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포럼]국내 ERP시장 다시보기

요즘 신문에서 국내외 ERP 업체들이 너도나도 중소중견기업을 대상으로 마케팅을 강화하고 있다는 기사가 나오고 있다. 과연 국내 중소중견기업의 ERP 시장은 매력 있는 시장일까.

 2003년 KRG 리포트를 보면 2004년 라이선스와 서비스를 포함한 중소중견기업의 ERP 시장 총 규모는 1750억원 정도이고 이 중 매출 500억원 미만의 중소기업 시장 규모는 700억원, 제조기업 비중이 80%라는 분석이 나와 있다. 물론 대기업 대상의 ERP 시장성장률(CAGR) 3.4%에 비해 중소중견기업 대상의 ERP 시장성장률이 6.6%로 높은 것은 사실이지만 아직도 국내 중소중견기업의 ERP 시장규모는 그 크기가 절대적으로 작다.

 특히 주목할 점은 이렇게 크지 않은 시장조차도 오라클, SAP와 같은 글로벌 기업에 많은 시장을 내주고 있다는 것이다. 시사컴퓨터에서 조사한 2003년 국내 ERP 시장점유율 중 32%가 오라클과 SAP에 의해 이루어졌고, 이들이 중소중견기업 시장을 집중적으로 공략하기 시작한 2005년부터는 이 시장점유율은 더욱 커질 것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예측이다.

 지난해 말 중소기업 ERP 확산을 논의하기 위해 정보통신부, 산업자원부, 중기청 담당자가 모두 모인 자리에 참석할 기회가 있었다. 당시 모 담당 사무관에게 2005년 ERP 시장규모가 얼마나 될 것 같으냐고 개인적으로 물어보았는데, 사무관은 주저함없이 200억∼300억원 규모가 될 것이라고 대답했었다. 아마 산자부에서 2005년에 ERP 지원사업으로 잡아놓은 예산을 ERP 규모로 생각하고 대답했던 것이 아닌가 생각되는데, 이것이 국내 ERP 시장에 대한 정확한 상황 인식일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ERP업계에 종사하는 한 사람으로서 필자는 씁쓸할 수밖에 없었다. 앞에서 언급한 분석자료에 기반해 계산해보면 국내 ‘중소’ ‘제조’ 기업의 ERP 시장규모는 600억원 미만일 것이고 이것의 50% 정도를 정부에서 지원한다고 가정했을 때 200억∼300억원을 당시 담당사무관이 국내 중소제조기업 ERP 시장규모로 보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여기서 필자가 강조하고 싶은 것은 지난 몇 년 동안 국내 ERP 시장의 수요가 정부의 주도하에 형성됐고 좌지우지됐다는 현실보다 더욱 심각한 것은 공급자의 규모 및 경쟁방식조차 시장 질서가 아니라 정부 주도의 틀 안에서 움직이게 된다는 점이다. 또 이것이 결국은 애플리케이션 소프트웨어 시장의 핵심이 되는 국산 ERP 솔루션의 글로벌 경쟁력을 가로막게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최근의 신문 기사를 보면 산자부에서 중소기업 ERP 수요 촉진을 위해 지원대상 수요기업 300개와 공급기업 300개를 선정했다고 하는데, 이것은 산술적으로 평균하면 올해 1개의 공급자가 1개의 고객을 확보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이는 아무리 국내 중소기업 ERP 시장 규모를 크게 잡아도 300개의 ERP 공급자들이 올해 평균 확보할 수 있는 고객 기업은 3개를 넘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논리적 비약에 따른 잘못된 수에 기반을 둔 가정이라는 반박을 받더라도 필자의 분명한 생각은 우리 공급자들이 정부에 ERP 지원 자금을 더 늘려달라고 건의하기보다는 이러한 왜곡된 공급 구조를 개선하기 위해서 정부가 함께 노력해 달라는 건의를 우선적으로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지난해에 전세계적으로 3위의 ERP 업체였던 피플소프트가 규모의 경쟁에서 살아남지 못하고 오라클에 합병됐다는 것은 국내 ERP 업계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할 수 있겠다.

 이렇게 공급업체의 수가 지나치게 많고 또한 공급업체 대부분이 영세한 규모라는 것은 비단 국산 ERP 소프트웨어 개발 업체의 문제만은 아니다. 글로벌 ERP 업체인 SAP에서 중소중견기업 시장 확대를 위해 서비스 파트너를 30개까지 확대하겠다는 기사를 최근 읽은 적이 있었는데 이것 또한 우려할 만한 상황이다. 대충 계산해도 국내 중소중견기업 SAP ERP 시장 규모는 400억원을 넘기 힘들 것으로 예상되는데 이 중 50억∼100억원이 30개 파트너의 관리, 영업과 같은 비생산적인 오버헤드 비용으로 사용된다는 것이다. 결국, 2∼3개의 서비스 업체면 충분할 수 있는 조그만 시장에서 필요 없이 많은 영세한 규모의 서비스 업체를 육성해 시장 전체적으로 비생산성과 비효율성을 높여 공급자와 수요자 모두에게 부정적인 결과를 초래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가 비단 필자만의 것은 아닐 것이다.

◆오병기 넥서브 대표이사 brian@nexerv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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