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노강국을 건설하자](4)일본(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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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내 산업화에 성공하지 않으면 투자자가 모두 철수할 것이다.”

일본 세이코인스트루먼트나노테크놀로지(SII NanoTechnology)의 히로요키 후나모토 사장에게 주어진 시간은 앞으로 3년이었다. 지난 수년간 나노 산업이 일본의 ‘잃어버린 10년’을 되찾아 줄 수 있는 구세주처럼 등장하고 각계의 투자 유치를 받았으나 나노 산업화가 늦어지고 있어 투자 회수도 못하고 있는 형편. 후나모토 사장의 말은 일본 산업계가 나노산업에 임하는 절박한 심정을 대변하고 있다.

일본 굴지의 대기업인 세이코(Seiko)도 별도의 나노 전문 회사를 만들며 나노산업 부흥에 전력을 쏟고 있을 정도다.

지난해 10월 300여 대기업, 중소·벤처기업이 한데 모여 탄생시킨 나노기술신산업창조추진협의회(NBCI, Nanotechnology Business Creation Initiative, 본지 4월 8일자 참조)의 사례도 일본의 기업들이 얼마나 나노 산업 만들기에 전력을 쏟고 있는가를 엿보게 해 준다.

◇공공 연구기관· 국립대학 벤처 통한 산업화 박차=현재 일본의 나노 산업은 대기업과 중소기업 그리고 정부 투자 연구기관(독립행정법인)이 고루 존재하고 있지만 연구개발형 벤처기업(VB)이 드물어 나노 연구개발력이 쇠퇴할 것이라는 위기감이 팽배하다. 특히 한국과 대만이 국가적인 지원을 받아 치고 나오는 것도 일본 업체들에게는 큰 부담이다. 이런 상황에서 일본은 공적 연구기관이나 국립대학이 나노 벤처를 직접 설립, 연구개발 수준을 한 단계 높이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포톤튜닝’. 일본 과학기술청 관할 특수법인으로 연구개발의 명문으로 알려져 있는 이화학연구소가 ‘황금시대의 부활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설립했다. 이 회사는 사장 이하 5명의 전문가가 광의 파장이나 출력을 자유로이 변환할 수 있는 첨단적 레이저 장치를 제품화해 반도체 검사나 의료 등에 폭넓게 보급시키는 것을 주력사업으로 하고 있다.

정부의 지원과 대학 연구실의 기술이 결합하는 형태의 창업이 활발해 일본 나노산업의 견인차 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다. ‘스쿠바 미에존’이 대표적 회사다. 쓰쿠바 대학이 설립한 산학교류 시설 ‘첨단 학제영역연구센터(TARA)’가 탄생시킨 이 회사는 계측기기의 작동 소프트웨어를 개발하고 판매 중이다. 스쿠바 대학에 이어 오사카 대학등도 산학교류를 하고 있으며 이 성과를 기업으로 연결시키는 조직인 ‘벤처 비즈니스 레버러토리(VB레버)’도 토호쿠 대학이나 훗카이도 대학 등 20개 이상 대학으로 확산 되고 있는 추세다.

◇나노 재료가 중심=현재 일본 기업의 나노 기술 제품을 분야별로 나눠보면 반도체, 미립자, 카본나노튜브, 광학관련 등이 많고 전체가 ‘재료’ 개발과 관련되어 있다는 것이 큰 특징이다.

주로 차세대 ‘기능재료’등 재료 혁신과 연결되어 있어 유기·무기 복합체, 수지, 유리 금속 등의 분야에서 나노테크가 급속하게 추진되고 있고, 상향식(bottom-Up) 방식이 나노기술의 주류가 되고 있는 점도 참고할만하다.

프론티어카본(FCC)와 울박(ULVAC)이 대표적인 회사다. 탄소나노튜브의 일종인 플러렌을 생산하기 이해 미쓰비시화학과 합병해 탄생한 프론티어카본은 미쯔비시화학, 혼조우 케미컬, FIC, 미쓰비시 상사가 갖는 생산기술, 지적재산, 판매력, 노하우를 기반으로 플러렌의 대량생산과 저가격화를 실현해 플러렌으로 세계를 주도하겠다는 야심찬 목표다.

세계적 장비 회사 울박도 이미 은, 구리 등의 금속 나노분말, 티타늄옥사이드(TiO2), 알루미늄옥사이드(Al2O3)등의 산화 나노분말 등을 전자공학, 광학, 예술분야 재료를 판매하여 연간 400만 달러의 매출을 기록하고 있다.

