점이다. 당시의 게임들은 게임 자체의 재미에 몰두한 나머지 세계관이라는 부분은 간과하기 일쑤였다. 하지만 ‘이스’는 이스의 책 6권에 얽힌, 신계와 인간계의 이야기를 다루고 그 안에서 아돌이라는 주인공이 이야기를 펼쳐가면서 천천히 그 세계관을 알아가게 된다.
이런 세계관 속에서 유저는 아름다운 그래픽과 재미있는 액션 RPG의 게임 속에서 아돌 크리스틴이 된다. 리리아의 병을 고치기 위해서는 무슨 일이든 할 수 있을 것 같고 게임 속의 적 보스는 꼭 처치해야 할 적이라는 그런 느낌. 앞에 소개한 많은 장치를 통해 감정 이입이 가능했던 작품이 바로 ‘이스’였다.그런 이유로 ‘이스’는 수많은 유저들을 마니아로 만들며 성공을 거뒀다. 많은 유저들은 후속작을 기대했고 바로 다음해 1988년에 ‘이스 2’가 발매됐는데 이 작품은 발매되자마자 신화가 되고 말았다.
위에서 언급한 장점을 모두 갖고 있었을 뿐 아니라, 전작에 이어지는 스토리와 당시로서는 획기적이었던(덕분에 유저들의 가슴을 설레게 했던), 마치 만화 영화처럼 뒤돌아보는 여주인공 리리아와 풍부해진 볼륨, 더욱 성숙해진 게임성은 전작을 플레이했던 유저들에게 폭발적인 반응을 낳았고 지금까지도 팬들이 시리즈 중 가장 뛰어난 작품으로 기억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이스 2’에 푹 빠졌고 이때부터 이 게임을 즐기는 팬들은 자신을 ‘Yser(이스를 즐기는 사람들이라는 뜻)’라 부르기 시작했다. 어쩌면 별것 아니라고 생각될 지도 모르겠지만 이것은 큰 의미가 있다. 유저 자신이 그 게임을 즐겨보았다는 것에 대한 자발적인 긍지를 갖는다는 뜻이다.하지만 Yser들이 열광했던 것에 대한 부담 때문일까? 이상하게도 이 이후의 작품들은 ‘2편보다 더 뛰어나!’라는 생각이 들게 해 주는 작품이 없었다. 오히려 지금까지 가장 최근에 발매된 ‘Ys 6’를 제외한다면 대부분이 전작의 인기를 업은 다른 기종으로의 이식과 이전 작품의 리메이크들 뿐이다. 앞으로 예정되어 있는 ‘이스’ 시리즈가 ‘이스 3’의 PS2 이식 버전이라는 것을 보면 이런 노선은 바뀌지 않은 듯하다.
그리고 ‘이스’도 온라인으로 가고 있다. 그것도 한국인의 손에 의해서 말이다. 국내 게임메이커인 CJ 인터넷은 개발 스튜디오 CJIG를 설립해 원 제작사인 팔콤과 함께 ‘이스 온라인’을 제작 중이다. 과연 이 작품이 Yser들이 그렇게 원하던 후속작일지는 아직 모른다. 하지만 필자도 Yser이기에 훌륭한 작품으로 등장하기를 소망한다. 또한 분명히 그 작품을 개발하고 있는 CJIG에도 Yser들이 잔뜩 있을 것이다.
<이광섭 월간플레이스테이션 기자 dio@gamerz.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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