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신문은 창간 22주년을 맞아 전자신문 창간과 함께 해온 4인의 전자·IT인을 찾아보았습니다.
전자신문과 같은 해인 1982년에 창립된 데이콤에 22년째 몸담고 있는 공채 1기 팀장, 그 해에 사회생활을 시작한 연구원, 전자신문 창간독자로서 IT업계에 종사하고 있는 독자, 올해 만 22세를 맞은 전자신문 동갑나기를 찾아 보았습니다. 전자신문 창간 22주년과 함께 한 이들은 전자신문이 전자·IT사업계의 정보전달자이자 그 자체로서 산업의 산 역사였다고 말하면서 향후에도 지속적으로 차별화된 기사로 IT업계를 선도해 줄 것으로 유일한 정론지로 매진해 줄 것을 부탁했다.
*사회생활 첫대부터 동반 이상걸 KTF 지점장
“80년대에도 기술 발전 속도는 매우 빨랐습니다. 하지만, 이같은 변화를 제대로 짚어준 신문은 전자신문밖에 없었습니다.”
1981년 한국컴퓨터에 엔지니어로 입사해 이듬해인 82년부터 현재까지 전자신문을 열독하고 있는 이상걸 KTF 공일공텔레콤 지점장(47)은 전자신문의 차별화된 뉴스 덕분에 그동안 IT업계에 종사하면서 많은 도움을 얻었다고 말했다.
이 지점장은 “현재는 종합지 또는 경제지에도 IT뉴스가 실리고 있지만 80년대 당시에는 전자신문에서 밖에 볼 수 없었다”며 “전자신문은 부서에서 철을 해 놓고 볼 정도”라고 당시를 회고했다.
그는 아울러 지난 20여년 동안 IT산업은 상상도 못할 정도로 많은 변화를 기록했다며 변화상에 대해 소개했다.
“8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컴퓨터는 오직 계산기의 확장된 개념이었습니다. 제가 당시 주로 취급했던 업무도 기업의 인사급여·회계 등을 컴퓨터를 통해 전산처리하는 정도였습니다. 그래서 컴퓨터 프로그램에 문제가 발생하면 고객사 직원들의 급여가 지급되지 못하는 경우가 발생하기도 했습니다.”
이 지점장은 “그동안의 기술변화를 볼 때 앞으로는 더욱 큰 변화를 예상한다”면서 “머지않아 사람 개개인 정보를 어디에서나 인식할 수 있는 시대가 와서, 개인이 신용카드·신분증·면허증 등을 소유할 필요가 없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대학에서 전자계산학을 전공하고 한국컴퓨터에서 17년 동안 엔지니어로 활동했던 그는 당시나 지금이나 전자신문에서 소개되는 뉴스들이 결코 어렵지 않다고 말했다.
“IT업계에 종사하다 보니 자연히 전자신문에 나오는 모든 분야에 관심을 가져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업무와 직접 연관된 분야를 집중적으로 보기는 하지만 대체로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분야를 보고 있으며 특별히 어렵지 않습니다.”
전자신문을 지금까지 열독하고 있는 것에 대해 그는 “IT기술이라는 것이 한번 트렌드를 놓치면 쫓아가기가 매우 어렵다”면서 “현재 휴대폰 대리점을 운영하면서 앞으로의 변화에 대해 미리 내다볼 수 있어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전자신문이 유용하다”고 말했다.
그는 또한 “전자신문을 열심히 구독한 덕분에 IT 기술과 트렌드에서는 누구와 대화해도 뒤지지 않는다”며 감사를 표하기도 했다. 김준배기자@전자신문, joon@
*열혈 게임개발 22살 청년 손장식 애니파크 개발본부
“새내기 게임 개발자인 제게 업계 소식을 빠르게 전달해 주던 전자신문이 저와 동갑내기라고 하니 반가워요.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남녀노소 쉽게 즐길 수 있는 ‘테트리스’ 같은 원조 게임을 개발하는 것이 제 꿈이랍니다. 전자신문도 원조 I T신문으로서 다른 신문의 모델이 되는 신문으로 발전하길 바랍니다.”
전자신문이 창간되던 해에 태어나 첨단 문화기술의 총아 게임 분야 개발자로 변신한 애니파크 손장식 씨(22). 젊은 나이답지 않게 전자신문에 대한 조언과 애정을 아끼지 않았다. 요즘 젊은이들은 인터넷을 통해 뉴스를 더 많이 접한다며 전자신문도 인터넷, 모바일 등 다양한 매체로 통해 독자 접점을 늘여나가야 된다는 말도 덧붙였다.
