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초, 세계 최고, 그리고 세계 최강’
한국이 달라지고 있다. 유럽을, 미국을, 일본을 쫓아 그들이 지향하는 미래 기술을 엿보며 먹거리를 찾아 헤매던 과거는 이제 과거일 뿐이다.
산업의 기초와 기술의 기초는 그들로부터 얻었지만 서서히 세계 최초, 세계 최고, 세계 최강의 한국산 미래기술이 하나 둘 탄생하고 있는 것이다.
이미 디스플레이와 반도체는 지구상에 존재하지 않는 새로운 응용 기술로 세계를 지배하고 있다. 또 우리의 첨단 이동통신 콘텐츠는 전세계에 이식되고 있다. 많은 경제적 이익도 따라온다.
기술개발 경쟁에서 뒤처지는 기업은 앞으로는 생존할 수 없다. 우수한 기술을 보유하지 못한 국가는 미래 희망이 없다. 기업이 기술에 사활은 거는 것도, 정부가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미래 기술 경쟁에서 1등의 몫은 절대적이다. 2등의 몫은 거의 없다. 2등은 단지 1등을 따라가기 위해 모든 에너지를 쏟는 데 그치고 만다. 더욱이 기존 기술과는 별개의 전혀 다른 기술, 즉 브라운관이 TFT LCD로 대체되는 것과 같이 기존 기술의 연장선상이 아닌 ‘산업판도를 바꿀’ 새로운 기술의 탄생이 빈번한 디지털산업 분야에선 더욱 그렇다.
디지털 세상이 아날로그시대 기술 후발국인 우리에게 던져주는 기회도 사실상 이 같은 전혀 새로운 기술 패러다임의 전환으로 인해 가능해졌다. 반도체산업 기술발달사를 살펴보면 이 같은 변화를 쉽게 이해할 수 있다. 1950년 진공관 시절을 풍미한 업체는 RCA, 실바니아, 제너럴일렉트릭(GE) 등. 그러나 1960년대 트랜지스터 시대로 넘어가면서 1등은 휴즈의 몫이었다. 1970년대 집적회로(IC) 시대의 새로운 강자는 텍사스인스트루먼츠(TI). 이 때 GE는 10위권에서도 찾아 볼 수 없게 됐다.
그리고 1990년대 이후 진입한 서브마이크론(1미크론 미만) 반도체시대는 삼성전자와 NEC·도시바 등 아시아 업체가 주도권을 쥐는 먹고 먹히는 역사가 펼쳐졌다. 가까운 미래기술을 정복해야 하는 당위성은 바로 이 같은 역사가 증명하고 있다. 1등은 표준을 둘러싼 국제 경쟁에서도 그 위상을 확고히 할 수 있다. 최소한 10개 이상의 분야에서 1등을 차지해야만 우리가 글로벌 경쟁 시대에서 목소리를 높일 수 있다. 천연자원이 부족한 우리는 지금 기술강국 코리아 건설을 위한 열정에서 부국의 해법을 찾고 있기 때문이다.
가까운 미래에 실용화될 기술을 먼저 정복하기 위한 우리 기업·학계·정부의 노력이 본격화되고 있다. 철저한 선택과 집중을 통해 미래 로드맵이 마련되고, 로드맵 상의 실용화 기술에 대한 개발 열기가 어느 때보다 높다.
‘차세대성장동력’ ‘IT839’ ‘차세대 일류상품 육성’ 등이 대표적 사례다. ‘미래기술 실용화의 첫 단추’를 우리가 끼우겠다는 의지를 담고 있다.
◆영화 속 미래 기술, 이미 한국 산업 이끄는 실용 제품으로
미래기술은 우리가 영화 속에서 상상하던 일들을 현실화하며 새로운 산업과 수요를 창출하고 있다. 실제로 10년 전, 20년 전 영화에서 ‘먼 미래’로 그려진 기술 가운데 일부는 이미 우리 생활 속으로 들어온 지 오래다. 더욱이 영화 속 미래 기술 가운데는 현재 ‘첨단 제품’이라는 이름으로 명패를 바꿔 달고 한국 경제의 효자 노릇을 준비하는 제품이 수두룩하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거실의 한 쪽 벽을 모두 차지하는 대화면 TV. 로버트 저메키스 감독의 85년작 ‘백 투 더 퓨처 2’에 등장하는 대형 화면분할 TV는 이미 우리 거실에도 놓여 있다. 특히 우리나라는 40∼60인치 대형 디스플레이로 세계 시장을 석권하고 있으며, 삼성과 LG는 100인치 이상 크기 제품을 개발해 놓고 상용화를 준비하고 있다.
로버트 론고 감독의 95년 작 ‘코드명J’에서는 주인공 키아누 리브스가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벽에 내장된 TV로 e메일을 확인하고 리모컨을 눌러 전화를 거는 모습이 나온다. 당시 가까운 미래로 표현됐던 이 기술과 서비스는 ‘디지털방송’이라는 이름으로 상용화되고 있으며, 우리의 브로드밴드 기술과 세트 제품의 수출에도 크게 이바지할 것으로 기대되는 부분이다.
우리가 기술 개발 및 표준 주도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홈 네트워크 기술과 생체인식 기술도 과거 영화 속에서 미래를 표현하는 모습으로 자주 접해 왔다. ‘백 투 더 퓨처 2’에서 85년의 제니퍼가 타임머신을 타고 2015년의 자기 집으로 가는 장면. 여기서 제니퍼의 지문을 인식한 현관문이 자동으로 열리고 모든 전등은 제니퍼의 움직임에 따라 자동으로 점멸된다. 마티가 회사 ID카드를 잘못 사용한 뒤 단 몇 초 만에 해고통지가 날아드는 장면도 우리가 총력을 기울이고 있는 홈 네트워크의 전형적인 모습을 그리고 있다.
