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 9일은 훈민정음이 반포된 지 558돌이 되는 날이다. 한글날을 맞을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이제 우리도 남북 통일 시대에 대비한 언어통일을 심각하게 고려할 때가 다가왔다고 본다. 아직 통일을 얘기할 만큼 대내외적인 분위기가 성숙했다고는 할 수는 없겠지만 문화·기술 등 다양한 분야에서 상호 간 협력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은 분명 바람직한 현상이다.
분단이 고착, 장기화되어 시간이 흐를수록 일상용어는 물론 기술적인 용어들까지 남북 간 이질화가 심화되고 있다. ‘말’이란 행동을 전제한다는 측면에서 무엇보다 중요하기 때문에 남북 언어의 공감대 조성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특히 급변하는 정보기술(IT) 용어의 경우는 더욱 그렇다. 그런 의미에서 남북 학계가 중심이 되어 IT 용어의 통일에 관한 세미나를 여는 등 접촉하고 있는 것은 상당히 긍정적인 일이다. 실생활에 필요한 이런 문제들을 함께 고민하고 답을 얻어내는 것도 민족 통일을 조금이라도 앞당기는 데 큰 보탬이 될 것이라 믿는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필자는 IT용어의 통일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도 컴퓨터를 입력하기 위한 가장 기초적인 단계인 자판 통일부터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컴퓨터에 의한 문자 처리기술에서 가장 필수적인 것은 문자 입력방식이다. 지난날 타자기 시대에 ‘한글의 기계화’로 일컬어지는 기술이 있었다. 1950년대 영문타자기의 기계적 형태를 그대로 한 한글문자용의 타자기가 대표적이다. 이 한글타자기 발명으로 30여 년 동안이나 2벌식, 3벌식, 4벌식, 배열 방법의 전쟁으로 한바탕 소란을 치러왔다. 왜냐하면 그만큼 자판 배열이나 입력 기술이 중요한 것이기 때문이다.
컴퓨터 자판의 과학적인 배열과 교육은 IT시대에 매우 중요한 기본기술이라 할 수 있다. 운동선수의 기본기가 달리기라면 컴퓨터 운용의 기본기는 키보드를 빠르고 정확하게 그리고 자연스럽게 다루는 것이다. 키보드를 제대로 익히지 않고 서투르게 속칭 독수리 타법이나, 방아개비 타법으로 키를 꾹꾹 찌르면서 게임과 인터넷 등 흥미 위주로 컴퓨터를 사용한다고 생각해보자. 컴퓨터 자판이 과학적으로 배열되지 않으면 이로 인해 손과 손목 그리고 팔뚝에 염증성 질병을 일으키는 ‘반복 사용 긴장성 증후군(repetitive strain injury)’을 유발하게 된다. 결국 과학적인 컴퓨터 자판의 배열은 국민이 건강하게 마음 놓고 컴퓨터로 작업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준다는 데 의미가 크다.
우리나라 컴퓨터 교육정책의 경우 기본기술인 자판을 먼저 교육하지 않고 흥미 위주의 교육을 하고 있어 눈에 보이지 않는 여러 가지 문제를 야기하고 있다. 실제 초·중등학교 교과서를 보면 이같이 가장 중요하고 기초적인 자판 교육은 고작 한두 쪽 정도 할애해 소개만 하고 있는 것이 전부다. 자판교육의 필요성은 강조하고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고 생각한다.
만약 우리가 예상치 못한 이른 시일안에 통일이 되었다고 가정해 보자. 만약 남북의 컴퓨터 자판이 통일이 되지 않았을 경우엔 생각보다 심각한 문제를 부를 소지가 있다. 말과 입력 방식이 다를 경우, 혼란을 초래할 수 있다는 것은 이미 우리가 컴퓨터 보급 초기에 경험을 해 보았던 사실이다. 이에 대비해 학계에서나 산업계에서는 남북 간의 컴퓨터 통일 자판을 만드는 데 서둘러 나서야 할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남북 통일자판을 어서 만들어 개성공단 준공과 함께 한글 컴퓨터 통일자판을 보급하면 좋지 않을까 하는 바람도 있다. 또 가능하다면 남북 ‘통일 컴퓨터 자판경기대회’를 여는 것도 상호 격리된 언어문화를 통합할 수 있는 좋은 계기를 마련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조석환 평택대 교수 shcho@ptuniv.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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