손 씨가 근무하고 있는 애니파크는 ‘A3’‘호버보드’ 등 인기작을 잇달아 내놓은 유망 게임업체. 여기서 막내개발자로 활동하고 있는 손 씨는 온라인게임 ‘A3’중국 현지화 작업을 담당하고 있다.
손 씨가 게임에 대해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것은 15년 전쯤. 당시 7살이었던 그에게 외국에 사는 삼촌이 고가의 게임기 ‘제믹스’를 선물해 준 것이 계기다. 어릴 적 게임기를 분해하던 호기심이 열혈 개발자를 낳은 것이다. 게임 개발에 투신(?)하느라 대학교도 미등록 제적됐다. 처음에는 부모님 반대도 이만 저만이 아니었단다.
좋은 게임을 개발하고자 하는 손 씨의 꿈은 당차지만 그가 마냥 허황된 생각만 갖고 있는 것만은 아니다.
“요즘 우리나라 게임이 참신하지 않다, 똑같다, 질이 떨어진다고 하는데 저는 다르게 생각합니다. 창조는 반복되는 모방 속에 어쩌다 튀어나오는 ‘돌연변이’ 같은 존재잖아요.” 끊임없는 모방과 경쟁을 통해 기본기를 쌓고 난 다음에 진정한 창조적인 게임, 테트리스 같은 원조게임을 개발할 수 있다는 말이다. 야무진 말투에서는 막내 개발자의 모습도 사라진다.
손 씨네는 게임 가족이기도 하다. 누나는 게임회사 엔씨소프트의 마케터로 근무하고 있다. 자식이 게임회사에서 일하는 것을 결사 반대했던 부모님도 온라인게임을 즐기며 게임가족으로서의 면모를 과시할 정도다.
물론 게임개발이 쉬운 길만은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지난해 손 씨는 개발자로 입문했던 모바일게임 개발사가 자금난으로 문을 닫는 아픔을 직접 경험했다. 당시 야심차게 개발 중인 게임들도 빛도 보지도 못하고 물거품이 돼 버렸다.
“아직 제 나이 22살이예요. 대학교를 포기한 것도 후회하지 않습니다. 언제든지 다시 갈 수 있고 무엇이든 꿈꿀 수 있는 나이이기 때문이죠. 좋은 개발자가 되기 위해서 즐겁게 일하고 있습니다.전자신문도 열심히 뛰어주세요.”
류현정기자@전자신문, dreamshot@
*데이콤과 22년 동갑나기 박지용 데이콤 팀장
“데이콤이 22년 전 한국데이터통신이란 이름으로 태어나 전화와 데이터통신으로 통신역사가 구분 됐을 당시 전자신문이 태어났습니다. 이 때부터 한국의 IT역사가 시작됐다고 봅니다”
전자신문과 같이 올 해 창립 22주년을 맞은 데이콤의 박지용 차세대 무선인터넷추진단 기술기획팀장(47)은 “전자신문과 데이콤이 동시에 태어났다는 것 자체가 한국 IT의 역사와 같다”고 말했다.
“데이콤에 입사한 이래 9년 단위로 큰 전환이 있었습니다. 82년부터 91년까지는 데이터통신 독점시대였고 국제전화 사업을 시작한 91년부터 한국 IT산업도 급속도로 발전하기 시작했습니다. 지난 2000년부터 데이콤이 무한경쟁시대에 돌입하기 시작할 때 전자신문의 지면에도 큰 변화가 있었습니다”
박 팀장은 지난 22년간 전자신문 지면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기사로 ‘한국통신의 역사, 데이콤의 역사 100년사’를 게재한 기획기사를 꼽았다. 전자신문이 매일 새로운 소식을 접하는 일간지이지만 다른 신문과는 다르게 전자신문은 자체가 정보지이며 역사라고 생각하기 때문.
