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야말로 ‘다사다난(多事多難)’ 했던 갑신년이 저물고 을유년의 새해가 밝았다. 이맘 때 흔히 써오던 이 표현이 새삼스럽게 가슴에 와 닿는 것은, 평생을 과학기술자로 살아 오다가 생각지도 않았던 정치권 한 복판에서 여러 가지 어려움을 겪게 된 까닭인지도 모른다.
연말연시 신문 지면은 지난 해에 발생한 정치 이슈와 대형사건들로 온통 도배돼 정작 중요한 우리 과학기술계에서 일어났던 놀라운 일들은 무관심 속에 파묻힌 것 같아 안타깝다. 하지만 작년은 과학기술부가 부총리 부처로 승격되고, 과학기술혁신본부가 출범하는 등 정부 조직 역사에서 매우 의미 있는 한 해였다. 특히 제17대 국회가 출범해 처음으로 통과시킨 법률에 따라서 그렇게 됐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결코 작지는 않다고 생각한다.
조선 말 개화파들이 우정국 낙성식에 맞춰 거행한 사건이 갑신정변이고 작년 간지도 갑신이라 두 해 모두 공교롭게 갑(甲) 자가 들어 있다. 그러고 보니 우리나라 근대 정보통신산업은 두 갑자(甲子·120년) 전에 시작된 셈이다. 일제 강점 등 국가적 수난도 있었지만 갑신정변 후 120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반도체·휴대폰·초고속망 등에서 세계 최고자리를 굳혔고, 휴대인터넷과 DMB 등 차세대 기술에서도 세계를 선도하는 정보통신 강국으로 성장했다. 또한 보건의료 분야에서도 서울대 황우석 교수가 인간배아 복제를 통한 줄기세포 추출과 배양에 성공, 이 분야에 대한 비전을 제시한 것은 매우 큰 의미가 있다. 작년 12월 29일 과학기술계의 최대 현안인 대덕연구개발특구의 육성에 관한 특별법이 우여 곡절 끝에 국회를 통과한 것도 나름대로 큰 소득이다. 물론 좋은 일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작년 여름에는 국내 자체기술로 개발한 소형항공기 ‘보라호’가 시운전중 추락해 앞날이 유망한 과학기술자들이 희생된 가슴 아픈 사고도 겪었다.
희비로 점철된 갑신년을 뒤로 한 채 이제 을유년 새해가 밝았다. 1905년 아인슈타인이 상대성이론을 발표한 지 1세기가 지난 것과, 그것을 기념해 유엔(UN)이 2005년을 ‘세계 물리의 해’로 지정한 것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은 것 같다. 작년 11월 국회가 정쟁으로 점철된 와중에도 ‘2005년 물리의 해 결의안’이 본회의를 통과했는데, 역대 국회에서는 보기 힘든 참신한 의안이었다고 자평하고 싶다. 아무쪼록 국내에 기초과학 진흥의 토대를 다시 세우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중국의 거센 추격으로 원천기술 도입과 노동력·자본의 투입량에 의존하는 경제발전모델이 한계에 달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원천기술의 확보와 기술혁신이 우리가 추구해야 할 새로운 모델이 되어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작년에 수립한 국가혁신체제(NIS)의 30개 중점 추진과제가 차질 없이 추진돼야 한다. 뿐만 아니라 특허 등 지적재산권에 대한 국가적 관심도를 높여 나갈 필요가 있다. 황우석 교수조차 특허경비를 마련하지 못해 어려움을 겪었다고 하니 문제다. 원천기술 확보를 위해서는 특허출원과 유지에 필요한 비용을 용이하게 조달할 수 있는 시스템이 절실히 필요하다.
30년 전 낙후했던 우리나라가 오늘날 기술 강국이 된 데에는 대덕연구단지가 기여한 바가 매우 크다. 작년 말에 대덕연구개발특구의 육성에 관한 특별법이 어렵사리 국회를 통과한 만큼, 10년 가까이 1인당 국민소득 1만달러 대의 늪에 빠져 있는 우리나라를 2만달러, 3만달러 시대를 견인하는 특구로서 자리매김하기를 기대한다.
보라호 사고를 교훈 삼아 새해에는 과학기술자들이 연구에만 전념할 수 있는 안전한 실험실 환경과 사고시의 보상시스템이 구축되었으면 한다.
◆홍창선 열린우리당 의원 cshong@na.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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