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 벽두에 아주 기분 좋은 e메일을 한 통 받았다. 일본 유수 IT업체에서 온 e메일 내용은 내가 속해 있는 대학 연구소와 관련, “지난해 귀 연구소 활동에 감동해 아무런 조건 없이 기부금을 보내기로 했다”며 “이 제안을 받아들이면 회사로서는 영광”이라는 것이었다. 대학에 몸 담고 있는 사람으로서 보람을 느끼면도 동시에 ‘국내 기업도 과연 이렇게 할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 들었다.
최근 우리나라 IT기업은 몇 십조의 이익을 냈다느니, 자사 제품이 세계 시장을 석권했다고 대대적으로 발표하면서 이제 ‘세계 최고의 회사’가 되었다고 경쟁적으로 주장하고 있다.
과연 매출액이 많고 시장 점유율이 올라갔다고 세계 일류 기업이라 부를 수 있을까. 이제는 삼성전자·LG전자를 비롯한 우리 대표 기업들도 세계 최고라는 자부심에 걸맞은 기업 정신이 필요한 단계다.
국제 학술 대회에 참가하면 세계 일류라고 자랑하는 우리 기업의 마인드가 이제는 바뀔 때라는 생각이 많이 든다. 70∼80년대의 기술 제휴와 모방을 통한 경제 성장 때문인지 왠지 자신감이 없어 보이고 항상 저자세라는 느낌을 버릴 수 없다. 세계 유수 회사의 발표가 있으면 주제와 내용에 관계없이 우리 기업이 앞다퉈 기술 협력을 제안하는 것을 보게 된다. 반면 세계 일류라고 인정 받는 외국 회사의 참석자에게서는 이런 모습을 좀처럼 찾아 보기 힘들다.
소니·필립스의 연구원이 우리 연구소를 방문하는 경우, 이들은 적어도 몇 시간 또는 며칠을 우리 연구원과 진지하게 심도 있는 연구 협력 방안을 논의하는 게 상례다. 우리가 방문해 봐도 그 회사 연구소장급의 책임자가 오전이나 오후 내내 시간을 내어 정말 생산적인 토론을 벌인다.
반면 우리나라 기업을 방문하면 태도부터 전혀 다르다. 회의중에 휴대전화를 공개적으로 받고 이 때마다 몇 분씩 회의가 끊기고 전화를 받으러 나간 참석자가 돌아오지 않는 사례가 허다하다.
세계 일류 기업은 비즈니스 측면뿐 아니라 관련 분야의 학술과 사회 활동에서도 선도적인 입장을 가져야 한다. 하지만 국내 기업은 국제 학술 활동 등에 아주 수동적이거나 기피하는 현상을 종종 보게 된다. 때로는 일류 기업에 걸맞은 국제적인 역할을 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이를 소홀히 하는 경우도 많다. 예를 들면 우리 기업의 세계 시장 점유율이 약 50%에 이를 정도의 글로벌 제품과 관련한 국제 학술 대회가 지난해 열렸다. 늦은 감이 있었지만 국내에서 이런 학술 행사를 개최하게 된 것을 다행으로 생각하고 관련자 모두 열심히 준비했고 외국 참가자에게도 가장 성공적이었다는 찬사를 받았다.
그러나 정작 국내 기업인의 참석이나 관심은 외국 기업보다도 상당히 소극적이었다. 논문 발표는 물론, 학술회의를 통해 이루어지는 각종 교류 행사에도 체면 치레 수준이었다. 이런 상황에서는 국제 무대에서 이니셔티브를 잡기 힘들다.
세계 일류 기업이라면 이 같은 국제 행사에 있어서도 기업 명성에 걸맞게 당당하고 적극적이어야만 기업의 진정한 글로벌화가 가능하다.
기업은 인재 교육의 필요성과 산·학 협력의 중요성을 기회가 있을 때마다 강조한다. 기업이 좋은 인재를 확보할 수 있는 방법은 간단하다. 가만히 앉아서 좋은 사람을 기다리지 말고 상응하는 투자를 해야 한다.
비록 지금은 대학 교육과 연구가 기업 필요성과 요구에 미치지 못할지라도 관심과 투자를 계속해야 한다. 당장 눈에 보이는 실적이나 효과에 ‘올인’하다 보면 우리 대학의 수준은 악순환을 영원히 벗어날 수 없고 결국은 부메랑처럼 기업으로 돌아간다.
올해부터는 이런 악순환에서 벗어나자. 매출액과 순익에 걸맞은 일류 기업 정신을 가지고 앞을 내다보면서 진정한 일류 기업의 길은 무엇인가를 모두 진지하게 고민해 보자
◆박영필 연세대 기계공학부 교수 ark2814@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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