“전자신문 독자들은 전자신문을 한번 보고 버리는 것이 아니라 기사 하나하나를 스크랩하고 사무실에 모아두고 있습니다. 한국 경제에서 IT산업의 비중이 높아지는 만큼 전자신문에서 얻는 정보도 계속 많아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22년 독자인 박지용 팀장은 전자신문에 대해 ‘계속 간직하고 싶은 신문’이 돼 달라고 주문한다. IT산업뿐만 아니라 한국경제를 제대로 이해하는데 전자신문의 역할과 영향력이 늘어나고 있는 만큼 책임감을 갖고 신문제작에 힘을 쏟아달라는 것. 특히, 최근 산업 상황이 급변하고 있는 통신방송 융합 환경에서 다른 매체처럼 시류에 흔들리지 말고 지난 22년과 같이 옥석을 구분해 달라고 말한다.
“최근 신문의 흐름이 신문 간의 치열한 경쟁 때문인지 사실 확인보다는 여론몰이에만 머물고 있다는 생각도 듭니다. 또 기사의 차별도 없어지고 있습니다. 전자신문은 지금까지 그래왔듯 계속 차별화된 기사, 그리고 정론 보도에 매진해 주셨으면 합니다”
데이콤은 지난 82년 설립 돼 85년 국내 최초의 온라인 서비스 천리안을 선보이고 92년에는 국제전화, 94년에는 인터넷 서비스 개시, 96년 시외전화에 진출하는 등 한국 IT 산업의 핵심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박지용 팀장은 데이콤에 유일하게 남은 공채 1기로 현재는 와이브로 추진단에서 데이콤의 신사업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 손재권기자@전자신문, gjack@
*입사와 함께한 신문 김영선 ETRI 그룹장
“82년 한국전기통신연구소(ETRI 전신)가 서울 남산 타워에 있을 때 입사 후 바로 전자신문이 생겨 인연을 맺었는데 강산이 두 번 바뀌고도 2년이 남을 만큼 오래됐네요.”
전자신문이 창간된 82년부터 구독하기 시작했다는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광대역통합망연구단의 김영선 그룹장(49)은 “지금은 IT와 관련한 여러 매체가 있지만 당시만 해도 정보통신과 관련해서는 유일한 존재였다”며 남다른 인연을 강조했다.
83년 대전으로 내려온 ETRI에서 전전자교환기(TDX)를 개발하고 이어 ATM 교환기와 라우터, 최근의 인터넷전화(VoIP)프로젝트 개발을 주도하기까지 전자신문과 항상 같이 했다는 김 그룹장은 전자신문 주간발행 시절 잊지못할 일화 한 토막을 소개했다.
“주간이던 당시에는 서울과 대전 배포일에 만 하루의 시차가 있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서울 출장이 잦은 경영진이 하루 먼저 교환기와 관련한 기사를 보고 전화해 닥달하는 데 대책이 없었습니다. 고스란히 ‘말화살’을 다 맞아야 했습니다.”
TDX개발 당시 품질보증실장을 맡았다는 김 실장은 “인터넷도 없던 시절이어서 일과 중 하나가 전자신문 스크랩하는 것이었다”며 “3∼4년 정도는 부품과 관련한 내용은 다 외다시피 해야 했다”고 회상했다.
김 실장은 “IT분야의 우리 나라 기술 동향이나 인사, 기술 전망, 유비쿼터스, 광대역통합망(BcN) 등과 관련한 좌담회를 보면 다른 연구 개발자들의 생각을 적나라하게 볼 수 있어 좋다”며 “특히 지난 99년 기획 시리즈로 만든 해외 첨단연구기관 방문은 이들이 개발자에게 내놓지 않던 자료까지 취재 때 내놔 많은 도움을 받았다”고 술회했다.
“아직까지 저는 전자신문을 인터넷의 즐겨찾기 목록 1순위에 등록해놨습니다. 그러나 전자신문이 변화하는 세상을 읽지 못한다면 뒷순위로 밀리고 말 것입니다.”
김 실장은 “전자신문이 시대에 적응하기 위해서는 급변하는 IT의 선진국 동향을 제시할 수 있는 세계적인 IT전문지로 거듭나야 할 것”이라며 앞으로의 과제도 던져줬다.
김 실장은 △유언비어성 기사의 경우 일부 의견이 전체의견인 양 오도하지 말고 확인해 줄 것 △ 비전문가도 알 수 있을 정도로 용어 등을 쉽게 풀어 써 줄 것 △기술과 정책 전문가가 연계된 좌담회 개최 등을 전자신문이 풀어야할 숙제로 지목했다.
박희범기자@전자신문, hbpa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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