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년 사이에 초등학교 어린이도 몇개의 계정을 갖고 있을 정도로 e메일은 보편적인 통신수단이 됐다. 기업에선 e메일 없이 업무를 볼 수 없게 됐다. 약속을 정할 때, 업무상 의견이나 관련 자료를 교환할 때도 e메일을 빼놓을 수 없다. e메일은 확실히 빠르고, 저렴하고, 쉬운 의사소통 방법이다.
하지만 요즘 e메일 때문에 빚어지는 뉴스를 보면 ‘공짜는 없다’라는 말을 실감하게 된다. e메일은 편리한 만큼 위험한 양면성을 지니고 있고, 위험을 회피하려면 별도의 비용을 추가로 더 들여야 하기 때문이다. 기업들이 잘못된 e메일로 인해 받을 수 있는 피해는 상상외로 크다. 이미 선진국 기업들은 기밀누설, 법적책임, 생산성저하, 명예훼손 등 부적절한 e메일 탓에 빚어지는 문제 때문에 수년 전부터 큰 대가를 치르고 있다. 엄청난 액수의 벌금을 내거나 심한 경우 실형까지 사는 등 것이 외국에선 흔한 일이다.
뒤끝이 개운치 못한 ‘e메일 괴담’은 이제 더 이상 남의 나라 얘기가 아니다. 요즘 들어 e메일로 인해 빚어지는 불미스런 얘기들이 국내뉴스의 하이라이트로 등장하는 횟수가 부쩍 늘었다. 위성방송서비스회사인 S사 간부가 적절하지 못한 방법으로 직원의 e메일을 조사하다 소송에 휘말리는 사건이 벌어진 일도 있었다. UBS워버그 증권은 직원이 중요자료를 회사의 공식승인 전에 1096명의 국내외 영업직원과 애널리스트들에게 보내는 바람에 징계를 받았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첨단기술 유출사건에도 항상 e메일이 그림자처럼 조연으로 따라붙는다.
괴담의 결말은 뭘까. 항상 닮은꼴이다. 사건이 터지면 회사는 직원 개인의 실수로 돌린다. 하지만 결국엔 회사도 함께 피해를 본다. 고의든 실수든 간에 e메일을 통한 기밀유출은 그 결과가 제3자에게 치명적인 피해를 끼치므로 관리의무를 다하지 못한 회사도 당연히 책임을 지는 것이다. e메일은 많은 양의 정보를 동시에 여러 곳에 보낼 뿐만 아니라 출처가 명확하게 표시되어 있고 원본과 똑같은 사본이 남는만큼 일단 문제가 생겼을 때 법적 책임을 피할 수 없다.
잘못된 e메일로 인해 회사가 부닥칠 위험의 종류는 국내보다 외국이 훨씬 다양하다. 영국의 A기업 직원이 동료에게 경쟁사인 W사가 재정적 위험에 처해 있다는 내용의 e메일을 무심코 보냈고, 법원에서는 46만파운드를 지급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이 같은 사고가 일어났을 때 e메일을 관리하는 회사라면 구성원의 잘못된 행동에서 오는 피해를 미연에 방지하고 사후에 최소화할 수 있다. e메일 시스템의 부적절한 이용을 막는데 회사가 최대한 노력을 했다는 자구노력을 인정 받게 되어 결과적으로 회사가 책임을 질 필요가 없다는 사실이 외국의 여러 판례에서 증명됐다.
우리나라에서도 이와 비슷한 상황이 전개될 것이라는 것은 예측 가능하다. 앞서 예로 든 S사나 UBS워버그 증권 모두 e메일 감사시스템을 운영하고 있었다면 피해를 최소화 할 수 있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일치된 의견이다. e메일 발송현황을 일목요연하게 보여주는 e메일 감사시스템의 도입은 그 회사에 e메일 관리정책이 있음을 확인해주는 주된 방법이다. 앞으로는 거래소나 코스닥에 등록된 기업과 그 계열사까지 e메일 관리에 신경을 쓸 때가 됐다. 공정공시제도가 시행되면 e메일을 관리하는 기업과 그렇지 않은 회사간에 희비가 엇갈리게 될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공정공시제도는 일반 투자자들의 피해를 최소화할 목적으로 도입된 만큼 의도되지 않은 공시정보가 e메일 등을 통해 회사 밖으로 나갔을 때 지체없이 일반에 공시하도록 강제화하는 것이 골자다. 종합적인 e메일 정책을 수립하고 잘 관리하는 회사는 금융감독원의 징계나 소액주주들의 손해배상 소송을 피할 수 있을 것이다.
기업이 e메일 감사시스템 등을 도입해 e메일을 관리하는 것은 더 이상 프라이버시 침해나 ‘빅 브라더’ 이슈에 얽매일 사안이 아니다. e메일 활용도가 높은 기업이라면 예외없이 ‘e메일 재앙’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21세기 경영에서 e메일 관리는 현명한 비즈니스의 필수조건이다.
◆이캐빈 정영태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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