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22주년-성장의 조건22]기술분야-나노

 ‘N이 세상을 바꾼다.’

 최근 세계적인 정보통신 기업인 HP는 ‘N’을 부각하는 새로운 광고를 시작했다. 나노기술을 상징하는 N으로 세상을 바꾼다는 개념이다.

 불과 수년 전만 해도 미래기술, 잠재 유망 기술로만 여겨졌던 ‘나노기술(NT)’이 빠르게 상용화 및 산업화의 길로 접어들면서 꿈을 현실로 바꾸고 있다.

 21세기 꿈의 기술 NT는 어느새 세계 경제의 새로운 성장엔진으로 부각되기 시작했다. NT는 무엇보다 기술적 파급효과가 크다. NT 자체가 새로운 산업을 창출하는 것은 물론이고 정보통신 분야는 물론 자동차, 기계, 바이오, 환경, 부품·소재 등 모든 산업의 인프라 기술로 활용되는 것이 나노기술이다.

 앞으로 NT 헤게모니를 잃는다면 1인당 국민소득 2만달러의 달성은 요원할 것이란 우려섞인 전망까지 나오고 있다. 그만큼 NT의 영향력은 지금의 정보기술(IT) 못지않을 것이란 전망이다. 때늦은 감이 있지만 우리나라를 비롯한 세계각국이 NT를 전략산업으로 삼아 앞다퉈 지원·육성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보이지 않는 기술의 힘=NT는 10억분의 1m의 초미세구조를 갖는 소재·소자시스템을 만드는 기술로 정의된다. 표면적으로 마이크로기술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간 버전이다. 1㎛가 1백만분의 1m이므로 이보다 1000분의 1 정도 미세한 구조를 다루는 기술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렇게 눈에 보이지 않는 작은 크기에 주목하는 것은 아니다. 바로 물질이 나노 단위에서 그 본래의 성질과 달리 특이한 변화를 보이기 때문이다.

 물질을 원자나 분자단위로 조작해 나노 단위로 처리하면 마이크로 구조에서 나타나지 않았던 새로운 전기적, 자기적, 광학적 특성을 보인다.

 메모리 반도체는 약 10년 후면 지금보다 1000배 이상의 용량을 필요로 하지만, 5∼10년 후면 물리적으로 용량능력 확대의 한계를 보이게 될 것으로 알려져 있다. NT는 이런 한계를 극복할 차세대 기술로 등장했다.

 NT로 개발한 신소재와 새로운 식각 공정, 그리고 리소그라피 기술을 종합하면 차세대 반도체를 얻을 수 있다.

 컴퓨터의 새로운 개념인 양자 컴퓨터. 이것 역시 NT가 가져올 엄청난 변혁을 예고하는 분야다. 양자 컴퓨터는 일반적인 컴퓨터와 완전히 다른 개념이다. 양자 현상을 이용하여 주어진 입력 값으로부터 원하는 결과를 얻을 수 있는 장치다.

 구조재료분야에서도 상당한 변화를 예상할 수 있다. 금속이든 비금속이든 물질을 나노단위에서 조작하면 강도가 획기적으로 높아져 더욱 가볍고 단단하게 만들 수 있다.

 금과 은을 나노단위에서 처리한 나노소재는 본래의 물성을 크게 향상시킬 수 있다. 이 기술은 이미 세탁기·냉장고·공기청정기 등 가전제품과 화장품 등에 폭넓게 응용되기 시작했다.

 ◇NT의 주도권을 잡아라=세계 NT 개발경쟁은 연구개발비의 증가와 연구활동 활성화를 통한 논문 및 특허건수, 법·제도 마련 등 구체적인 수치와 지원제도 정비 등으로 평가되고 있다. 미국을 필두로 일본·EU·중국·한국 등이 범정부 차원에서 관련 예산을 증가하며 NT 강국 만들기에 나섰다. 이를 반영하듯 세계 주요 국가의 NT투자액이 1997년 이후 2002년까지 5배로 증액됐다.

 전문가들은 다소 성급한 전망이긴 하지만 IT가 20세기 세계 각국의 국운을 좌우했다면 21세기는 분명 NT에 의해 그 나라의 위상과 경제규모가 달라질 것이라고 전망한다. IT가 세상을 지배하는 상황에서 선진국들이 NT에 사활을 걸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미국은 일찍부터 에너지 고갈과 국방력 증대를 위해 NT에 높은 관심을 가져왔다. 부처별로 독립적으로 추진되던 NT분야를 범정부차원으로 모으려는 시도가 1990년대 중반 이후 가시화됐다. 2000년 1월 클린턴 행정부는 NT개발전략(NNI:National Nanotechnology Initiative)을 공식 발표했다. 클린턴 대통령은 연두교서에서 NT를 바이오기술(BT), IT와 함께 차세대 경쟁력 확보를 위한 핵심 기술로 선언하는 NNI로 세계 나노 연구계를 흥분시켰다.

