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삼성전자와 제일은행

 실적이 나쁠지 모른다던 삼성전자가 우려와는 달리 기대 이상의 좋은 실적을 냈다. 금융·유화를 제외한 전세계 제조업 가운데 일본의 도요타를 제외하고 ‘최고의 순익을 낸 기업’으로 이름을 날렸다. 순익 100억달러. 지난 한 해 동안 우리 돈으로 자그마치 10조원의 이익을 낸 것이다.

 외국 언론들은 이러한 삼성 실적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모든 일이 그렇듯이 경쟁에서 앞서 나간 쪽이 있으면 뒤처진 쪽이 있게 마련이다. 경계심과 함께 내심 부러움에 몸 둘 바 모르는 일본의 대형 전자 IT업체들이 도열하고 있다. 삼성과 똑같은 성격의 기업구조를 갖고 60년대부터 50년 세계 전자산업사를 써온 소니를 비롯한 일본의 기업들이 더욱 그렇다. 삼성은 대규모 승진인사와 보너스를 통해 경기부진으로 주눅이 든 우리 경제에 모처럼 한가닥 위안을 제공했다. ‘아 저렇게 잘 되는 기업도 있구나’ 하는 뿌듯한 마음이 들도록.

 마침 노무현 대통령도 연두기자회견에서 경제와 중소·벤처기업을 살리겠다고 나선 끝이다. 그래서인지 증권거래소와 코스닥도 덩달아 춤을 추고 있다. 주말을 보내고 나니 코스닥과 증권은 이제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마구 뛰고 있다.

 그런데 가슴 한 구석이 허전하다. 꼭 잔칫날 뭔가 빠뜨린 것처럼.

 며칠 전 뉴브리지캐피털사의 제일은행 매각이 생각난다. 제일은행의 매각을 보는 한국민이라면 누구나 그렇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IMF 외환위기로 정부의 공적 자금 150조원이 투입된 가운데 약 5조원이 흘러들어간 곳이 제일은행이다. (정신없이 문어발 확장을 해 오던 대기업이 부도가 나면서 함께 부채를 떠안게 된 제일은행은 애물단지가 됐는데 어찌하랴.) ‘투기성 자본’으로 불리는 뉴브리지캐피털사가 1조8000억원에 인수한 제일은행을 스탠더드차타드 ‘은행’에 매각하면서 1조6000억원을 얹어서 팔았다. 그것도 단 한푼 세금도 내지 않고.

 제일은행의 매각은 100억달러 순익을 낸 세계적 기업 삼성전자를 갖고 있는 우리의 자부심도 잠시 접어두지 않을 수 없게 한다.

 애시당초 정부는 부실 기업·은행을 매각할 때 국가신인도 제고, 선진금융기법 도입, 효율적 공적자금 회수 등의 명분을 내걸었다.

 하지만 이후 정부가 이러한 조치와 국부유출에 대해 합당한 설명을 했다고 생각할 국민은 그리 많지 않은 것 같다.

 오히려 이러한 방식의 외국 거대 투자자본의 지능적이고 존경할 만한 순익내기에 무력한, 또는 무관심한 듯한 정부의 모습을 보면서 실망한 국민이 더 많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정부의 이러한 모습은 이미 지난해 2월 역시 해외 자본으로 불리는 론스타의 외환은행 매입시 3개월도 안돼 신주인수로 1조원 가까운 거액을 챙긴 상황에서도 여실히 드러났다.

 전세계가 경악하는 수준의 놀라운 경영실적을 낸 삼성전자의 임직원 그리고 그 같은 경영실적을 따라가면서 세계적 기업으로 발돋움하고 싶어하는 우리 기업과 국민의 뿌듯한 마음 한켠에는 그래서 허전함이 남아 있다.

 국민은 대통령이 약속한 ‘연간 경제 성장률 6.5%×10년=1인당 국민소득 2만달러’이란 보랏빛 청사진이 이뤄지지 못할 꿈이라고 실망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보다는 정부가 할 수 있을 것 같은 데도 불구하고 맥 놓고 있는 듯한 인상을 주는 일련의 사태가 더는 없기를 바라는 것이 솔직한 바람일 것이다.

 이재구 경제과학부장@전자신문, jkl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