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웅남 개발이사는 큐로드의 ‘리버스’를 책임지고 있는 사람이다. 석사 논문을 포기하고 게임계에 발을 담근 10여년 동안 소위 말하는 바닥을 기었다. 온갖 시련과 역경을 헤치고 이제 당당히 자신의 손으로 만든 온라인 게임을 유저 앞에 내놓는 심정은 누구도 알지 못할 것이다. 그가 담담히 털어 놓은 이력에서 기자는 국내 게임사의 이면을 엿보는 것 같았다.
큐로드의 김웅남 개발이사는 우연곡절이 많은 사람이다. 대학원에서 중국철학을 전공하고 논문만 쓰면 석사학위를 받을 수 있었지만 모든 것을 포기하고 미리내소프트에 입사했다. 그의 말에 따르면 “지금이 아니면 게임 개발에 몸담을 수 없었던 완벽한 기회”였고 한다. 미리내소프트에서도 곧바로 개발에 참여한 것은 아니다. 애프터서비스 팀과 기획팀을 오가며 주로 유저들의 패키지 불량에 대한 상담원 역할을 했다. 매일 전화에 시달리며 유저들의 불만과 요구사항에 답변하고 게임 설치에 대해 설명했다. 그래서 지금 전화받는 것 하나는 자신있다고.
# 내 인생은 소설이자 인생극장
그러다 ‘네크론’ 개발에 참여하고 웹인터내셔날로 자리를 옮겼다. 이 곳에는 ‘마비노기’를 만든 김동건 실장이 있었고 차기 프로젝트 메인 기획 자리를 얻었다. 하지만 회사 사정상 여기를 떠나 옛 미리내소프트의 멤버들과 함께 K 팀을 만들어 ‘천녀유혼’ 류의 게임개발에 착수했다. 그러나 팀을 만든지 얼마되지 않아 IMF가 터지고 우리 나라 경제가 나락으로 떨어지면서 다시 방황하기 시작했다.
“IMF가 터지고 월급조차 못 받던 시절에, 무겁고 답답한 마음을 게임 시나리오로 쏟아 부어 트리거소프트로 무작정 보낸 것이 제 인생의 전환점이 됐습니다.”
그의 시나리오에 깊은 인상을 받은 트리거소프트의 정무식 이사(현 엔씨소프트 개발팀장)는 김문규 사장과 면담을 주선했고 입사가 거의 확정됐다. 하지만 신의 손은 그에게 평탄한 길을 주지 않았다. 당시 최고의 게임 개발자로 인정받았던 디지털임팩트의 남인환 감독이 끈질긴 구애를 펼쳤고 결국 오지인터미디어로 방향을 급선회했다.
남인환 감독이 소개한 오지인터미디어에서 트리거소프트의 실시간 전략 시뮬레이션보다 RPG와 MMORPG를 만들고 싶었던 욕심이 앞섰던 것이다. 그 곳에서 그는 ‘뮤’로 유명한 조기영 이사와 같이 작업을 했다. 김웅남 개발이사는 오지인터미디어를 마지막으로 이오리스로 옮겼고 이오리스에서 분사한 회사가 바로 큐로드였으며 드디어 안착한 그의 집이었다. 실로 살아있는 국내 게임계의 역사이자 인생 극장이 아닐 수 없다.
“고민만 하던 시절이었습니다. 제가 회사를 자주 옮긴 것은 이유가 있었는데 대부분 경영진이 문제였습니다. 게임 회사라고 해서 게임만 잘 만들면 만사 오케이가 아니더라고요. 경영진과 개발진의 조화는 여전히 전체 게임 업체의 화두일 겁니다. 물론 경제적 어려움도 함께죠.”
# 게임은 무서운 세뇌 수단
그런데 왜 중국철학을 공부하던 철학도가 갑자기 게임계에 몸을 던졌을까?
“어느날 게임이 얼마나 무서운 세뇌 수단인지 깨달았습니다. 사회과부도를 펼치니까 오로지 일본 지도와 지명만 눈에 들어 오는거에요. 그래서 아무나 이 도구를 사용하면 안되겠다 나라도 게임 개발에 뛰어들어 똑바로 만들어야지하고 생각했고 그게 이쪽으로 온 이유입니다.”
그는 그 이유도 철학적이라며 웃었다. 당시 게임들은 대부분 PC게임이었고 불법으로 돌아 다니던 일본 제품이었다. 많은 유저들은 특히 일본 게임에 열광했고 자신도 모르게 일본 역사와 문화, 일본어를 익히게 됐다. 국내의 개발자들이 일본풍의 게임을 곧잘 만들어내는 이유도 여기에 기인한다.
# 게임은 이공계가 아니라 인문학
“많은 유저들이 게임을 개발하기 위해 프로그래밍을 배우고 컴퓨터와 하드웨어를 공부합니다. 하지만 게임의 기본은 창조이며 상상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인문학의 기본 바탕이 깔려야 가능합니다. 책을 많이 읽고 다양한 지식을 폭넓게 익히며 개방된 사고를 가지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죠.”
그는 앞으로 게임 개발에 인생을 던질 후학들에게 이처럼 말했다. 보통, 게임을 이공계의 학문인 것으로 착각하고 있는데 결코 그렇지 않으며 교과서에 나온 내용만 달달 외우는 방식은 훌륭한 게임을 만드는 것에 큰 방해가 된다고 말했다. 많은 대학 전공자와 게임 아카데미 출신들은 개발을 배웠지만 교과서 이상의 것을 알지 못하며 다른 문화와 인문학에 약한 모습을 보여 기획과 개발에 어려움을 겪는 일을 많이 봤다고 덧붙였다. 게임은 예술이며 모든 문화의 종합체라는 것을 볼 때 그의 말은 매우 정확하다.
‘이제 성공하는 일만 남았네요’라고 말을 던지자 김 이사는 한바탕 크게 웃었다. 큐로드에서 ‘리버스’에 대한 모든 책임을 짊어지고 있는 그도 이제는 대박을 기대하는 눈치다. 그 동안의 굴곡이 게임 하나로 보상받는 것은 아니지만 고생할 만큼 했다는 표정이 역력했다.
“게임에 충실하면 성공은 따라온다고 생각합니다. 오타쿠 정신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고요. 상업적으로만 게임을 만들면 절대 돈을 못 번다는 것이죠. 게임 자체에 충실하고 완성도를 높이지 않으면 유저들이 결국 외면합니다. 제가 만드는 리버스는 유저들에게 제대로 인정받고 싶습니다.”
<김성진기자 김성진기자@전자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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