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노강국을 건설하자]나노코리아를 이끄는 사람들(4)안도열 서울시립대 교수

사진; 안도열 교수는 "양자컴퓨터 연구에 있어 한국은 선진국 보다 5년 정도 늦게 시작했지만 지금은 격차가 1∼2년 정도로 줄었다"며 "모두 시작 단계에 있기 때문에 우리나라가 선두국가로 비약적 발전을 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며 의지를 보였다.

“기존 컴퓨터의 발전사는 아주 작고 빠른 주판을 만들어 온 과정이라고 할 수 있지만 양자컴퓨터는 완전히 새로운 계산 도구를 만드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10년 넘게 양자컴퓨터 분야를 연구해 온 안도열 서울시립대 교수(44)는 나노 기술을 이용한 양자컴퓨터가 20세기 과학 문명을 주도해 온 디지털 기술의 패러다임을 근본적으로 바꿀 것이라고 말했다. 이미 상당한 수준으로 발전한 수퍼컴퓨터의 연산 능력마저 획기적으로 뛰어넘는 성능을 가진 컴퓨터가 등장한다는 것.

양자컴퓨터는 물질의 기본 단위인 분자나 원자의 양자 상태를 이용, 연산을 시도하는 컴퓨터라고 할 수 있다. 일반 컴퓨터는 0과 1의 조합에 의해 연산을 수행한다. 반면 양자 상태에서는 물질이 단순히 하나의 값만을 가지는 것이 아니라 ‘벡터’ 상태가 돼 위상 정보를 보유할 수 있게 된다. 이 추가 정보로 인해 동시에 여러 개의 연산을 수행하는 것이 가능해져 연산 속도가 비약적으로 빨라지게 된다.

양자 컴퓨터는 ‘큐비트(Qbit)’라 불리는 양자비트로 0과 1의 두 상태를 동시에 표시할 수 있다. 즉 2개의 큐비트로 모두 4가지 상태(00, 01, 10, 11)를 중첩하는 것이 가능하다. n개의 큐비트는 2의 n제곱만큼 가능하다. 만약 32개의 양자(큐비트)를 제어할 수 있다면 2의 32제곱개의 연산을 동시에 수행할 수 있게 된다. 물론 이런 양자컴퓨터의 실용화는 적어도 20년은 걸릴 것이란게 전문가들의 예측이다.

안도열 교수는 이 20년의 세월을 바라보며 양자컴퓨터를 파고들고 있는 한국의 대표적 연구자 중 한명이다.

안교수는 “한국은 미국 등 이 분야 선진국보다 5년 정도 늦게 시작했지만 지금은 그 격차가 1∼2년 정도로 줄었다”며 “모두 시작 단계에 있기 때문에 우리 나라가 선두 국가로 비약적 발전을 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며 의지를 보였다.

그가 양자컴퓨터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미국 일리노이대학에서 반도체 이론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후 IBM 연구소에서 일하던 1989년이었다. 양자컴퓨터의 원리를 제안한 찰스 베넷이 바로 그의 옆 연구실을 쓰고 있었다. 안교수는 “가까이에서 베넷의 연구를 접하고 그의 강연이나 세미나에 참석하면서 양자컴퓨터의 세계에 빠지게 됐다”며 당시를 회고했다.

안교수는 귀국 후 포항공대, LG종합연구소 등을 거쳐 서울시립대에 자리를 잡았고 1998년 과학기술부 창의적 연구진흥사업에 제안한 양자컴퓨터 연구안이 받아들여져 본격적으로 양자컴퓨터를 연구하게 됐다.

그가 단장으로 있는 양자정보처리 연구단은 현재 ‘양자점을 이용한 큐비트의 제어’에 관해 연구하고 있다. 1∼2개의 양자를 제어, 반도체로 기능하는 것이 가능함을 보여주려는 것이다. 앞으로 3년 안에 이러한 가능성을 보여주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와 함께 개인적으로는 양자컴퓨터의 계산 방식에 대한 이론들을 연구하고 있다.

안교수와 연구단은 작은 자석에 양자점을 넣어 전자의 스핀을 제어하는 기술이나 양자점을 2개 덧붙여 큐비트를 제어하는 방법을 제시하는 등의 성과를 거뒀다. SCI 등재 논문도 6년 동안 70편 정도 발표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벌이고 있다.

양자컴퓨팅을 위한 양자의 독특한 성질이 나타나려면 반도체 소자의 크기가 수 ㎚ 수준으로 줄어들어야 한다. 따라서 ‘반도체 기능을 하도록 만든 인공 원자’라고 할 수 있는 10∼20㎚ 크기의 양자점을 성장시켜 여기에 미세 패터닝 등의 작업을 하는 등의 나노 기술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또 나노 크기의 금속 패턴을 만들고 여기에 실제 신호를 가하는 측정 기술 등도 요구된다.

