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인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가 국내 대학 사상 처음 총장으로 선임됐다.
한국과학기술원(KAIST) 이사회(이사장 임관 삼성종합기술원 회장)는 28일 서울 메리어트 호텔에서 제154회 임시 이사회를 열고 98년도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인 미 스탠퍼드대 로버트 러플린 응용물리학과 교수(54)를 제12대 KAIST 총장에 선임한 것. 러플린 신임총장의 임기는 올해부터 오는 2008년까지 4년간이다.
미국 MIT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러플린 교수는 1979∼81년간 벨 연구소 박사후연구원을 거쳐 현재 △로렌스 리버모어 연구소 연구원 △스탠퍼드대 응용물리학과 교수 등으로 재직중이다. 한국에서는 지난 4월부터 포항공대내 아태이론물리센터(APCTP) 소장과 포항공대 석학교수를 맡고 있다.
그는 양자물리학의 세계적인 대가로 32세때 양자에서 나타나는 현상인 ‘분수 양자 홀 효과(Fractional quantum Hall effect)’를 이론적으로 규명, 지난 98년 추이와 스트뢰머 교수 등과 함께 노벨 물리학상을 공동 수상했다.
러플린 교수의 총장 선임은 KAIST에는 새로운 시스템을 시험하는 계기가 될 전망이다. 이달 중순 한국을 일시 방문했던 러플린 신임 총장은 KAIST를 미국 스탠퍼드대와 비교하면서 “미래 사회에 걸맞은 새로운 모델의 연구중심 이공계대학을 만들고 싶다”는 포부를 밝힌 바 있어 일단은 KAIST 시스템 전체에 혁명적인 소용돌이는 불가피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이번 외국인 총장 선정 배경에는 러플린이 친한 인사라는 점도 작용했지만 세계 초일류 이공계 연구중심 대학을 지향하는 KAIST가 선진 외국의 경영시스템을 시험하기에 적당한 규모의 경제를 갖추고 있다는 점도 묵과할 수 없는 요인 중의 하나다. 따라서 KAIST를 대상으로 한 경영쇄신과 글로벌화의 시스템 개편은 불가피할 전망이다.
벌써 KAIST내에서는 영어교육에 대한 관심이 부쩍 높아지고 있다. 일단 모든 문서와 회의가 영어를 기본으로 진행될 것이라 예측하기 때문이다.
KAIST의 위상도 엄청나게 올라갈 것으로 보고 있다. 그동안 외국에 나가 KAIST에 대한 소개를 따로 해야만 인정을 받았으나 이제는 러플린 이름만 대면 통할 것이라는 예상도 가능하다.
그에 대한 상징성과 상품성이 큰 만큼 그는 우리나라 과학기술의 전도사 역할도 병행해야만 할 것으로 보인다.
러플린은 “강력한 전자산업과 같이 한국이 쌓아올린 가치를 이용하고 싶었다”며 IT 및 인터넷 등에 관심을 보인 것으로 알려져 IT분야의 기초연구가 한단계 업그레이드될 수 있는 계기를 만들 수 있지 않느냐는 조심스런 전망도 나온다. 러플린이 세계적으로 이름이 알려진 석학인 만큼 국제적인 협력 또한 한층 강화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과학기술계에서는 러플린 교수의 총장 선임에 대해 일단 환영하는 분위기이지만 그가 학문적인 명성에 비해 학교경영 능력이나 행정력이 입증되지 않았다는 우려도 일부에서 제기하고 있다. 특히 그가 친한인사이긴 하지만 국내나 KAIST 정서와 환경에 대한 이해가 부족할 경우 오히려 혼란만 초래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만약 러플린이 자신의 뜻을 펼치기 위해 정부에 대대적인 지원을 요구할 경우, 다른 대학과의 형평성 문제도 걸림돌로 작용할 수 있다.
홍창선 전 KAIST총장은 “KAIST가 세계적인 명문대학으로 도약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며 “KAIST차원을 넘어 국가과학기술의 레벨이 한 단계 업그레이드되는 전환점을 맞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대전=박희범기자 hbpark@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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