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신년특집]핵심기술을 역수출한다

‘기술 독립, 기술 수출 우리가 이룬다!’

 휴대폰·반도체·가전 분야 국내 업체들의 화려한 성공 뒤에는 원천 기술과 부품·소재 분야의 종속이라는 어두운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 있다.

 눈에 보이는 완성품으로는 세계 시장을 호령하지만 그 제품을 만드는 핵심 부품·소재는 대부분 일본 등 해외에 의존할 수밖에 없던 것이 국내 업체들의 사정이었다. 1970년대 이래로 줄기차게 부품·소재 국산화와 자립 역량 강화를 외쳐왔지만 선진 업체들에 대한 추격 성장에 급급하던 우리로서는 어려운 과제였다.

 실제로 한국무역협회의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대일본 무역 적자는 2002년 147억달러, 2003년 190억달러, 올해 8월까지 164억달러를 기록하는 등 점점 커지는 추세다.

 그러나 이제 상황이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 국내 업체들이 반도체·디스플레이·휴대폰에서 세계 1등 업체로 자리잡았다. 이제 앞선 기능을 충족할 원천 기술과 새로운 부품·소재가 필요하다.

 이제 필요에 의해서라도 국내 산업계는 부품·소재 역량 강화에 나설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과거 해외에 의존하던 기술을 국산화하고 나아가 이를 해외로 역수출하는 우리 기업들도 나오고 있다. 또 수출 분야도 소재 및 부품에서 장비까지, 산업 분야도 전기전자에서 자동차, 화학·섬유까지 광범위하다.

 원천 기술에서 부품·소재, 공정 기술·장비, 완제품까지 일관 체제를 구축, 세계 산업의 주도권을 쥐기 위한 첫 걸음을 뗀 것이다.

 ◇해외 의존 끊는다=BGA IC 소켓 커넥터는 반도체 신뢰성 검사 장비의 필수 부품이지만 그동안 전량 수입에 의존해 왔다. 그러나 직원 30명의 중소기업 마이크로컨텍솔루션(대표 양승은 http://www.koreame.com)이 최근 이 제품을 국산화, 삼성전자·하이닉스 등 국내 주요 소자 업체들에 공급하고 있을 뿐 아니라 원조 생산국인 일본으로도 역수출을 진행중이다. 이 회사는 일본 시장 공략을 통해 올해 3억원 수준인 수출이 내년 20억원으로 늘어날 전망이다.

 서암기계공업(대표 권영호 http://www.smiltd.co.kr)은 NC선반에 사용되는 파워척과 실린더를 자체 개발했다. 그러나 이 회사는 2002년부터 이 제품을 자체 기술로 생산하고 한발 더 나가 독자 설계한 모델의 도면을 지금까지 한국 업체에 로열티를 받아오던 일본 회사에 역수출하는 개가를 올렸다.

 일본·미국 등의 해외 업체에 의존하던 반도체·LCD 생산 장비도 국산화가 빠르게 진척되는 한편 일본 등 원조 기술 국가에 대한 역수출 사례도 늘고 있다. 주성엔지니어링(대표 황철주 http://www.jseng.com)은 지난 3월 일본의 세계적 소자업체 D사에 나노급 소자 제작에 필수적인 최첨단 300㎜용 ALD 장비를 납품했으며 양산용 장비의 추가 수주도 추진중이다. 아이피에스(대표 장호승 http://www.ips-tech.com)도 올 초 일본 2개 업체에 ALD 장비를 공급한 데 이어 대체에너지 생산장비를 일본 업체에 추가 납품했다. 대체에너지 생산 프로세스와 반도체 생산 프로세스의 일부 공정이 같다는 점에 착안해 개발한 이 장비로 아이피에스는 50억원 이상의 수익이 예상된다.

 에스티아이(대표 노승민 http://www.stinc.co.kr)도 삼성 탕정 라인에서 수주한 중앙화학약품공급장치(CCSS)를 히타치에 납품하며 일본 공략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천리길도 한 걸음부터=우리 기업들의 핵심 기술·부품소재의 해외 역수출은 최근 점점 늘어나는 추세이긴 하지만 아직 전체적으로는 미미한 수준이다. 부가가치가 높은 반도체·LCD 전공정 장비, LCD용 기능성 소재 등에선 아직 국산화율이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국내 반도체·디스플레이·휴대폰 산업 등이 세계 선두권으로 나서면서 첨단 제품 개발을 위한 국내 세트 업체와 부품·소재 업체와의 협력 필요성이 더 커졌다. 국내 한 LCD 재료 업체 경영자는 “세상에 없는 첨단 제품 개발을 위해선 새로운 소재와 원천 기술이 필요한데 국내 세트 업체들을 위협적 경쟁자로 인식하기 시작한 해외 업체들과 이런 부분에서 협력하기는 힘들어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세계적 경쟁력을 갖춘 국내 세트 업체와 부품·소재 기업의 밀접한 협력을 통해 세계 산업을 선도할 수 있는 원천 기술을 개발해야 한다는 것. 최근 부품·소재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각종 지원책을 내놓고 있는 정부의 역할도 주목된다.

