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허 문제가 더는 부각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특허 소송에 관심이 없던 업체들도 특허가 이슈가 되면서 우리도 한번 로열티나 받아 볼까하는 심정으로 덤벼들까 걱정입니다” 중견 반도체 특허팀장의 말이다.
대기업은 물론 중소기업 간 특허분쟁이 산업계 전반의 관심사로 떠오르면서 ‘특허에 대한 왠지 모를 불안감’을 감추며 최대한 조용히 사업을 진행해 온 중소기업들이 안절부절하고 있다. 언론에서 떠드는 것도 싫고 정부에서 대책을 만든다는 것도 부담스럽고 무조건 지금처럼 사업만 할 수 있으면 된다는 생각뿐이다.
하지만 국내 특허전문가들은 이제 더는 피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고 준비하면서 정면 돌파할 수밖에 없다고 충고한다. 이미 수년 전부터 선진국 특허전문기업에서는 세계 각국 기업의 사업 아이템을 조사해 자사 고객기업의 특허를 침해한 사례를 분석하고 있고, 언젠가 그 아이템으로 타 기업이 수익을 올리면 그때 소송을 제기해 특허료 수입을 올리는 수익사업을 구상한 지 오래라는 것이다.
산자부 반도체전기과 최민구 과장은 “우리 산업 곳곳에 특허 분쟁 소지가 잠재돼 있다”며 “이젠 기업들이 특허에 적절히 대응할 수 있는 토양을 조성하고 적극적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확신을 심어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서는 산·관·학·연이 힘을 합쳐야 하고 무엇보다도 기업 스스로 자신들의 생존경쟁력인 기술을 체계적으로 관리하겠다는 의지가 중요하다. 웰처국제특허법률사무소의 김희곤 변리사는 “최근 들어 해외 선진기업들의 특허 공세가 중소기업에까지 무차별적으로 진행되는 만큼 중소기업이라 하더라도 특허 문제에 대비해야 한다”며 “사업을 진행하기 전에 특허 로드맵을 작성해 선진기업들이 어떤 특허를 보유하고 있는지, 자신들은 어떻게 이를 피해야 하는지를 충분히 사전 검토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특허 관리를 위해서는 특허 가치 평가가 필수적”이라며 “기술거래소 등 기술평가 기관을 활용해 보유한 특허의 가치를 평가하고 가치가 증명된 특허는 꼭 사업화해 수익을 창출하는 선순환모델로 이어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기술표준원 비즈니스표준과 박인수 과장은 “이제는 특허·표준·기술개발 등이 3위 일체가 되는 시스템에 기업들이 익숙해져야 한다”며 “실제로 대기업들은 특허 등록은 물론, 기술개발과 함께 국제표준화를 추구하고 있고 그에 따른 로열티 수입도 점점 확대되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의 제조업은 미래가 두렵다’의 저자인 산자부 성윤모 과장은 “일본은 우리보다 몇 년 앞서 특허에 관심을 가졌고 그 결과가 특허공세국으로서의 지위 확보로 이어졌다”며 “한국이 세계시장논리속에서 지속적인 성장을 거듭하기 위해 이제 더는 특허대비를 미룰 수 없다”고 강조했다.
올해부터 정부와 업계가 공동 추진하고 있는 차세대성장동력사업은 사실상 고도기술개발·사업화에 있다. 따라서 진행과정에서 해외 선진업체들과의 기술·특허 분쟁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이 때문에 산업 전반의 특허 문제를 체계적으로 지원할 ‘디지털전자특허지원센터’ 같은 기관 설립이 요구된다. 정통부는 지난해부터 IT 지적재산권 풀 제도를 도입해 운영하고 있으며 올해는 IT 분야 특허를 획득한 중소·벤처기업들을 위해 ‘IT 지적재산권 전략팀’을 구성하기도 했다.
한 특허 전문가는 “특허는 양날의 칼”이라며 “현재는 해외 기업들로부터 특허 공세의 타깃이 되고 있지만 향후에는 국내업체들이 중국, 인도 등 한국을 따라오는 신흥 개도국을 다룰 수 있는 무기로 삼을 수 있도록 체계적인 관리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유형준기자 hjyoo@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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