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진국, 자신감, 희망’
새해 들어 노무현 대통령이 강조하고 있는 화두다. 신년사에서도, 국무회의에서도, 연두기자회견에서도, 또 각계 신년 인사회에서도 이 세 단어는 빼놓지 않았다. 단순히 침체된 경제·사회 분위기를 일신하려는 의도로 보이지는 않는다. 자신감과 희망을 갖고 경제난을 타개해 나가자는 국가 CEO의 의지와 메시지로 들린다.
목표로 제시한 것은 ‘선진한국’이다. 노 대통령이 제시한 ‘선진한국’이 정확히 무엇인지는 확실치 않다. 연두기자회견이나 그간의 발언을 종합해 보면 1인당 국민소득 2만달러를 잣대로 삼는 것으로 보인다. 물론 선진국에 상응하는 사회 발전과 국민의식의 개혁도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노 대통령이 지난해 우리보다 잘 사는 나라와 못 사는 나라를 순방하면서 비교하고 들은 한국에 대한 평가를 토대로 나름대로 세운 잣대인 듯하다. 선진국 클럽으로 불리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의 평균 국민소득이 2만달러선인 점을 감안하면 틀린 잣대는 아니다.
그러나 이런 노 대통령의 선진국론은 과거 정부가 내세웠던 소득목표 슬로건을 떠올리게 한다. 국민소득 목표는 박정희 정부도 내세웠고, 김영삼 정부도 내세웠다. 박정희 정부가 내세운 목표는 1000만달러였으며, 김영삼 정부는 OECD 가입을 지상목표로 1만달러를 강조했다. 뚜렷이 부각되지는 않았지만 김대중 정부에서도 2003년 1만5000달러 달성이라는 소득목표치가 제시되기도 했다. 김대중 정부 시절을 제외하고는 소득목표치가 모두 달성됐다. 물론 환율 변동을 고려하면 허구적인 것이 없지는 않다.
하지만 아무리 환율을 고려하더라도 박정희 정부 때 1000만달러 소득 달성은 다르다. 당시 목표를 세울 때 1인당 국민소득이 300달러대로 이는 꿈 같은 계획이었으나 애초 계획보다 4년이나 앞당겨 달성, ‘한강의 기적’이라는 평가가 나올 정도였다. 다양한 분석이 있기는 하지만 과거 개발연대에서는 경제적 보상을 강조하는 소득목표론이 통했던 것이다. 지금 경제사회 전반에서 심화되고 있는 경기 양극화와 실업문제 등 많은 정책적 난제를 고려하면 이런 슬로건식 분위기 쇄신이 필요하다는 견해가 나오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그렇다고 선진국 또는 소득목표론에 대해 찬성하는 것은 아니다. 선진국이나 1인당 국민소득 2만달러 목표를 앞세울 경우 부작용이 걱정되기 때문이다. 목표 달성을 위한 ‘꿰맞추기식 정책’이 남발할 가능성도 높고 이로 인해 경제전반에 악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 문민정부시절에 대폭적인 자본시장 개방조처와 함께 1인당 국민소득 1만달러 달성으로 OECD에 가입했으나 지표상 국민소득 1만달러를 지키기 위해 무리하게 환율을 방어함으로써 경제위기를 초래한 전례가 있기 때문이다. 노 대통령이 “1인당 국민소득 2만달러는 꼭 성장의 성과만이 아니라 환율변동이라든가 여러 가지 과정이 다 평가되는 결과일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한 점에서도 그렇다.
다행인 것은 노 대통령이 선진한국의 도달 시점을 자신의 임기 내로 잡지 않고 차기로 넘겼다는 점이다. 임기 내에 무엇인가 끝장을 보겠다는 것은 자칫 문민정부 시절 반드시 해야 할 일을 간과해 위기를 초래한 전철을 밟을 수 있기 때문이다. 노 대통령은 “오는 2008년께에는 1인당 국민소득 2만달러 시대가 열리고, 2010년에는 여러 지표에서 선진경제에 진입하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도달 시점 제시가 아니라 한국경제가 선진한국을 향해 안정되게 나아가고 있다는 확신을 심어주는 것이 아닐까. 그런 국정운영 모습을 보일 때 투자활성화가 이루어지고 자연스럽게1인당 국민소득 2만달러는 달성되는 것이다.
<윤원창 수석논설위원 wcyoon@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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