양자컴퓨터를 연구하기 위해서는 전자공학, 물리학, 재료공학 등 다양한 분야의 학제간 연구가 이뤄져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러나 이공계 기피 현상이 심화되면서 미래를 바라보며 이 분야에 전념할 우수 인력을 구하기 쉽지 않다는 점이 문제다. 안교수는 “고급 인력의 협력이 절실한 것이 양자컴퓨터 분야인데 정작 연구에 뛰어들 우수 인재를 찾기 힘들다는 점이 연구의 가장 큰 애로”라고 말했다.

미국은 국방부를 중심으로 이미 연간 1억달러의 연구비를 쏟아부으며 양자컴퓨터 연구에 박차를 가하고 있고 일본·유럽·호주도 양자컴퓨터 개발에 나서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는 인력을 구하지 못해 경쟁에서 뒤떨어지는 사태가 생길 수도 있다는 것.

안교수는 “양자컴퓨터가 상용화되면 복잡한 암호 체계를 단시간에 풀 수 있어 국방 분야에 요긴하게 쓸 수 있고 제약·바이오 등과 관련된 엄청난 양의 데이터 검색·처리도 가능해지는 등 활용 범위가 무궁무진하다”며 “양자컴퓨터 사용이 본격화될 때 한국이 낙오되지 않도록 이 분야의 기반을 닦는다는 마음으로 연구에 임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의 장기 목표는 10년 안에 16큐비트 수준의 동작 가능한 시스템을 구현하는 것이다.

이렇게 연구에 몰두하는 안교수지만 흔히 생각하는 메마른 과학자는 결코 아니다. 틈틈히 역사 서적을 읽고 글쓰기를 즐기는 인문학적 소양도 갖췄다. 지난해에는 과학적 지식과 역사적 상상력을 결합한 ‘임페리얼 코리아’라는 소설을 출간하기도 했다. 이라크에 파견된 한국군이 시공간의 왜곡 현상으로 동학혁명의 분수령이 됐던 우금치전투 현장에 나타나게 되면서 생기는 사건을 다뤘다.

안교수는 “뉴튼의 역학에서 양자역학에 이르기까지 과학의 발달은 인류가 사용하는 에너지와 도구에 대한 패러다임의 변화를 일으켜 왔다”며 “양자역학을 이용한 양자컴퓨팅은 또 한번의 패러다임 전환을 일으킬 것”이라고 전망했다.

한세희기자@전자신문, hahn@

◆한국 연구자 누가 있나 

  양자컴퓨터는 그 원리가 처음 제시되고 본격적인 연구가 이뤄진지 10년 남짓된 신생 학문 분야이다. 따라서 아직 세계적으로도 전문 연구자가 많은 상황은 아니며 한국에서도 이 분야를 연구하는 인력이 많지는 않다. 그러나 한국의 연구자들은 일천한 역사와 넉넉치 않은 지원 속에서도 상대적으로 우수한 성과를 내고 있다는 평가다.

한국의 대표적인 양자컴퓨터 분야 연구자로는 우선 한국과학기술원(KAIST)의 이순칠 교수를 들 수 있다. 이순칠 교수는 특정 분자의 외부 수소 2개의 핵스핀을 이용해 양자컴퓨터를 만드는 핵자기공명(NMR) 양자컴퓨터 분야를 연구하고 있다. NMR 양자컴퓨터는 분자의 핵을 비트로 사용하며 핵의 양자상태를 제어하는 기술인 핵자기공명 기법을 비트의 연산에 적용한다. 이교수는 3비트 용량의 초보적 양자컴퓨터를 구현, 학계의 주목을 받은 바 있으며 핵스핀 방식 양자컴퓨터의 가능성을 검증하기 위한 연구를 계속하고 있다.

서울대 수리과학부의 지동표 교수는 수학의 영역에서 양자컴퓨팅의 이론을 탐구하고 있다. 지동표 교수는 양자컴퓨팅을 구현하기 위한 알고리즘을 연구, 국제 학회에 논문을 발표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벌이고 있다. 최근에는 미국 공군 과학연구재단(AFOSR)으로부터 ‘양자컴퓨터 알고리즘’연구와 ‘양자오류 보정’ 연구에 각각 5만 달러와 2만5000달러를 지원받기도 했다.

고등과학원 계산과학부 김재완 박사도 양자컴퓨터에 관한 알고리즘과 이론을 연구하고 있다. 특히 양자암호통신 등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있다. 이들 양자컴퓨터 이론 연구자들은 기존의 수학과는 다른 수학적 체계를 이용해 양자컴퓨팅의 알고리즘을 연구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한편 세계적으로 양자컴퓨터 연구를 주도하는 국가는 미국이며 그 뒤를 일본, 유럽, 호주 등과 한국이 뒤따르는 상황이다. 미국 IBM은 NMR 방식 양자컴퓨터를 통해 7비트의 양자를 제어, 2의 7제곱개의 연산을 동시에 수행할 수 있음을 보여줬다. 미국 국방부도 암호 해독 기술 개발 등을 겨냥, 양자컴퓨터 연구를 집중 지원하고 있다.

일본 NEC와 이화학연구소는 양자비트 2개를 결합한 고체 논리연산회로 동작을 성공시킨 바 있으며 초전도물질을 이용한 양자컴퓨터 분야에서도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한세희기자@전자신문, hah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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