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장인을 찾아서](17.끝)조병덕 삼성전자 부사장

약속시간보다 조금늦게 삼성전자 수원 사업장 정보통신연구소에 도착했다. 몇가지 간단한 통과절차를 끝내고 무선사업부 개발실장실로 급히 올라갔다.조병덕 삼성전자 부사장(49). 무선사업부 개발실장인 그를 ‘21세기 장인을 찾아서’의 주인공으로 인터뷰 약속을 잡는데 한 달여가 걸렸다. “21세기형 장인으로 적합하지 않다”는 그를 설득하느라 애를 먹었다. 그런 그는 기자를 의외로 반갑게 맞아줬다. 먼저 인터뷰용 사진을 몇 장 찍었다.

“거듭 말하지만 나는 21세기 장인으로 적합하지 않습니다. 20세기 엔지니어거든요. 21세기 장인은 경영 능력도 필요한 거 아닙니까. 하지만 나는 연구실에 묻혀 사는 게 좋아요. 신기술을 접할 때 가장 신이 나거든요.” 그는 차분하게 말을 꺼냈다.

무선사업부는 휴대폰 사업부다. 삼성은 휴대폰 최고급 브랜드로 통한다. 개발실은 삼성 휴대폰의 산파 역할을 한다. 1년에 개발실을 통해 나온 모델은 100개가 넘는다. 개발실은 지난해 108개의 모델을 만들었다. 3일에 한 번 꼴로 신제품을 내놓는 것이다. 그가 이 개발실의 책임자다.

조 부사장은 84년 삼성전자로 회사를 옮기면서 본격적으로 무선 사업에 발을 들여 놓았다. 그의 첫 작품은 페이저 개발이었다. 당시 국내 페이저 시장은 모토로라가 휩쓸었다. 그는 밤낮 연구개발에 몰두해 소프트웨어를 이용한 페이저 칩 개발에 성공한다. 페이저를 처음으로 국산화한 것이다.

“군 복무 시절 마이크로웨이브 조교로 무선에 처음 발을 들여 놓았습니다. 그리고 삼성전자 초창기 무선사업부 멤버로 활동하면서 무선 인생이 시작됐죠. 올해로 벌써 20년 째네요. 그래도 처음으로 CDMA 상용화한 게 가장 기억에 남아요. 한국 무선역사에 한 획을 그을 만한 사건이잖아요. 제가 그 일원으로 참여한거죠. 삼성은 CDMA 휴대폰 시장의 1위 업체가 됐구요.” 이후에도 삼성 휴대폰이 역사의 한 획을 그을 때마다 그의 이름은 빠지 않았다.

개발실에는 현재 2000명이 넘는 연구개발인력이 개발에 몰두하고 있다. 국내 최대 규모다. 그럼에도 그는 개발실에 높은 점수를 주지 않았다. “세계 최대 휴대폰업체인 노키아는 개발 규모와 인력에서 삼성을 압도합니다. 2위 자리를 놓고 삼성과 경쟁을 벌이는 모토로라는 독자 기술 확보가 잘 돼 있습니다. 이에 비하면 삼성의 휴대폰 역사는 불과 10년 안팎입니다.”

삼성 휴대폰 성공신화의 1등 공신의 말 치고는 웬지 자신감이 없어 보였다. 오히려 부담감이 느껴졌다. 어쩌면 삼성 휴대폰은 그가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성장해 버린지도 모르겠다. 최고급 브랜드. 세계 3위. 그것도 세계 1위를 겁주는 3위. 신기술. 경쟁업체의 추격. 이 모든 것들이 그를 짓누르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미 앞으로 어떻게 헤쳐 나갈지 계획은 서 있는 듯 했다.

그의 말이 이어졌다. “삼성은 3세대(3G)와 4G에 많은 투자를 하고 있죠. 차세대 단말의 원천기술 확보가 목표죠. 하지만 이것이 곧바로 개발실의 경쟁력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개발실은 상품을 만드는 곳이기 때문이에요.

새로운 것을 따라가야 합니다. 상품 말입니다. 그렇지 못하면 아무리 많은 원천기술을 가지고 있어도 무용지물입니다. 그래서 엔지니어는 상품 만든 것을 경시하면 안 됩니다. 기술 변화는 빠르고 새로운 기술도 많습니다. 남이 이전에 개발한 기술을 빨리 내 것으로 만들 수 있어야 합니다. 이게 제가 생각하는 21세기형 엔지니어입니다.”

