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언씨는 영화 마니아와 만화·군사 마니아를 하나로 합쳐 놓은 인물이다. 흑백 영화부터 최신 DVD까지 족보를 두루 꿰고 있으며 2차 세계대전과 베트남전, 한국 전쟁에 대한 전문가이자 만화에 대한 애정으로 만화가까지 되려고 했던 사람이다. 자신을 ‘문화 허브’로 불러 달라는 그는 새롭게 등장하고 있는 복합 마니아들의 상징적 인물이다.
# 만화가의 꿈을 접고
올해로 딱 서른인 이상언씨는 영화와 만화, 군사 지식에 대한 전문가다. 현재 군사 전문 잡지 플래툰과 게임 전문지 피씨 파워진, 프라모델 잡지 네오에 글을 기고하고 있는 등 다양한 방면으로 자신의 내공을 발산하고 있다. 현재 직업은 온라인 성인 웹진을 진두지휘하는 총괄 업무를 맡고 있다고 하니 실로 ‘팔방미인’이라는 칭호가 어울리는 사람이다.
“사실은 중학교 시절부터 만화가가 꿈이었어요. 만화가가 되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처음에는 습작으로 그림을 그리다가 일본 만화에서 나타난 전문 지식들을 보고 만화를 위한 자료를 모아야겠다고 생각했죠. 그래서 다양한 분야의 자료를 모으고 공부를 하다보니 여기까지 왔네요.”
그는 만화가의 꿈을 좀처럼 버리지 못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입학해서도 꾸준히 출판사의 문을 두드렸다. 고등학교 시절에는 만화에 미치고 밀리터리에 빠져 공부는 뒷전이었다. 만화가 등단에 계속 낙방하고 거절을 당하다 결국 군대에 갔고 제대 후 마지막으로 자신의 작품을 그렸지만 차디찬 반응만 돌아왔다. 집안에서도 반대가 엄청나게 심해 이상언씨의 보물들이 분서갱유를 당하는 일도 발생했다.
그래서 그동안 자신이 모았던 자료와 관련 서적, 비디오 테이프, DVD, 만화, 애니메이션 등을 토대로 여러 잡지사에 글을 기고하기 시작했다. 고등학교 시절부터 아르바이트 삼아 필자로 일했던 경험을 되살린 것. 지금이야 전문가이자 평론가로 업계에서 이름이 통하고 있지만 당시에는 초보자에 불과했고 많은 시행착오를 거쳐야만 했다.
# 집 전체가 도서관
그의 집은 가전 제품과 가구보다 책이 더 많은 면적을 차지하고 있다. 서재로 명명된 큰 방은 4면이 책장으로 이뤄져 있으며 온갖 서적으로 가득차 있다. 또 발을 디딜 틈 조차 없는 많은 책들이 방바닥에 채워져 있어 2사람이 동시에 방으로 들어갈 수가 없다.
자신의 방은 더욱 가관이다. 대형 디지털 텔레비전이 벽면을 장식하고 있는 가운데 PS2 등 온갖 게임기가 어지럽게 놓여 있다. 자신이 손수 제작한 프라모델이 한 쪽 구석을 차지하고 있으며 책상에는 PC와 맥킨토시가 동시에 돌아간다. 거실에는 영화 DVD와 비디오 테이프가 천장까지 쌓여져 있었고 정체를 알 수 없는 무명의 케이스들이 먼지를 뒤집어 쓰고 잠을 자고 있다. 게다가 최근 시작한 성인웹진의 콘텐츠를 창조하기 위해 구입한 일본 성인 잡지가 침대 옆에 가득 쌓여 있다.
“그런데 여기 이것들은 이사를 하면서 확 버리고 남은 자료입니다. 도저히 버릴 수 없는 책이나 자료는 따로 스크랩을 했어요. 지금 남아 있는 것들은 필터링된 정예 요원이라고 할 수 있죠. 하하하.”
마니아들의 공통된 모습. 그것은 방 하나를 완전히 채우고도 남을 수집품(자료)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고 버린 소스도 많다는 점이다.
# 안 해본 것 없노라
이상언씨는 회사도 참 다양하게 옮겼다. 자신이 글을 쓰는 일은 별도로 치고 그라비티, 실프 스튜디오, 모바일 게임 회사 등 여러 군데를 경험했다. 게임 개발사에서는 주로 기획을 담당했고 모바일 게임 회사에서는 성인용 콘텐츠를 기획했는데 여기서 맺은 인연이 지금의 성인 웹진으로 이어져 온 것이다.
“성인 웹진이나 게임 개발사나 비슷해요. 제가 여러 회사를 다니면서 느낀 점은 소규모 운영에 매출 극대화라는 것입니다. 작은 시장이지만 확실한 타켓이 존재하고 거기서 매출을 올려 모두가 행복해지는 것이지요. ‘리니지2’나 ‘월드오브워크래프트’처럼 많은 돈을 투자하고 대규모 인원과 많은 유저가 필요한 작품은 오히려 리스크가 크고 서비스가 계속 될수록 불만이 발생할 여지가 많습니다.”
이에 대해 이씨는 좋은 식당의 조건이라는 프로그램에 출연한 음식점 사장이 ‘자신의 음식을 먹는 손님들의 얼굴을 모두 볼 수 없으면 필연적으로 질이 떨어진다’며 작은 규모의 중요성을 재차 강조했다. 물론 자신이 직접 그런 게임을 만들어 보고 싶은 욕심도 가지고 있다. 누구나 잘 알고 있지만 라이선스 비용이 전혀 필요 없는 밀리터리를 소재로 말이다.
# 문화인들의 허브 역할 자청
인터뷰를 마무리하며 이씨가 지극히 주관적으로 추천하는 만화와 영화, 게임을 부탁했다. 그는, 추천 만화로 자신이 성경처럼 들고 다닌다는 히로아키 사무라의 ‘이사’를, 영화는 크리스토퍼 맥쿼리의 ‘웨이 오브 더 건’을 들었다. 그러나 게임은 하루가 다르게 훌륭한 작품이 쏟아져 나오기 때문에 꼭 집어서 말하기는 곤란하다고 했다.
“전 저의 역할을 문화 허브라고 정의 내리고 있습니다. 진정한 마니아들은 세상에 자신을 공개하지 않죠. 그러나 일반인들은 평이한 생활의 이면을 전혀 모르는 경우가 많은데 그들의 사이를 연결해주는 위치에 서고 싶습니다. 문화도 고이면 썩게 마련입니다. 항상 흐르게 해야죠. 위에서든 아래에서든….”
<김성진기자 김성진기자@전자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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