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차세대 IT산업에 대한 일본의 추격이 매섭다. 한국과 대만에 밀려 쓸쓸히 퇴장할 것으로 여겨졌던 일본의 평판디스플레이 업체들은 최근 공격적인 투자를 앞세워 왕국 재건에 나섰다. 우리가 한 걸음 앞서 갔던 통신서비스산업도 일본 통신방송사업자들이 차세대 통신·방송 융합서비스를 우리보다 먼저 치고 나올 기세여서 다시 추월당할 위기다.
우리 정부와 업계가 일본을 따돌렸다고 잠깐 손을 놓은 사이 일본이 이처럼 턱밑까지 쫓아왔다. 더욱이 일본은 통신서비스에서 부품·소재까지 탄탄한 기반이 있다.
평판디스플레이는 반도체, 휴대폰에 이어 우리 IT산업을 먹여 살리고 있으며, 통·방 융합서비스는 우리의 미래 IT비전의 맨 앞줄에 선 개척자다. 전문가들은 이 때문에 “우리도 위기를 기회로 활용하기 위해 정부와 업계가 한 몸으로 총력을 기울이는 새로운 도약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지적한다. 한국 IT산업의 성장동력을 총체적으로 재가동해야 한다는 것이다.
일본은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전계방출디스플레이(FED) 등 미래 신제품 분야에 과감한 선행 투자를 집행하는 한편 LCD 등 우리에게 뒤 처진 분야에도 최근 공격적인 투자 계획을 발표, 한국을 압박했다.
캐논과 도시바는 지난 15일 2조원 규모의 FED 합작 투자를 발표하고 내년 하반기 생산에 들어갈 예정이어서 2007년께 상용화 목표를 내건 국내 업체들을 긴장케 했다.
능동형 OLED분야에도 소니도요다(ST-LCD)가 국내업체보다 1년 앞서 양산하기 시작했으며 교세라, 세이코엡슨 등도 참여해 아성을 굳히고 있다. 지난달 31일엔 히타치, 마쓰시타, 도시바 등이 1조원 이상의 차세대 LCD 투자에 합의했다. PDP분야엔 마쓰시타가 9000억원을 투자, 내년부터 월 10만대씩 생산하고 중소 규모였던 파이어니어, NEC가 합병해 한국업체와 좁혀진 격차를 다시 벌려놓을 계획이다.
차세대 방송·통신 융합서비스 시장도 벌써 일본이 선점했다. 우리가 브로드밴드컨버전스네트워크(BCN) 시범사업을 준비하는 사이 일본은 8월 말까지 광가입자망(FTTH: Fiber To The Home) 가입자 142만명을 확보했다. IT한국의 자랑거리인 xDSL 가입자 역시 일본이 8월 말까지 1255만명을 기록, 우리나라의 670만 가입자를 2배 가까이 넘어섰다.
일러야 11월 중순인 위성 디지털멀티미디어방송(DMB) 상용화를 일본은 10월 중순께 실시할 예정이다. 내년 하반기에 NHK 등이 주도하는 무료 휴대폰 수신 방송이 시작되며 최근엔 일본 2위 이동통신사업자인 KDDI 주도로 디지털라디오 기반의 동영상 전송 시연회를 성공시켰다.
주목할 것은 일본 정부의 적극적인 개입이다. 차세대 LCD 공동 투자와 PDP업체 합작과정엔 일본의 경제산업성이 깊숙이 개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 디스플레이업계 고위 관계자는 “이번 합작은 사실상 일본 경제산업성의 작품”이라고 말했다. FTTH 보급도 차세대 망에선 한국을 앞서자는 일본 정부의 의지가 반영됐다.
유형준·성호철기자@전자신문, hjyoo·hcs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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