그는 삼성 휴대폰의 품질과 생산력을 최고로 꼽았다. “저는 삼성이 경쟁업체에 원천기술에서 밀리고도 승승장구하는 비결을 품질로 보고 있습니다. 품질 하나만은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이 없죠. 또 하나를 꼽으라면 생산력입니다. 구미 공장은 생산 시스템은 제조공장중 세계 최고 수준입니다.”

그런데 한 가지 의문이 생겼다. 개발실 노력없이 최고 품질이 나올 수 있겠는가. 그는 일주일 1∼2번씩 구미공장을 방문한다. 생산과 개발을 효과적으로 연계하기 위해서다. 그의 직급은 부사장이다. 하지만 그는 부사장보다 개발실장 더 맘에 든다고 했다. 오전 7∼8시에 출근해 밤 10시가 넘어 집으로 돌아간다. 벌써 2년째다. 개발실이 지겨울만도 한데 밥도 연구소 식당에서 먹는다. 식사 후 담배 한 대 태우면 곧바로 개발실로 올라간다. 그는 개발실에 있을 때 가장 행복하단다. 집에서 화내겠지만, 아니 이미 포기(?)했지 않았을까.

“시류에 따라 이리저리 옮기는 연구원들을 보면 안타까워요. 엔지니어는 무엇보다 끝을 보려는 꾸준함이 있어야 해요.” 그가 20년 넘게 엔지니어로 살면서 터득한 성공 비법이다.<김익종기자 ijkim@etnews.co.kr>

1984. - . 삼성 입사

1988. - . 삼성전자 통신사업부 무선개발실 수석연구원

1998. - . 삼성전자 정보통신총괄 무선사업부 개발1그룹장

1999. - 2001.03 삼성전자 정보통신총괄 무선사업부 개발팀담당 상무이사(연구위원)

2001.03 - 2002.01 삼성전자 정보통신총괄 무선사업부 개발팀담당 전무(연구위원)

2002.01 - 2003.01 삼성전자 텔레커뮤니케이션총괄 무선사업부 개발팀담당 전무(연구위원)

2003.01 - . [現] 삼성전자 텔레커뮤니케이션총괄 무선사업부 개발팀담당 부사장(연구위원)

[내가 본 조병덕 부사장]삼성전자 네트워크사업부 시스템개발팀장 김영기 전무

조병덕 부사장은 아날로그 휴대폰에서 3G 휴대폰까지, 개발의 중심에서 묵묵히 일해 온 사람이다. 세계 일류 휴대폰으로 우뚝 성장한 삼성 휴대폰 개발 총 책임자가 그다.

그가 개발한 휴대폰은 그 만큼이나 믿음직스럽다. 나는 90년 중반 그를 처음 알았다. 조 부사장이 CDMA 휴대폰 개발에 몰두할 때다. CDMA 시스템 개발에 여념이 없었던 나는 그를 개발의 선배로, 파트너로서 존경했다.

신기술 신제품 개발은 항상 많은 난관에 부딪친다. 그리고, 그 난관들은 개발자가 밤을 하얗게 샌 후 새벽녘 얻어진 아이디어로 해결되곤 한다.

내가 아는 조 부사장은 문제를 해결할 때까지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다. 이 방식으로 많은 난관들을 극복했다.

개발은 서로간의 많은 격려와 신뢰를 요구한다. 연구원 시절부터 수천명의 연구원을 이끄는 지금까지, 그는 개발의 선배로, 개발의 파트너로 가장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이다. 그가 어려울 때 보여준 격려와 신뢰 때문이다. 연구원이 가장 어려울 때 격려해 주는 리더가 그다.

우연한 기회에 듣게 된 조 부사장의 대학 시절의 이야기다. 그의 성품과 업무 추진 방식을 피부로 이해할 수 있는 얘기여서 짧게 소개한다. 조 부사장은 군 제대 직후, 아직 군 복무 중인 친구로부터 집에 혼자 있는 아버지를 살펴 달라는 부탁을 받는다. 그는 곧바로 그의 거처를 친구 아버지 집 근처로 옮겨 간다. 그리고 친구가 제대할 때까지 친구 아버지 보살폈다고 한다.

신의를 지킨 것이다. 그것도 철저하게 지켰다. 그의 성품 때문이다. 제품도 마찬가지다. 그는 자신이 개발한 제품을 믿고 선택해 준 고객에게 기대 이상의 품질을 제공한다.

그는 사원시절 사용했던 회로도 확대경을 아직도 사용하고 있다. “주말 자택에서 새로운 기술을 공부할 때 가장 즐겁다”는 조 부사장이 개발한 매력적이고 믿음직한 휴대폰을 나는 매일 즐겁게 사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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