이들 재료 기업의 80%가 2006년 내에 상용화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어, 불과 2∼3년 후 나노 제품이 한 번에 꽃필 가능성도 점쳐지고 있다.

◇일본의 도전, 한국의 선택=나노 산업 부흥을 위한 일본 산학연관의 전방위적인 노력을 한국은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가. 국내 전문가들은 국내 기술이 여전히 미국, 일본 등을 복제하는 수준에서 이들을 추격하는 양상을 띠고 있으며 하루빨리 차별화를 하지 않으면 세계 최고 제품을 만들기 어렵다고 지적하고 있다. 특히 응용제품을 개발하는데 힘써야 한다는 주장이 강력히 제기되고 있다.

전자부품연구원의 신상모 나노바이오센터 연구위원은 “이미 수 백 개의 탄소나노튜브, 플러렌 생산기업(연구소)가 있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며 “한국은 같은 제품을 연구하면 경쟁력이 없으며 응용분야를 다양화하는데 초점을 맞춰야한다”고 말했다.

같은 성질의 탄소나노튜브(CNT)를 개발하는 것이 아니라 탄소나노튜브를 이용한 디스플레이 등 ‘어디에 쓰느냐’를 연구하는 데 주안을 두어야 한다는 얘기다.

아주대 임한조 교수도 “일본이 탄탄하게 기초연구를 해 오고 있어 장비재료, 계측기 등에서 앞선 제품을 선보이고 있다”며 “이대로 가다가는 결국 한국 나노산업도 반도체, 디스플레이의 경우처럼 일본의 장비, 재료에 의존해야 할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일본 나노기업 탐방: 세이코인스트루먼트나노테크놀로지(SII NanoTechnology)

일본 선토(Sunto) 오야마에 위치한 세이코인스트루먼트나노테크놀로지(이하 SII). 멀리 후지산이 보일 정도로 경관좋고 평온하기만한 이 공장에서 첨단 나노기술을 연구하고 제품을 생산하고 있는 것을 이 지역 주민들은 알고 있을까.

SII나노테크놀로지는 세이코의 장비 전문 자회사 세이코인스트루먼트(SII)가 100% 출자해 지난해 12월 설립한 나노전문기업이다. 그동안 일본에서는 대기업이 출자해서 만든 재료 전문 벤처 기업은 많았으나 이렇게 장비와 나노만을 전문으로 생산하는 중견기업이 탄생한 것은 이 회사가 처음이다.

SII의 다양한 제품군 때문에 나노에 집중을 못했던 세이코는 이를 극복하기 위해 나노전문 기업을 만들었다. 이 회사의 주력제품인 나노 계측장비 외에도 신규 사업에 진출하기 위해선 빠른 결정이 필요했다. 시장의 변화가 빠른 나노 산업에 적시에 대응하기 위해 별도의 회사로 분사, 경쟁력을 키운다는 복안이다.

히로유키 후나모토 사장사진은 “일본 정부와 독립행정법인의 지원을 받고 있으며 정부 프로젝트도 2개 이상 수행 중”이라며 “일본 나노 업계 최초로 증권시장 상장도 추진 중이다”고 말했다.

SII는 지난 2000년, 일본 최초로 세계에서 가장 작은 크기의 와인잔사진을 발표해 화재를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나노의 식각장비(FIB)를 이용 와인잔을 만들어 낸 것. 이는 일본 국민들이 나노를 이해하는데 큰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 회사는 현재 헬스케어 사업 진출을 노리고 있다. 몸의 상태를 자동으로 진단할 수 있는 장비와 혈액순환을 쉽게 체크할 수 있는 디바이스를 5월말께 선보여 이 시장에 본격적으로 뛰어든다는 전략이다. 이를 위해 베타버전도 내 놓았다.

현재 장비 기술 수준도 90나노미터(nm)에서 65nm까지 끌어 올린다는 계획이다. 내년 초 65nm 크기의 계측장비를 시장에 내 놓아 반도체, 디스프레이, 나노업체에 공급할 예정이다.

이를 위해 오야마 공장에서는 수 십 대의 장비가 동시에 제조되고 있으며 업그레이드도 지속적으로 벌이고 있다.

후나모토 사장은 “이제 나노 기술 혁신은 이제 1년 단위로 벌어지고 있다”며 “현재 역량을 바탕으로 새로운 것을 창조해내지 않으면 도태되는 시기가 왔다”고 말했다.

<일본(오야마)=손재권기자 gjack@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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