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드 인 디지털]다국적기업-`힘이 되는 친구`그대가 있기에…

 “외국인 투자는 일석오조(一石五鳥)의 효과가 있다. 외국인 투자는 되돌려 줄 필요가 없고 우수한 경영기법이 들어오며, 수출시장도 함께 갖고 온다. 이 밖에 고용창출이 이뤄지고 우리 기업에는 벤치마킹이 된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지난 2002년 국내에서 처음으로 개최된 외국기업의 날 행사에 전달한 축하 메시지의 한 부분이다.

 굳이 과거 대통령의 축사를 인용하지 않더라도 다국적 IT 기업이 한국 시장에 미치는 영향은 토종 기업의 역할에 절대 뒤지지 않는다. 특히 다국적 IT 기업들의 국내 진출과 오랜 사업은 국내 업체들이 글로벌 선진 경영 기법을 배울 수 있는 첩경으로 작용했다.

 외국기업협회 통계에 따르면 외환 위기 당시만 해도 4400여 개에 머물던 국내 진출 외국기업 수는 지난 2002년 말 기준 1만2759개로 무려 3배 가까이 늘었다. 제너럴 모터스, 월마트, 미쓰비시 등 세계 10위권 다국적 기업 대부분이 국내 시장에서 사업을 펼치는 것은 물론 주요 하드웨어 및 소프트웨어 등 컴퓨팅 분야와 통신장비·부품·가전 등 IT 분야의 주요 외국 기업들의 국내 진출은 일찌감치 마무리되고 이제는 후발 주자들의 진출로 옮겨가고 있는 상황이다.

 ◇ 평균 20년 넘은 다국적 IT 기업, 조 단위 매출도 여럿=국내 진출한 지 40년 정도 된 다국적 IT 기업이라면 ‘외국 기업’이라는 틀에만 넣어두기 어렵다. 국내 대기업과 같은 입사 공채 개념은 물론 장애인 봉사활동, 직장탁아소 설치 등 국내 기업 못지않은 사회 공헌활동도 펼친다.

 이제 이들 기업은 조 단위 매출을 기록하면서 국내 매출 순위 100대 기업에 껑충 뛰어들었다. 지난해 말 기준 국내에서 매출액 1조원대를 돌파한 다국적 IT 기업은 노키아티엠씨, 한국HP, 한국소니전자, TI코리아 등이 대표적이다.

 핀란드 노키아 한국법인인 노키아티엠씨는 지난해 매출액이 무려 3조여원을 넘어 다국적 기업 가운데 최고 매출을 기록하고 있다. 특히 노키아가 경남 마산 자유무역지대에 연산 1000만대 규모의 생산공장을 가동, 이곳에서 생산하는 제품의 거의 대부분을 해외로 수출하고 있다는 것도 잘 알려진 사실이다.

 컴팩 합병으로 컴퓨팅 업계의 최고 강자로 올라선 한국HP의 지난해 매출은 1조4000억여원. 올해는 1조5000억원을 넘을 것으로 예상된다. TI코리아는 지난해 외국계 반도체 국내 법인 공식 매출로는 처음으로 1조원을 돌파했다. 부품, 특히 비메모리 반도체 분야 다국적기업의 역할은 사실상 지금부터 시작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 할 때 TI코리아의 사업 확장은 업계로부터 주목받고 있다.

 이처럼 국내 진출한 다국적 IT 기업들의 역할은 그들을 빼놓고는 한국 IT 산업을 말할 수 없을 정도의 ‘볼륨’을 차지하는 위치에 올랐다. 조 단위는 아니더라도 조 매출에 육박한 한국IBM, 5000억원대 매출을 눈 앞에 두고 있는 한국후지쯔, 이 밖에 2000억∼3000억원에 이르는 중견 기업의 면모를 갖춘 다국적 IT 기업들의 수는 수십여 개에 이르게 됐다.

 ◇ 다국적 기업, 변신 또 변신=한국 IT산업 발전의 한 축을 지탱해 왔다고 할 만한 다국적 IT 기업들은 최근 들어 다시 변화의 조짐을 보이고 있다. 10년 정도에 이르는 중견 기업으로 국내 시장에 뿌리를 내린 다국적 IT 기업 지사들은 현지화는 물론 국내 파트너사와 상생 전략을 꾀하거나 아시아 거점으로 역할을 한 단계 올리기 위한 다양한 노력을 펼치고 있다.

 부품 분야의 다국적 기업들은 국내 세트산업 발전에 꼭 필요한 다양한 부품을 국내에 조달하면서 국내 산업과 동반 성장을 꾀한다는 전략을 뚜렷하게 보이고 있다. TI코리아나 페어차일드반도체 등 대표적인 부품 업체들은 연구개발, 생산 판매 비중을 높이며 국내 파트너사와 공조도 강화하고 있다.

 CDMA 분야에서 한국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는 퀄컴은 우리 기업에 수출시장 확대라는 기회와 함께 단말기 제조 시장에서의 글로벌 경쟁 조장이라는 양 측면의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인텔코리아도 과거 CPU 공급이라는 단순한 한국 PC산업과의 관계에서 한 단계 발전해 ‘유비쿼터스시대를 여는 동반자’로서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고 있다.

 한국HP, 한국IBM, 한국EMC, 한국오라클 등 컴퓨팅 분야의 업체들도 한국 문화 정착은 물론 수출 지원이나 공동 비즈니스 모델 개발 등으로 상생 모델을 꾀하고 있다. 한국HP는 SK텔레콤과 함께 통신 플랫폼 수출에 공조 체제를 취하고 있으며, 한국MS도 KT와 협력 모델을 꾀하고 있다. 특히 한국IBM에 이어 한국HP와 한국EMC도 국내에 연구개발 센터를 유치하기 위한 노력을 적극 펼치고 있다.

 이 밖에 통신 분야의 모토로라코리아는 아시아-태평양지역 개발본부로 격상, 세계 시장을 겨냥한 수출·기술개발의 중심축으로 성장을 꾀하고 있으며, 외국계 가전업체들은 한국 소비자의 눈높이에 맞추기 위해 온라인과 오프라인 연계를 통한 시너지 효과창출과 유통의 포트폴리오 전략을 새롭게 설정하면서 돌파구를 찾고 있다.

 이처럼 한국에 진출한 외국 기업들은 오히려 인지도를 발판으로 사업을 다각화하고 있다. 한국 진출로 얻은 영업망과 인지도, 인맥을 기반으로 새로운 사업 진출에 나서고 있는 것이다.

 세계적인 디지털 카메라업체인 올림푸스한국은 최근 의료기 전문회사인 중외메디컬로부터 의료기 판매 대행업을 인수해 본격적인 의료기기 사업에 나섰으며, 한국MS는 방송 솔루션 사업에 새롭게 도전장을 내밀었다. 또 다산네트웍스는 올 3월 독일 지멘스와 지분 인수계약을 하고, 다국적 기업으로 변신중이다. 하이테크 기술을 보유한 벤처와 글로벌 기업과의 협력으로 새 돌파구를 마련, 세계 시장으로 뻗어나가는 새로운 벤처 성공 모델을 만들어가고 있는 셈이다.

  신혜선기자@전자신문, shinh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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