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산학 전공자도 사장이 될 수 있나요.” “당연하지, 전산학 전공자로서 기업의 CEO가 된 대표적인 사람은….”
제자의 철없는 질문에 한참을 설명하던 필자는 아차 하고 말았다. 답변의 핀트가 어긋나고 있다는 것을 순간적으로 느꼈던 것이다. 1인당 국민소득 2만달러 시대를 열기 위해 과학기술 입국을 지향한다고 주장하는 나라에서 이공계 기피현상이 심각하다는 것은 참으로 아이러니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위기의식에 몰린 정부는 여러 가지 이공계 우대 정책을 발표하고 있다. 고등학생의 이공계 진학을 유도하고 이공계 교육의 내실화를 기한다고 한다. 이공계의 일자리를 더 많이 창출하고 이공계인의 사회적인 지위 향상을 도모한다고 한다. 이공계인의 한 사람으로서 반가운 일이다.
그러나 한편으론 과연 이러한 방안이 이공계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든다. 정책적인 방법들만을 가지고는 역부족이라는 생각 때문이다. 어쩌면 핀트가 어긋난 설명을 열심히 해대던 필자의 입장과 같을지도 모른다. 그보다는 전문가가 전문가로서 대우받는 사회 환경으로의 변화가 더욱 필요한 것이 아닐까.
전문가란 그 분야에서 폭넓은 지식과 경험을 가져 그 분야에 관한 문제에 있어서는 뛰어난 해결 능력이 있는 사람을 말한다. 어떻게 보면 대학에서의 전공보다도 혹은 박사학위 논문 주제보다도 오랜 시간 한 분야에서 근무한 경력이 전문가의 척도가 될 수 있다. 특히 이공계에서는 분야별로 차별화된 지식과 경험이 있어야 하므로 더욱 이러한 전문가의 필요성이 부각되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의 현실은 이공계 전문가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이러한 명제와는 어울리지 않는 몇 가지 모순을 갖고 있다.
우선적으로 현재 이공계 전문성에 대한 가치를 충분히 인정하고 있지 않다. 오히려 전문성을 포기하고 경영직으로 자리를 옮기면 CEO의 길을 열었다고 축하인사를 한다. 참으로 이해할 수 없는 현상이다. 반도체 연구로 30년을 지내온 선배가 그 회사 부사장으로 승진하면서 받았던 축하인사가 어색하지 않은 것도 그렇고, 환갑이 가까운 노인이 오실로스코프 앞에 앉아 전자파의 흐름을 관찰하는 것에 대해 오히려 어색함을 느끼는 우리의 현실이 우리 사회에서 이공계 전문가의 위치를 대변해 준다.
이러한 생각의 이면에는 CEO가 되는 것이 최고의 성공이라는 오랜 관념과 사회 환경이 가진 그릇된 생각이 자리하고 있다. 한 회사에 근무하는 것이 한 가지 일을 하는 것보다 중요하다는 인식이 만연되어 있다. 오히려 정보보호 전문가는 정보보호에 관한 전문성을 인정받고 CSO(Chief Security Officer) 혹은 정보보호 솔루션을 연구하는 자리가 가치있는 성공으로 인식되어야 할 것이다. 물론 이러한 가치는 실제적인 보상으로도 표현되어야 한다.
또한 이공계 전문가는 이공계 육성 정책을 입안하기보다는 단순히 자문에 참여하는 경우가 많다. 정책 입안은 행정가에 의해 이루어져야 한다는 편견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이공계 관련 정책과 연구 환경의 개발은 이공계 전문가들에 의해 시작되어야 한다. 이공계의 복잡한 역학 구조는 일반 정책 입안자들의 단순한 상식과 판단으로 정답을 얻을 수 있는 기회가 적기 때문이다. 적어도 이공계 전문가가 참여할 수 있도록 문이 열려야 하며 이공계 전문가 스스로 정책 입안에 적극 참여하여야 한다.
이러한 노력을 통해 이공계 전문가로서 자긍심을 느낄 수 있는 사회 환경이 조성되고 선진국과 같이 연구와 개발에 평생을 투자하고 자랑스러울 수 있는 직업관이 형성되리라 기대한다. 필자는 컴퓨터공학을 전공한 전형적인 공학도다. 대학에 진학하면서부터 무언가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즐거움으로 살아왔고, 지금도 공학도로서 연구가 업인 것을 후회해 본 적이 없다. 아마도 CEO가 성공의 척도라는 생각을 애초부터 한 적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단지 전문가로서 인정받는 즐거움을 얻기 위해 최선을 다할 뿐이다.
◆정태명 성균관대 정보통신공학부 교수 tmchung@ece.skk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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