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이맘때였다. 홍성범 세원텔레콤 회장의 필리핀 출장에 동행했다. 유럽형 이동전화(GSM) 생산라인의 필리핀 현지공장 설립 행사였다. 세원텔레콤이 자금난으로 시달린다는 소문이 무성할 때였다. 그 날 저녁 마닐라 모처에서 홍 회장과 식사를 함께 했다. 홍 회장은 겉보기에도 사업 수완이 좋은 사람으로 느껴지는 인물이었다. 세원은 벤처기업으로 시작, 지난 90년대 말 코스닥 등록 후 불과 1∼2년 만에 계열사 10여개를 거느리기에 이르렀다. 30년 전통의 통신기업인 맥슨텔레콤도 이미 수중에 들어갔다. 식사와 함께 폭탄주가 몇 순배 돌았다. 그의 사업 설명이 시작됐다. 필리핀에서 노키아에 이어 2위를 할 것이라는 말도 했다. 중국 최대 가전업체인 하이얼과의 전략적 제휴 성과도 설명했다. 그는 또 “조만간 대형 물량을 수주할 것”이라며 “기대하라”고도 했다.
그래서 물었다. “자금 사정이 안 좋다는 말이 돈다”고. 그는 “터무니없는 소리다. 나는 어음거래 안 한다. 그래서 부도를 안 낸다. 일시적인 현상이다. 이대로 죽지 않는다”고 말하고 자리를 떴다. 옆에 있던 구조조정 기업의 임원이 그를 “골목대장”이라고 했다. 다른 사람 말을 잘 안 듣지만, 책임감은 강하다고 했다. 그런 그지만 업계는 세원텔레콤의 생존 확률은 50%가 넘지 않게 봤다.
그는 다음날 한국에 돌아왔다. 대규모 자금유치에 성공했다. 구조조정도 단행했다. 계열사 최고경영자도 갈아치웠다. 그럼에도 시장 상황은 어려웠다. 연구개발(R&D)을 아웃소싱했다. 본사 건물도 매각했다. 맥슨텔레콤 지분도 넘겼다. 주변에선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다했다는 평가가 나왔다.
세원텔레콤은 결국 3일 법정관리를 신청했다. 홍 회장은 늘 규모의 경제를 강조했다. 그래서 맥슨텔레콤도 인수했다. 하지만 그의 도전은 실패로 끝났다. 휴대폰 업계의 성공신화로 꼽히던 그는 이제 모든 것을 버려야 할 것이다. 후배 기업인은 이제 벤처 비즈니스의 많은 것을 그에게서 배울 것이다.
<김익종기자 ijkim@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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