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22주년-성장의 조건22]기술분야-바이오인포매틱스

지난 2001년 미국의 생명공학벤처기업 셀레라지노믹스사가 32억 쌍에 이르는 인간의 유전정보 염기서열을 컴퓨터로 분석한 인간게놈지도를 완성했다고 발표했을 때 전세계가 흥분했다.

 인류의 소망인 4000여 종에 달하는 난치병과 선천적인 질환 등을 치료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한 것으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같은 인간게놈지도 완성조차도 정보기술(IT)과 접목된 차세대 바이오기술(BT)의 핵심으로 주목받고 있는 바이오인포매틱스(생물정보학)의 기여 없이는 불가능한 성과였다.

 ◇IT의 제2도약 모델로 부상=바이오인포매틱스는 데이터의 관리와 분석이라는 전통적인 범위를 넘어 데이터로부터 미지의 고부가가치 정보를 예측하고 컴퓨터상에서 세포나 기관 등의 생명체를 시뮬레이션하는 기능까지 포함하는 바이오·정보 융합기술(BIT)로 나아가고 있다.

 영화로 더 유명해진 마이클 크라이튼의 소설 ‘쥬라기 공원’에서도 슈퍼컴을 사용하는 대목이 나온다. 공룡복제 연구에 2대의 컴퓨터가 사용되고 있음은 결코 우연이 아님을 최근의 연구동향은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

 생명체를 보는 시각 자체도 달라지고 있다. 기존의 유기물에서 정보의 집합체로, 그리고 생명체를 주로 연구하는 곳도 실험실에서 컴퓨터로 급격히 전환되고 있다. 또한 생명현상을 연구하는 목적이 과학적 현상 규명에 그치지 않고 연구결과를 산업에 직접 연결하고 있다.

 생명공학의 패러다임을 바꾼 미국 셀레라지노믹스사의 인간 유전체 초안 작성작업이 예상 외로 조속한 성과를 올릴 수 있었던 것은 ‘셧건(Shutgun)’이라는 그들만의 컴퓨팅 기술을 보유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셀레라사는 결국 몇 년 앞서 연구를 시작했던 휴먼게놈프로젝트(HGP)보다 앞선 연구결과를 내놓을 수 있었던 것은 바로 바이오인포매틱스의 직접적인 산업적 이용 가치는 항암제 글리벡·에이즈 치료약 등의 고부가가치 신약개발에서 볼 수 있듯 단순히 생물학을 돕는 도구가 아닌 IT의 새로운 분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여기서 셀레라사 연구 인력 절반 이상이 IT 기술자이며 대다수의 제약회사에서도 다수의 IT 기술자를 고용하고 있는 이유가 저절로 설명된다.

 ◇바이오인포매틱스 어디에 쓰나=최근의 첨단 바이오 산업은 유전정보를 이용해 신약을 개발하거나 유전자가 심어진 칩을 만들어 암과 같은 질병 진단에 활용하고 고부가가치의 유전자 조작 동·식물을 만들어내고 있다.

 다국적 제약업체들은 바이오인포매틱스 SW를 이용, 대용량의 칩 등 실험 데이터로부터 알려지지 않은 유전자의 기능이나 대사 과정 등의 정보를 알아내 약을 개발하는 초기 단계인 타깃과 후보 물질을 대량 확보하고, 사이버 임상 SW를 통해 개발된 약의 독성이나 효과 등을 예측하고 있다.

 이들은 바이오인포매틱스 기술을 통해 예측된 유전정보를 활용하기 때문에 수억 달러의 신약개발 비용과 시간을 줄이고 있다.

 세계적인 제약회사인 글락소스미스클라인사의 호스포드 사장은 바이오인포매틱스 산업의 중요성에 대해 “캄캄한 산길에서 무작정 길을 찾는 식이 아니라 이제는 유전정보라는 지도와 랜턴을 들고 길을 찾게 되었다”고 강조했다.

 실제 글락소스미스클라인사는 천식 등 13종에 이르는 신약 개발과정에서 유전정보에 크게 도움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외 연구 동향 및 비전=미래의 모든 바이오 산업의 주도권은 유용한 유전정보를 누가 빨리 캐내어 활용하는가에 달려 있다.

 세계 최초로 인간 배아 줄기세포 실험에 성공한 황우석 교수는 “10년 후에는 줄기세포와 돼지 장기 이식이 실용화 단계에 접어들 것”이라며 “BIT가 필수적인 기술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바이오 산업의 활성화뿐 아니라 바이오인포매틱스는 인류의 최대 목표인 무병장수에도 필수적인 기술이다. 당뇨·관절염·파킨슨병 등 난치병 치료에 신기원을 열 것으로 기대되는 줄기세포의 모든 연구 단계에서 바이오인포매틱스의 도움은 필수적이다.

 미래의 개인별 맞춤 신약 개발은 개인의 차이를 나타내는 염색체의 단일염기변이(SNP)를 통계적으로 분석하는 바이오인포매틱스가 출발선이다.

 국내의 바이오인포매틱스 관련 연구 및 서비스는 선진국에 비해 매우 작은 규모다. 하지만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을 비롯한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 한국생명공학연구원(KRIBB) 등 정보통신 관련 연구기관 및 대학 등이 연구에 매진하고 있다.

 BT산업의 세계 시장 규모는 오는 2013년께 2100억달러에 이를 전망이고 이 가운데 절반 이상을 생물정보 SW나 IT 인프라 등 바이오인포매틱스 분야가 차지할 것으로 전문가들은 내다보고 있다.

 ETRI의 박선희 바이오정보연구팀장은 “아직은 정확한 유전자의 개수도 모를 만큼 유전정보에 관한 연구는 세계적으로도 시작단계”라며 “바이오인포매틱스는 앞으로 매우 다양한 수요가 전망되는데다 기술개발의 여지도 많이 남아 있어 우리 나라가 국제 경쟁력을 갖출 희망을 가질 수 있는 분야 중 하나”라고 말했다.

  대전=박희범기자@전자신문, hbpa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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