 클린턴은 2001년 회계 연도의 나노기술 예산을 80% 이상 증액해 총 4억9700만달러를 책정, 이 중 4억2200만달러를 배정했다. 미국 역사상 처음으로 엄청난 규모의 예산을 나노기술에 부과하며 세계 NT 개발 전쟁에 불을 붙였다.

 일본도 다르지 않다. 자동차, 조선, 철강 등 전통적으로 중공업과 제조업이 강한 일본으로선 NT를 통해 80년대 경제대국의 신화를 재연하겠다는 전략이다. 특히 90년대 이후 IT분야에서 미국은 물론 한국에마저 주도권을 빼앗긴 일본으로선 NT만이 살길이라고 보고 과감한 투자를 계속하고 있다. 이미 지난 2002년에 ‘경단련’이 주축이 돼 기존 ‘N플랜21’을 확대한 ‘N 플랜2002’란 NT 개발프로젝트를 가동하고 있으며 투자규모도 매년 10억달러에 이르며 미국을 압도하고 있다.

 여기에 기술 선진국인 영국과 독일 등 유럽도 나노기술에 아낌없는 투자를 하고 있다. 세인스베리 영국 과학기술처 장관은 2003년 7월 “향후 6년간 9000만파운드(1억5800만달러)를 NT의 산업화 지원에 투자하겠다”고 밝힌 것을 시발로 범정부적인 NT 육성책을 마련했다.

 영국 정부는 이를 통해 5000만파운드는 산학 공동연구를 지원하는 데 투자하고 4000만파운드는 영국 마이크로 나노기술 네트워크를 구축키로 했다.

 기업들의 NT육성도 활발하다. 세계 1위 반도체 기업 인텔과 소프트웨어기업 마이크로소프트, 세계적 기업으로 떠오른 삼성전자 등 업종을 망라해 국내외 유수의 기업들이 매년 천문학적 비용을 NT에 쏟아부으며 그야말로 나노전쟁을 벌이고 있다. 최근 삼성전자가 NT를 이용한 D램을 선보이는 등 올해부터 나노반도체 본격적인 상용화시대로 진입했다.

 ◇아직 늦지 않았다=NT에 관한 한 우리나라는 아직 초보 단계다. IT강국이지만, NT는 선진국을 100으로 볼 때 25수준에 불과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냉정한 평가다. 그나마도 ‘팹(상용화)’이 아닌 ‘랩(연구)’수준에 머물고 있는 게 현실이다.

 그러나 아직 늦지 않았다. 그 어느 나라나 기업도 NT의 왕좌에 등극하지 못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우리나라는 지난 2001년 나노기술개발촉진법이 제정돼 나노육성을 위한 법적 근거를 마련됐으며 NT 육성을 위한 장기비전을 제시하고 있다. 정부는 2005년까지 나노종합팹과 나노소자특화팹 등 핵심 인프라를 구축, 2010년께엔 세계 5대 NT강국으로 올라선다는 목표다. R&D투자만도 2010년까지 총 1조4850억원이 책정된 상태다.

 인프라도 갈수록 견고해지고 있다. 2002년 말 완성된 국가기술지도(NTRM)에 나노분야 R&D의 정책 방향이 수립됐으며 나노종합팹센터·나노특화팹센터·NT집적센터 등 핵심 인프라 구축이 한창이다. IT·BT 등 다른 요소기술과 접목된 융합기술 프로젝트로 지난해 공식 출범했다.

 정부의 지원과 함께 국내 연구자들의 성과도 눈에 띈다.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 나노정보실이 1997년부터 2004년 2월까지 전세계 NT 관련 SCI(Science Citation Index) 논문을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우리나라 연구자의 논문 발표 신장률은 세계 평균인 24.8%의 2배를 넘어선 59%로 NT 연구가 괄목할 만한 성장을 보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우리나라 NT 논문 발표 평균 신장률이 59%로 세계 1위를 차지한 것이다.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나노논문 발표 증가율은 NT 선진국인 미국(23%), 중국(39%), 일본(24%)과 비교해 2배 이상 높게 나타났다. 우리나라의 연간 논문 발표순위 역시 1997년 13위에서 2003년에는 6위, 2004년 5위로 급상승했다.

 NT 애플리케이션 산업이 잘 발달한 것도 ‘NT 코리아’의 미래를 밝게 해주는 부분이다.

 미국 예일대 마크 리드 교수는 “우리나라는 반도체·LCD·2차 전지·자동차 산업이 발달해 NT육성이 보다 유리할 것”이라며 “NT에 국가의 미래가 달려 있다는 범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해 이를 적극 육성하면 승산이 있다”고 말했다.

 김인순기자@전자신문, insoon@

 


브랜드 뉴스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