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 광역시민 150만명이 모두 TV를 한대씩 버리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교통대란, 쓰레기 대란, 환경오염….
가상의 일이지만 이런 일이 일어날 가능성은 실제 존재한다. 한적한 시골길을 가다보면 TV, 냉장고, 에어컨, 오디오, 컴퓨터, 프린터 등이 길거리에 버려져 있는 경우를 자주 본다. 유선전화기, 휴대폰 등 소형 제품들은 종량제 쓰레기 봉투에 넣어 버린다지만 규모가 큰 가전 제품들은 처리가 막막하다.
디지털TV(DTV) 전송방식이 결정되면서 DTV는 빠르게 우리 가정을 파고 들고 있다. 가전업계는 올해 150만대의 DTV 신규 수요가 창출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150만 가구가 그동안의 아날로그 TV에서 고선명 DTV로 교체한다는 말이다. DTV 신규 수요는 침체된 내수경기를 활성화시키는 데 일조할 것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문제는 중고 TV와 중고 방송장비다. 150만대의 DTV가 시중에 설치되겠지만 그만큼의 중고TV, 고물TV가 양산되기 때문이다. 여기에 정부와 가전업계가 추진중인 100만원대 보급형 DTV 계획이 탄력을 받을 경우 그 수요는 훨씬 더 늘어날 수밖에 없다. 적게는 150만대에서 많게는 250만여대의 DTV가 올 하반기에 보급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들 신규수요는 그만큼의 중고 TV를 양산할 수밖에 없다. 더욱이 아날로그 방식이 오는 2010년이면 완전히 중단될 예정이기 때문에 1000만대가 넘는 중고 TV는 온전히 디지털 시대의 쓰레기가 되고 만다. 디지털 시대에 아날로그 TV를 시청할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중고 아날로그 TV는 디지털화가 진행중인 우리나라에서 더는 중고품으로서 상품가치를 갖지 못한다.
한국전자산업환경협회 등 관련 기관이 예측한 올해 폐가전 제품은 130만대. 냉장고, 세탁기 등 다양한 부문이 포함된 통계지만 DTV의 등장으로 인해 이 수치는 수정될 수밖에 없다. 현재 발생중인 아날로그 중고 TV 수요도 따라오질 못한다. TV를 봉투에 넣어 버리든, 길거리에 버리든, 재활용처리장으로 보내든 이로 인한 다이옥신 오염, 자원 고갈 등 다양한 환경문제는 근원적으로 해결되지 못한다.
가전업계는 현재 버리는 전자제품을 회수해서 처리하는 이른바 ‘리사이클 시스템’을 도입, 운영중이다. 삼성전자, LG전자 등 전자업체 4개사는 공동으로 설립한 수도권리사이클링센터(2003년 5월)와 재활용 협약이 체결된 전문 리사이클링센터를 활용해 전자제품을 회수, 처리한다. 버려진 TV 등 가전제품 회수는 가전업체가 운영중인 전국적인 대리점 조직과 연계돼 시행된다. 이들 리사이클링센터에서는 TV, 세탁기, 에어컨, 냉장고 등 생산자책임재활용제도의 의무대상 제품뿐만 아니라 전자레인지, VCR 등 대부분의 폐전자제품을 가공하고 있다. 이 중 사용되는 부분은 금속, 비금속, 플라스틱 등이다.
아날로그 중고 TV는 냉장고나 세탁기 등 다른 가전제품에 비해 더욱 심각하다. 다른 가전제품은 수리하거나 세정과정 등을 거치면 재사용이 가능하지만 상품성을 상실한 아날로그 중고TV는 그렇지 못하다. 그야말로 쓰레기일 뿐이다.
그러나 다른 측면의 접근도 가능하다. 이를테면 기존 아날로그 방송장비와 아날로그 TV를 한 데 묶어 제3국으로 수출하는 방식도 고려해봄 직하다. 방송환경이 갖춰지지 않은 나라에 우리가 축적한 아날로그 방송기술과 장비, 아날로그 TV를 제공하며, 해당국의 방송환경을 개선하는 일도 가능하다.
중국의 경우 방송국만 해도 수천개에 이른다. 예산이 확보되지 않아 방송국 설립을 못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전세계에 아날로그 방송시스템을 구축하지 않은 나라도 부지기수다. 아날로그 방송장비와 중고 TV는 그냥 묵히면 쓰레기가 되지만 이를 방송서비스와 연계하면 아직도 사용가능한 훌륭한 상품이 된다.
김상룡기자@전자신문, sr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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