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삼성은 일본을 보지 말라

명실공히 삼성전자는 세계 제1의 제조기업이 됐다.

기자 초년병 시절 기억이 또렷하다. 모 외국계 기업의 일본인 경영자를 인터뷰했다.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삼성전자도 소니나 NEC처럼 당신들(일제) 장비와 재료를 사용한다. 그러나 생산된 결과물은 다르다. 일본 제품에 비해 가격과 성능이 뒤진다. 이것은 고스란히 한국과 일본의 전자산업 격차로 반영된다. 도대체 이유가 뭐라 생각하나.”

 삼성전자와도 사업적으로 엮여 있던 그의 대답은 간단했다. “장비는 돈만 있으면 누구나 살 수 있다. 그러나 그 장비를 사용하는 사람들의 혼이나 정신은 돈으로 살 수 없다. 한국이 사들이는 것은 장비일 뿐이지만 그 속에 숨겨진 가치를 함께 사야 한다.” 충격적이었고 마음이 아팠다.

 삼성전자의 지난해 순익이 10조원을 넘어섰다. 특히 일본 언론은 일제히 삼성의 ‘이익 100억달러 클럽 가입’을 대서특필했다. 삼성의 한 해 수익은 일본 10대 전자업체의 순익을 모두 합친 것보다 두 배 많다. 10대 업체에는 소니, 마쓰시타, NEC, 후지쯔 등 세칭 초일류 기업이 모두 포함된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제조업 가운데 순익 100억달러를 넘긴 기업은 세계에서 삼성전자와 도요타자동차뿐이란 것이다.

 명실공히 삼성전자는 세계 제1의 제조기업이 됐다. 다시 기자 초년병 시절로 돌아가 보면 당시 삼성의 타깃은 샤프였다. 삼성전자는 샤프를, 삼성전기는 무라타제작소를 겨냥해 그 수준으로 끌어 올리겠다며 직원들은 눈에 불을 켰다. 격세지감이다.

 이쯤 되자 삼성전자와 일본의 경쟁구도 해부가 한창이다. 주류에는 경계의 목소리가 자리잡았다. 공통적인 지적은 삼성의 원천 핵심기술이 미약하다는 것이다. 소니의 워크맨처럼 세상에 없는 새로운 물건을 내놓은 경험이 없다는 것도 약점이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삼성의 질주는 당분간 이어질 것이다. 기술은 필요하면 살 수 있는 시대가 됐다. 마이크로소프트가 그랬다. LG전자의 제니스 인수도 특허기술과 브랜드를 구입한 것이다. 특허분쟁에서도 과거처럼 호락호락 당하지 않을 만큼 응용특허를 갖추고 있다. 반도체와 휴대폰, 디스플레이에선 세계 최초의 수식어를 단 획기적 신제품도 단골로 선보인다.

 삼성에 대한 단기적 낙관론은 인력이 뒷받침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우리나라 무역흑자의 20∼30%를 혼자서 처리한다. 직원들 급여 수준도 금융·통신 분야보다는 뒤지지만 성과급이 워낙 커 실질적으로는 가장 높다. 세계 1등 기업, 초일류 회사라는 이미지도 있다. 인재라 불릴 만한 고급 인력은 대부분 삼성전자를 지향한다. 한국에서도, 해외에서도 삼성전자에 입사하기 위해 줄을 선다. 탄력과 속도가 붙어 돈과 사람이 모여드는 선순환 구조에 진입한 것이다. 말하자면 대한민국의 재원과 인력이라는 양대 역량이 집중되고 있다는 뜻이다. 경제적으로는 문제가 많지만 대한민국의 재원을 싹쓸이하는 기업과 경쟁하기란 아무리 일본 업체라도 간단치 않다.

 삼성전자엔 소니나 후지쯔보다는 내부의 적이 훨씬 위협적이다. 삼성이 망한다면 경쟁사에 의해서가 아닌 내부 문제에서 비롯될 것이다. ‘이제 됐다’는 안이함으로 혼을 놓고 정신을 놓으면 그럴 수 있다.

 몆 차례 지적했지만 글로벌 기업이라면서도 현지인 해외 법인 책임자 한 명 없고, 여성 경영인력이 절대부족한 ‘한국식 체제’를 고수하는 것도 바뀌어야 한다. 반도체, 휴대폰, 디지털미디어 등이 부문별 시너지를 올리지 못하고 견제가 앞선다면 그것도 망하는 길이다. 경영권 후계 문제나 경영진 세대 교체시 발생할지 모를 불협화음도 불안 요인이다. 삼성전자는 이제 1등이 됐을 뿐이다. 일본에 기술을 달라고 애걸하던 때가 불과 20∼30년 전이다.

이택 편집국부국장 etyt@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