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더스포럼]이동통신의 진로

1996년 4월 1일 세계 최초로 CDMA 이동통신서비스가 시작된 지도 벌써 8년이 지났다. 현재 우리나라 이동통신 가입자는 3500만명을 넘어서 전 인구의 73%에 달하고, 이 중 3세대 단말기를 이용하고 있는 사람도 2700만명에 이른다. 특히 우리는 지구촌의 여러 나라들이 갈망하고 있는 유비쿼터스 통신을 이미 실현하고 있다. 작년 10월 17일 캘리포니아 주립대에서 열린 어윈 제이컵스 퀄컴 회장의 70회 생일 기념 심포지엄에 초대돼 그 곳에 간 일이 있다. 그때 심포지엄 사회자인 스마 교수가 필자를 소개하면서 “미국을 비롯한 여러 나라들이 3세대 이동통신서비스를 하느냐 마느냐 고민중인데 벌써 수천만 명이 3세대 이동통신을 하고 있는 한국에서 온 미래의 사나이”라며 추겨 세웠던 기억이 난다. 우리나라 통신인프라는 이처럼 선진국들이 부러워할 정도다.

 하지만 이 시점에서 우리가 통신강국이 되기까지 걸어왔던 어제와 오늘을 냉철한 시각에서 한 번쯤 되돌아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우리나라 이동통신의 발전과 새로운 미래를 여는 데 있어 좋은 교훈이 되기 때문이다. 먼저 ITU의 표준화 과정부터 살펴보자. ITU가 표준을 제품에 선행해 내놓은 시작은 1980년대 초에 발표한 ISDN이라고 생각된다. ISDN 규격이 발표되자 소위 ‘꿈의 통신’이라고 온 세상이 떠들썩했고 모든 연구비가 여기에 집중 투입됐다. 그러나 ISDN이 상품으로 가치를 인정받은 것은 1990년대 중반께이고 그때는 시대에 뒤떨어지는 ‘미흡한 규격’으로 인식돼 결국 엄청난 돈과 시간만 낭비한 채 실패작이 되고 말았다.

 IMT2000의 경우도 마찬가지라고 본다. IMT2000은 사실 ISDN과 같은 시기에 개발 작업이 시작되었다. 1978년 FPLMTS(Future Public Land Mobile Telephone System)로 출발, 1990년대 후반 IMT2000으로 이름을 바꾼 후 2000년에야 비로소 규격이 확정됐다. 문제는 22년이 소요된 표준화 연구기간에 내놓은 성과물이 고작 호환성이 없는 다섯 가지의 표준규격뿐이라는 것이다. 통일된 것이 있다면 데이터 전송 속도뿐이다. 그 전송속도도 ISDN에서 이미 무용지물로 증명된 것이고, 그나마 쓸모 있다고 여겨지는 2Mbps는 아직도 실현하지 못하는 상태다.

 그렇다면 우리나라 3세대 이동통신 서비스는 어떠한가. 작년 8월 발생한 이동통신을 이용한 VOD 서비스 사건을 기억할 것이다. 작년 6월 말까지 무료로 VOD 시범서비스를 실시하다 7월에 과금을 시작하면서 100만원이 넘는 이동전화 요금 고지서에 놀란 이용자들이 들고 일어나 발생한 것이다. 이 사건에서 우리는 두 가지의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첫째, 디지털 데이터 서비스인 VOD 시장은 존재한다는 것과 둘째, 소위 디지털 통신을 위해서 개발된 3세대 이동통신시스템은 너무 비싼 요금 때문에 데이터 통신용으로는 부적합하다는 것이다.

 앞에서 제기한 모든 문제들은 3세대 이동통신 시스템의 출발점이 기본적으로 음성통신이었다는 데 기인한 것이라 볼 수 있다. IMT2000은 22년이란 세월을 허송하면서 인터넷에 의한 디지털 통신혁명의 흐름을 제대로 읽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ISDN 이후의 표준규격에 대한 기술적 대안 모색에만 치중해 상품성을 따지는 데 상대적으로 소홀했다. 이런 점에서 제 4세대를 위한 ITU의 노력이 과연 좋은 결과를 도출해낼 수 있을지 의문이다.

 따라서 다음 세대의 이동통신 시스템을 연구하는 사람들은 2010년을 목표로 하는 ITU의 결정을 기다리기보다 남보다 상품성 있는 제품을 먼저 선보이는 데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또 음성보다는 데이터가 주된 통신이라는 개념으로, 즉 데이터 통신을 주된 사업으로 삼겠다는 생각으로 새로운 시스템을 개발해야 한다. 그동안 실용화되고 증명된 기술들을 망라한 상품성 있는 제품 개발이 시급하다고 생각한다. 이동통신시스템은 신세대 시스템이 구세대 시스템을 완전 대체하는 특성이 있기 때문에 이동통신의 의존도가 높은 우리나라 입장에서는 더욱 절실한 문제다.

◆양승택 동명정보대학교 총장 yang@tit.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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