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국가표준화 전략 다시 짜자

 과거 중공군의 인해전술(人海戰術)은 너무나 유명하다. 천하무적이었다. 그러나 이 인해전술도 맥을 못출 때가 있었다. 신속함을 자랑하는 몽골의 기마군단이었다. 전광석화 같은 칭기즈칸의 말발굽 아래 중국은 힘 한 번 제대로 쓰지 못하고 짓밟혔다.

 예나 지금이나 중국의 가장 큰 힘은 드넓은 국토와 무수한 인구다. 중국은 광활한 국토와 수많은 인구를 기반으로 지구촌을 먹어 삼킬 정도의 거대한 공룡으로 변했다.

 그러나 한국도 공룡에 대항할 무기가 있다. 그 옛날 몽골의 기마군단처럼 공룡의 무거운 발걸음으로는 도저히 따라잡을 수 없는 빠른 속도가 그것이다. 한국은 앞서가는 고도 IT 인프라와 발빠른 소비자의 욕구가 맞물려 세계시장의 실험장이 되고 있다. 한국의 먹거리는 남보다 앞서 나가는 시장과 중국이 미처 쫓아 오지 못하는 데에서 모두 창출되고 있다.

 21세기 디지털 전장에는 수많은 기술이 경합하고 자고 나면 뜨고지는 기술이 바뀐다. 그만큼 표준화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해지고 신속해지고 있다. 다행히 한국은 시장 흐름이 빠른 만큼 표준화에서도 유리한 위치를 점하고 있다. 이를 십분 살려야 한다.

 그러나 벌써 수년째 논란만 거듭될 뿐 지지부진한 홈네트워크 표준화를 지켜보면 또 다시 과거 CDMA의 전철을 되풀이하지 않을까 걱정스럽다. 한국은 신속하고 과감하게 CDMA를 국가 표준으로 선택해 일거에 무선통신강국으로 진입하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장기적인 전략부재로 퀄컴의 로열티라는 덫을 피하지 못한 뼈아픈 실책을 범했다.

 한국은 홈네트워크 시장에서는 가장 앞서 나가면서도 표준화에서만큼은 가장 뒤처져 있다. 이미 일본, 미국과 유럽, 심지어 중국마저도 홈네트워크 표준화를 선점하기 위해 정부와 기업이 똘똘 뭉치고 있다. 유독 한국만 따로따로다.

 탁 터놓고 얘기해보자. 정부가 국가표준화를 추구하는 것은 호환성을 담보해 국민의 불편과 비용을 덜어주기 위해서다. 반면 기업은 치열한 시장경쟁에서 이기기 위한 기선제압과 주도권 확보를 위해 표준화에 임한다. 목적이 서로 다르다 보니 한국의 표준화에 관한 한 정부와 기업의 이해관계가 일치하기 쉽지 않다. 자국 시장이 세계적인 영향력을 지닌 미국이나 일본, 중국과는 다르다.

 따라서 한국은 이 같은 특성에 맞는 표준화 정책이 필요하다. 정부와 기업의 목적이 서로 부합되도록 하는 전략과 전술이 적절히 구사돼야 한다. 그동안 국가표준화에는 정부의 입장이 일방적으로 강요돼 왔다. 어떤 기술이든 국가표준으로 채택되면 모든 자원을 집중했다. 당연히 기업들은 소외되지 않기 위해 이를 지켜야만 하는 처지였다. CDMA가 국가표준이 된 이후 유럽방식 GSM에 자원이 투입된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현실은 GSM 휴대폰 수출이 CDMA 수출보다 많다. 기업들이 국가표준에 미온적인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이제는 달라져야 한다. 국가표준화가 정부와 국민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기업들에도 도움이 돼야 한다. 그래야 속도도 빨라지고 서로 윈윈할 수 있다. 일단 국가표준으로 채택된 기술에 대해서는 모든 기업이 특허료나 개발 등에서 고른 혜택을 누릴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국가표준 채택을 전제로 유리한 조건을 확보할 수 있도록 해당 기술보유자들과 철저한 사전협상이 필요하다. 국내기업이든 해외기업이든 예외는 없다. 더불어 국가표준에서 배제된 것이라도 세계시장에서 영향력이 크다면 그만한 지원이 뒤따라야 한다.

 정부도 기업도 모두 윈윈할 수 있는 국가표준화의 새틀을 짜야 한다. 그래야 우리의 속도가 진정한 빛을 발할 수 있다.

 디지털산업부 유성호부장@전자신문, shy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