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제 임요환 열 받았다

테란의 황제 임요환이 엉성한 지도(맵) 때문에 화가 잔뜩났다. 임요환은 지난 10월 15일 EVER스타리그 8강전이 열리던 날 “잦은 맵 변경과 이로 인한 스트레스 때문에 신경쓰인 적인 한 두번이 아니다. 나 뿐만이 아니다. 이미 오래전부터 있었던 일이라 그러러니 하려 했는데 도저히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각종 경기 맵에 대해 강한 불만을 터트렸다.최근 모 게임방송사의 공식 대회 기간 중 갑작스런 맵 변경을 놓고 그는 “왜 처음 만들 때부터 정확하고 충분한 테스트를 거치지 않았는지 의문이다. 선수들에게 아무런 통보 없이 그것도 시즌 중에 맵의 패치나 버전이 바뀌면 어떻게 연습하라는 것이냐”며 강한 불만을 터뜨렸다.

프로리그 출전을 앞두고 전략을 세워가며 연습하던 맵에 어느 순간 보니 미네랄 위치가 바뀌어 있었다는 것이다. 확인해보니 SKY프로리그에서 사용하는 ‘오딘’이라는 맵이다. 임요환은 이어 “한껏 연습하다가 ‘그 버전 아니다. 이 버전으로 해라’는 코치님, 감독님의 말을 듣고 나면 힘이 쭉 빠질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고 토로했다.

억대의 연봉에 최고의 명성을 얻고 있는 스타 프로게이머이면서도 인터뷰를 할 때면 여전히 수줍은 많은 소년처럼 쑥스러워하던 그가 맵에 대해서는 이것 저것 할말이 많았다. 곧바로 “하나의 맵이 새로 리그에 사용되면 선수들은 팬들이 상상하기 어려울 만큼 많은 연습과 시뮬레이션을 거친다.

맵의 구석구석에 있는 구조물 하나까지 신경쓰게 되고 미네랄의 위치에도 대단히 민감하다. 그렇게 연습을 해야 좋은 경기를 보여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맵의 중요성은 따로 설명하지 않아도 선수 누구나 실감한다”고 말했다.얼마 전 ‘KT-KTF 프리미어리그’에서 SK텔레콤 T1 소속의 최연성과 김성제 선수는 황당한 일을 겪었다. 맵은 ‘루나’였다. 두 선수 모두 나름대로 마련한 전략을 하나씩 실행에 옮기며 막 접전을 펼치려하는데, “어! 그동안 알고 있던 그 루나가 아니네!” 당혹스런 순간이었다. 두 선수는 일단 경기를 끝낸 후 소속팀 코치와 감독에게 이를 알렸고, 같은 팀 소속 선수이므로 항의 없이 그냥 넘기기로 내부 방침을 정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게임TV의 경우 올 들어 새로운 리그를 시작하면서 사용한 맵이 당초 결정된 최종 수정본이 아닌, 문제가 있던 중간 버전의 맵이 사용되기도 했다. 또 올 초 SK텔레콤 T1과 KTF매직앤스의 친선 경기에서는 미네랄의 위치가 뒤바뀐 맵이 등장해 출전 선수들을 당혹스럽게 만든 사례도 있었다.

정규 대회가 아닌 친선대회였기에 망정이지 팀과 선수의 어필 정도에 따라 경기 자체가 무효화 될 수도 있었던 주관사의 실수였다.

이처럼 정규리그나 친선대회를 막론하고 ‘스타크래프트’ 프로 게임 대회에서 끊이지 않고 발생하며 제기되는 문제가 맵에 대한 불만이다. 대회 시작부터 끝날 때까지 줄 곳 비난의 대상이 되는 맵도 있다. 물론 어제 오늘 일은 아니며 문제 제기가 없었던 것도 아니다.임요환이 총대를 멨다. 황제라는 닉네임 이전에 나이로만 봐도 그는 선수 중 최고참이다. 그는 “예전에 개마고원맵 같은 경우 자원 채취에 치명적인 언밸런스가 있었지만 한 시즌이 끝날 때까지 바뀌지 않았다. 선수들 입장에선 차라리 그게 편하다. 맵 가지고 감정을 드러내고 싶지 않았지만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 선수들이 하나 둘이 아니란걸 알고 생각이 바뀌었다”며 감정을 숨기지 않았다.