‘로스트 인 스페이스’에서 로빈슨 부인이 학교에서 말썽을 피운 아들 때문에 집에서 교장선생님과 홀로그램을 이용해 상담하는 모습과 ‘토탈 리콜’에서 샤론 스톤이 홀로그램 강사를 불러 테니스 교습을 받는 장면 등도 현재 우리가 플렉서블 디스플레이 분야에서 개발을 서두르고 있는 차세대 기술이다.
영화 ‘바이센테니얼 맨’에 등장하는 지능 로봇인 안드로이드인 앤드루는 식사준비와 청소, 심부름, 아이보기, 고장난 물건의 수리 등을 척척 해낸다. 아직 우리 현실 속에는 청소로봇 정도가 상용화돼 있는 상태지만, 우리 정부와 업계가 차세대 기술로 육성하고 있는 미래·지능형 로봇 개발 사업이 이를 현실 속 실용 제품으로 만들어 나가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해 본다.
심규호기자@전자신문, khsim@
◆기고-미래의 기술혁신 전략
*한국정보통신대학교 IT경영학부 정재용 교수(jychoung@icu.ac.kr)
정부는 지속 가능한 경제성장과 미래 국부의 원천을 찾기 위해 10대 차세대 성장동력과 정보통신부의 9대 신성장 동력을 발표, 의욕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이는 현재 세계 경쟁환경 내에서 우리나라의 위치에 근거한 위기의식으로부터 도출되었으며, 기술추격국에서 벗어나 기술선도와 추격을 동시에 달성해야 하는 입장을 반영하고 있다는 점에서 매우 적절한 노력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러한 전략을 더 구체화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준비해야 할 것이 많다. 선진국의 기술패권주의와 아시아 제2군 후발산업국의 추격으로 인해 우리나라의 혁신체제는 과거의 추격형 혁신체제에서 창조형 혁신체제로의 전환을 강하게 요구받고 있다. 과거 추격형에서의 기술정책은 추격해야 할 목표가 설정된 상태에서 자원투입에 의한 효율성을 어떻게 달성할 것인가에 초점이 맞추어져 왔다.
그러나 창조형 혁신체제에서의 기술혁신정책은 불확실성에 대처할 수 있는 능력이 가장 큰 관건이 된다. 많은 전문가가 지적하였듯이 현재 및 향후 기술의 진화는 수렴화와 복합화로 이어지고, 기술혁신의 원천은 학제 간 연구에서 도출되는 혁신의 복합성 경향이 강하게 나타나고 있다. 따라서 ‘불확실성’과 ‘복합성’ 등으로 대별되는 혁신의 패턴에 대응할 수 있는 기술혁신정책이 수립되어야 한다.
더구나 우리나라는 지난 추격모델에서의 성공적 안착으로 인해 새로운 패러다임으로의 변화에 대한 제도적 경직성이 발생할 수 있는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사고의 전환이 필요하다.
새로운 기술혁신 정책은 첫째, 미래를 선도하고 국부의 원천을 창출하기 위해서 기업과 정부의 기술혁신전략을 선도할 수 있는 다양한 분야의 지식집단에 의한 기획공동체의 활성화가 필요하다. 우리 고유의 미래를 그리는 기획공동체의 구성원은 공학자, 기술자뿐 아니라 사회과학자도 포함하여 다양한 각도에서 접근해야 한다.
이러한 활동은 잠재적 전략기술의 기획과 새로운 기술적 기회의 탐색을 가능하게 할 것이다. 우리가 그리는 미래전략은 플랫폼 기술혁신에 초점을 맞추어야 하며 동시에 기술개발이 주는 부정적 요인에 대해서도 배려하는 균형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둘째, 기술개발에 있어서도 기술수렴화로 인해 표준문제가 전략적으로 이용되고 있으며 최근 특허 논쟁이 빈번하게 일어나는 만큼 기술 선도국에 버금가는 특허, 표준화 등에 대한 우리 고유의 기술전략 설계가 필요하다.
셋째, 과거 대기업에서 해외원천을 통한 인하우스(in-house)와 기업 내부에서 제조를 둘러싼 내적 통합에서, 다양한 기술혁신 주체 간 네트워킹을 통한 기술원천의 다변화로 방향을 선회해야 할 것이다. 외부의 지식원천을 어떻게 내부적으로 통합할 수 있는지가 경쟁우위의 관건으로 작용할 것으로 예상된다.
넷째, 기술혁신 주체가 인력이며 우리의 주요 자산이 강한 인적자본인 만큼 정보통신인력 양성정책을 최우선 순위로 둬야 하며, 특히 수요지향적 인력공급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 필요하다. 또한 협상학, 미래학, 전략적 최고 기술경영자 및 기술경영전문가 양성을 통한 미래형 기업가적 공학인 양성을 추구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기술혁신 정책은 단기적인 성과에 급급하기보다는 학습능력 제고와 제도적 학습 메커니즘 구축이라는 측면에서 평가가 이루어지는 방향으로 설계되어야 한다. 선진국에서도 이미 시스템으로 접근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할 때 기술과 혁신정책이 조화롭게 이루어질 수 있는 시스템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이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정책평가자도 인내심이 필요함과 동시에 정책설계자는 산업별 고유의 기술 특성을 파악하여 기술혁신의 원천은 어디에서 오며 기술혁신은 어디에서 발생하는가에 대한 산업별 기술혁신체제를 연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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