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젠 정책이다](2)투자활성화

17대 국회에서 정부와 정치권이 당장 챙겨야 할 또 하나의 IT정책 이슈는 기업의 투자 촉진이다.

그동안은 정부가 IT시장과 산업계가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면 기업들은 관련 기술과 서비스를 개발하고 투자해 후방산업을 키웠다. 또 내실이 다져진 후방산업계가 다시 신기술을 개발하고 재투자를 끌어내면 IT가치사슬이 튼튼해지는 IT선순환 구조를 만들었다.

 그러나 정부와 업계는 2000년을 정점으로 새로운 투자를 이끌어낼 큰 맥을 짚어내지 못하고 있다. 기대를 모았던 비동기식 IMT2000(WCDMA)은 상용가입자를 받기에는 결점이 너무 많다. 디지털TV 전송방식 논란이 갑자기 불거져 나왔고 총선 이후에도 여전히 혼미 상태다. 오히려 더 복잡해질 것이라는 관측도 많다.

 상황이 이쯤되자 정부가 힘을 갖고 새롭게 IT투자를 유도하기가 쉽지 않다. 과거 정책에 대한 뒷책임도 져야 하고 신규 서비스에 대한 투자촉진도 설득력이 약해졌다.

 한 통신사업자 정책담당 임원은 “예전 같으면 정부 투자 촉진 정책에 따라 사업자 선정 방향 등을 미리 알아내 먼저 준비하는 것이 주된 역할이었지만 요즘은 역으로 따를 수 없는 대응 논리를 만드는 게 임무”라며 “정부가 하자는 대로 하다간 시장에서 실패하기 일쑤”라고 토로했다.

 전자산업진흥회 관계자는 “새로운 정책이 결정되면 여기에 따라 먼저 기술을 개발하거나 투자한 기업이 보호돼야 하는데 그런 것들이 전혀 없으니 누가 정부의 정책을 신뢰하겠느냐”면서 “DTV 전송방식이 대표적 사례”라고 꼽았다.

 이같은 정책당국과 산업계 사이에서 쌓여있는 불신의 벽을 걷어내는 역할이 바로 새 국회의 역할이다. 이를 위해서는 정부가 전문적인 지식과 조직력을 갖고 역할을 할 수 있도록 관련 법제를 정비하는 것이 급선무다. 통신·방송 규제 정책을 통합하고 산업육성법을 손질하는 등 IT산업계 현안들의 방향을 결정해야 할 과제가 첩첩산중이다.

 동북아 IT허브로 발돋움하기 위한 외국인 투자유치 정책도 전략을 다시 짜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IBM과 인텔 등이 한국에 R&D 투자할 뜻을 비추고 센터 설립 등의 가시적인 성과도 있기는 하지만 여전히 많은 다국적 IT기업들의 눈은 한국보다는 중국을 향한다. 투자하려 해도 조건은 물론 절차도 까다롭다.

 국내에 투자하려는 다국적 기업들도 장기적인 투자보다는 발달한 한국의 IT인프라를 최대한 활용하려는 테스트베드 차원이 지배적이다. 통신의 경우 중국이나 대만보다 높은 법인세와 부가가치세 규정 등 각종 투자유치책도 안팎의 상황을 잘 살펴 개선안을 마련해야 한다.

 외국기업협회 관계자는 “동북아 IT허브를 만들기 위한 정부 정책에 대한 밑그림이 아시아 주요 국가와의 차별성을 고려해볼 때 크게 새로울 게 없다”며 “시장도 적고 인력도 부족한 상황에서 다국적 기업들이 본사를 설득할 수 있는 테스트베드로서의 다양한 역할이 보완돼야 한다”고 말했다.

 통신사업자나 다국적 기업이 투자를 꺼리는 상황에서 삼성전자나 LG필립스LCD 등 일부 대형 제조업체들이 차세대 LCD 투자를 단행하는 등 그나마 제 역할을 한다.

 하지만 이러한 투자도 해당 지역 자치단체의 도움 외에 정부가 제대로 백업해준 것은 없다시피 하다는 게 IT제조업체들의 불만이다. 한 제조업체 관계자는 “까다로운 공장 설립 절차를 단축시켜주는 것은 고사하고 ‘국토균형발전 차원에서 이 곳보다는 다른 데 투자하면 어떻겠느냐’는 얘기라도 안해주는 게 기업들을 도와주는 일”이라고 말했다.

 총선에서 정당들은 경제 공약 중 일자리 창출의 일환으로 기업의 투자 활성화를 경쟁적으로 내놓았다. 기업들은 17대 국회가 이러한 약속을 지켜주기를 바란다. 만일 이 기대가 물거품이 된다면 그나마 투자를 감행하는 업체들마저 이 땅을 떠날 것이다.기업 투자 활성화는 제2기 집권에 들어간 참여정부와 환골탈태하려는 17대 국회를 평가하는 주요한 잣대로 떠올랐다.

 <정지연기자 jyjung@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