이와 관련 SK텔레콤 T1의 성상훈 코치는 “예전 프로리그 1라운드 때는 정해진 시간에 엔트리를 제출하지 않을시 벌점을 받게 되고 벌점을 받으면 동률일 때 우선 순위에서 제외되기 때문에 모든 팀들이 조심하고 또 조심했다. 요환이도 예외는 아니다. 그런 와중에 정작 주관사가 지각을 하거나 사용 맵을 늦게 보내 신뢰를 떨어트리는 등 운영상의 미숙을 지적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프로게이머와 게임팀에서 제기하는 맵에 대한 불만은 한두가지가 아니다. 종족간 언밸러스부터 잦은 변경, 사용맵에 대한 늦은 통보, 특히 대회기간 중 맵 수정과 미숙한 맵 운영에 가장 큰 불만을 나타냈다. 그래서 어쩌자는 것이냐고 묻는다면 간단하게 요약된다. 맵 제작 및 공모부터 최종결정에 이르기까지 충분한 검증을 거쳐 보다 완성된 맵을 사용하고, 결정한 맵에 대해 일관성을 유지해 달라는 것이다.대회 상금이 수억원에 이르고 수만명의 게임 팬들이 지켜보는 대회에서 공식으로 사용하는 맵이 철저한 검증없이 졸속 제작된다면 이는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POS 하태기 감독은 이를 빗대 “예를 들어 축구로 치면 골대 위치가 달라진다거나 야구에서 베이스 위치가 매번 뒤바뀌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평가했다.

현재 양대 게임방송사를 포함해 공식대회에서 사용하는 맵은 20종이 넘는다. 큐리어스 이윤열 선수의 경우 개인리그와 팀리그를 포함해 많을 때는 주당 10개 가까운 맵을 소화해야할 때도 있다고 한다. 양대 스타리그와 프리미어리그에 출전하고 있는 유명 선수들은 평균 8개, 하루 한개 이상씩 연습하는 꼴이다. 그만큼 선수들이 연습해야할 맵은 많다.

물론 맵의 많고 적음이 문제는 아니다. 중요한 것은 선수들이 안심하고 연습할 수 있는 맵에 대한 신뢰다.

소울 김은동 감독은 “맵을 전문적으로 제작할 수 있는 전문 설계사가 필요하다. 특히 사전에 거치는 맵테스트에서 다소 시간이 걸리더라도 일반 아마추어가 아닌 프로선수를 중심으로 검증 과정이 이뤄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큐리어스 이준호 코치는 “방송사마다 맵 제작 및 채택 때 추구하는 방향이 다르다는 것도 문제”라며 “공식대회에서 사용하는 맵은 대회를 막론하고 협회나 어느 한 곳에서 주관해 일관성을 유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그러나 반대 의견도 만만치 않다. 온게임넷 엄재경 해설은 “연습해야 할 맵이 너무 많다는 불만은 수긍하기 어렵다. 모두에게 공정하게 적용되며 누가 얼마나 더 많이 연습하느냐에 따라 성적이 결정되는 것이다”고 말했다.

큐리어스 이윤열 선수는 “맵에 대한 불만은 딱히 없다. 반대로 특정 종족에 어렵다는 맵은 물론 다양한 맵에서 이겨봐야 최고라는 소리를 들을 수 있고 그때 승리의 쾌감은 더 크다”고 말했다.

엄재경 해설은 “과거 한 때 이미 잘 알려진 맵을 사용해 달라는 선수들의 요구가 거셌던 적이 있었다. 하지만 공정한 경쟁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팬들을 생각해서도 바람직한 방향은 아니다. 맵은 여러 면에서 자주 바꿔주는 것이 필요하다. 리그 해설자와 PD, 게임팀 감독과 프로선수까지 모아서 맵에 대한 밸런스와 문제점을 체크하고 있지만 사실 어떤 불만도 없는 완벽한 맵을 만들기는 어려운 일”이라고 말했다.

<임동식기자 임동식기자@전자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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