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 모호성이 중기 죽인다"
별정통신기업 A사는 지난해 기업용 PDA 상품을 기획해 내놓았다. CDMA 모듈을 장착하고 이동통신사와 재판매 계약을 해 이동전화 기능을 갖췄고, 고객사 업무에 맞는 애플리케이션을 심어 무선인터넷이나 무선랜을 통한 모바일 오피스를 구현하는 등 만반의 준비를 했다.
그러나 들쭉날쭉한 수요 예측이 골치거리였다. 정부가 PDA에 대한 사업자보조금을 허용할지, 허용한다면 범위는 어느 정도일지가 1년 내내 명확치 않았기 때문이다. 이 회사 상품 기획 담당자는 “PDA 보조금이 허용되면 우리는 자금력을 가진 대형 이통사 등에 비해 불리할 수밖에 없다”며 “그러나 보조금 허용보다 더 큰 타격은 정부가 언제 어떻게 하겠다는 명확한 시책이 없이 ‘보조금 허용’이라는 막연한 신호만 시장에 전해질 뿐이라는 점”이라고 푸념했다.
통신사업의 허가와 규제 정책을 양손에 쥔 정보통신부가 여러 경로를 통해 시장에 내놓는 공식적인 정책방침들이 이처럼 자주 뒤바뀌거나 불확실해 업체들을 혼란스럽게 한다는 지적이 만만치 않게 제기됐다.
본지가 참여정부 출범후 지난 1년간 정통부의 정책을 점검했더니 3세대 이동통신(WCDMA)은 물론 휴대인터넷, 디지털멀티미디어방송(DMB), 지상파위치정보서비스(LBS) 등 여러 서비스 정책을 놓고 입장을 변경한 사례가 적지않았다. ▶관련기사 3면
휴대인터넷은 당초 지난해 말 사업자 선정방법 등을 확정하려 했으나 올해 하반기로 늦춰졌다. 지난해와 올해 2월로 순연됐던 DMB도 올해 하반기로 늦춰졌으며 그것도 의원입법을 통한 방송법 개정이 가까스로 통과해서 가능해졌다.
지상파LBS 주파수 할당 계획은 지난해 4월과 8월에 순연돼 자취를 감추는 듯 하다가 올초 300㎒대역 주파수 용도 수요조사와 할당공고를 통해 슬그머니 되살아났다. 지난해 하반기 상용서비스 시늉만 낸 WCDMA와 1년동안 검토에 머문 단말기 보조금 금지 예외조항 신설도 여전히 진전된 게 없으며, 작년 말 발표한다던 상호접속료 산정 개선안도 깜깜 무소식이다.
이동전화 번호 통합 방침은 되레 번복됐으며 통신사업자 분류제도 개선, 통신시장 경쟁상황평가제도 개선, 주파수경매제 도입근거 마련, 무선랜 로밍 등은 2년째 정책 예고만 되풀이했다.
정통부 관계자들은 이에 대해 시장 경쟁 환경, 투자 환경 등 고려할 변수가 많아 시행에 시간이 걸리며 이따금 수정되는 경우가 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지연과 번복이 한두 건 예외적으로 발생하는 게 아니라 정책 전반에 만연해 있다는 게 업계의 시각이다.
“중소기업 입장에선 정부 시책 하나하나가 생사가 달린 문제입니다. 정부가 명확한 신호를 내지 않거나 공식적인 입장을 바꾸는 것은 기업이 허위공시를 내 투자자들을 깡통차게 하는 것과 똑같은 일 아닙니까.” A사 관계자의 항변이다.
<신화수기자 hsshin@etnews.co.kr><김용석기자 yskim@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