 또 일본 등 선진 시장에 판매되는 국산 장비 및 부품소재는 보다 차별화된 기술로 제작된 것이라 애써 개발한 기술이 해외로 유출되지 않도록 사전에 특허를 등록하는 등의 준비도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대일 무역 적자 얼마나…

 국내 업체들이 핵심 부품·소재를 해외 선진 업체에 역수출하는 경우가 많이 늘었으나 아직 전체적으로는 미미한 수준인 것이 현실. 특히 일본에 대해선 더욱 그렇다.

 우리나라의 만성적 대일 무역수지는 2001년까지 일시적으로 줄어들었으나 그 후 다시 급격히 확대됐다. 무역협회 조사에 따르면 2001년 대일 무역 적자는 101억달러로 그 전년 114억달러에 비해 줄었으나 2002년 147억달러, 2003년 190억달러로 대폭 증가했다. 지난해도 8월까지 164억달러의 적자를 기록했다.

 역설적이게도 이렇게 대일 무역적자가 늘어난 것은 우리나라의 반도체·디스플레이 등 전자·IT 관련 수출이 호조를 보였기 때문이다. 반도체·LCD 제조 장비 및 핵심 부품·소재의 수입이 덩달아 늘어나면서 무역 역조가 커진 것. 세계 전자 시장을 호령하는 한국 산업의 맹점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현상이다.

 2003년 기준으로 우리 나라의 대일본 부품·소재 수출은 77억달러, 수입은 216억달러를 기록했다. 1999년부터 2003년까지 부품 수출은 연평균 7.9% 증가했으며 소재 수출은 2.3% 증가에 그쳤다. 2003년 부품·소재 수입은 전기전자부품(87억달러), 화학소재(32억달러), 1차 금속 소재(29억달러) 등의 순이었다.

 전자 부품의 경우 메모리 반도체의 높은 경쟁력, 비메모리 반도체 생산, 일부 전자부품 국산화로 수입 증가율이 상대적으로 낮은 것이 위안이다. 그러나 한국 부품·소재 기업들의 평균 기술 수준은 일본의 80%고 핵심 제품에 있어선 그 격차가 더 큰 것이 현실이다.

 한·일 자유무역협정(FTA)이 체결되면 부품·소재 분야의 한일 격차는 더 커질 것이란 우려가 높다. 한국의 관세가 전반적으로 일본보다 높고 중소 기업 비중이 크기 때문이다.

 

◆열정과 끈기가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기술의 왕도

 아직 뿌리가 깊지 않은 국내 부품·소재 업계에서 해외에서 인정받고 수출까지 하는 기술력을 개발한 주역들은 대부분 한 분야에 열정을 갖고 끈질기게 천착한 전문 ‘장이’다.

 알루미늄 전해 콘덴서의 핵심 소재인 알루미늄 에칭박을 국산화, 일본 경쟁사에 수출까지 한 알루코(대표 김연수 http://www.aluko.co.kr) 김연수 사장이 대표적인 예다. 그는 30년 이상 전해콘덴서와 에칭박 분야에 매진해 왔다. 기술 유출을 극도로 꺼리는 일본 업체들의 견제를 뚫어가며 때로는 일본 연수 담당자의 자료를 몰래 훔쳐보면서 첩보전을 방불케 하는 노력을 하며 기술 공부에 전념했다.

 이런 노력의 결과 알루코는 넘기 힘들 것 같던 기술 장벽을 극복하고 주요 전자부품인 알루미늄전해콘덴서의 핵심 소재를 국산화할 수 있었다.

 적층세라믹콘덴서(MLCC)의 유전체 원료인 BTP(Barium Titanate Powder)를 일본에 수출하고 있는 석경에이티(대표 임형섭 http://www.sukgyung.com)는 무기 재료·나노 재료 분야에서 한길을 파온 전문 업체다. 이 회사 임형섭 사장 역시 무기 재료 분야를 전공했으며 지금도 끊임없이 관련 연구를 진행하고 산·학 협력을 이어가는 이 분야 전문가다.

 석경에이티는 국내 업체로는 유일하게 일본 업체들에 BTP를 수출하고 있으며 북미 지역 생활용품 업체와도 나노 기술을 적용한 제품 개발 계약을 하는 등 해외에서도 기술력을 인정받고 있다.

 갈륨비소 웨이퍼 업체 네오세미테크(대표 오명환 http://www.neosemitech.co.kr)의 오명환 사장 역시 화합물 반도체 웨이퍼 분야에 전력해 온 경우. 그는 대기업에서 관련 연구를 했으며 당시 소속 기업이 이 사업을 접은 후에도 포기하지 않고 회사를 창업, 지속적인 연구 개발을 통해 화합물 반도체 웨이퍼의 국산화에 성공했다. 이를 통해 전량 수입에 의존하던 갈륨비소 웨이퍼의 수입 대체가 이뤄졌으며 일본·대만 등에 역수출도 하게 됐다.

  한세희기자@전자신문, hah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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