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년 전 미국 본사에서 연수할 기회가 있었다. 광고 산업의 역사, 시장의 크기, 전문성의 정도, 전문가에 대한 대우 등 우리와는 사뭇 다르고 내 눈에 너무 부럽게 보이는 요소가 많았다. 그 중 유독 관심을 끈 것은 광고주와 광고대행사가 장기간 지속하고 있는 파트너십이었다. 필자가 몸 담고 있는 DDB월드와이드만 해도 버드와이저 맥주, 존슨 앤 존슨, 스테이트 팜 인슈어런스 등 10∼20년이 된 광고주가 적지 않았다.
DDB시카고의 한 카피라이터는 스테이트 팜 인슈어런스를 30년 가까이 담당하다가 은퇴했다. 그에 대해 가장 고마움을 표시한 기업도 역시 스테이트 팜 인슈어런스였다.
얼마 전 일본지사의 부사장과 대화를 가질 기회가 있었다. 일본 제2의 대행사이자 100년이 넘는 전통을 자랑하는 하쿠호도에서 직장생활을 시작한 이 사람은 일본 시장은 광고주와 대행사간의 파트너십이 부족한 듯 하다고 말했다.
주요 광고주들은 모두 하쿠호도·덴츠 등 4∼5개 대행사를 염두해 두고 있으며 3∼6개월마다 경쟁을 통해 대행사를 새롭게 정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장기적인 브랜드 관리에는 신경을 못쓰고 오로지 단기 성과에 집착하게 된다는 설명이었다.
치열한 경쟁, 합리성, 개인주의로 대별되는 미국에서는 장기적인 파트너십이 가능하고 종신고용, 집단주의 등의 색채를 가진 일본에서는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이 모순되는 것 아닌가 싶었다. 그러나 냉정히 생각하면 미국의 마케터들이 장기적인 파트너십의 장점을 깨닫고 실천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국내에서는 이 두가지 경향이 모두 나타나고 있다. 장기적인 파트너십이 행해지는 곳은 주로 재벌계열 대행사와 관련 계열사들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단기적인 관계의 연속으로 점철된다. 장기적인 관계가 지속되기 위해서는 광고대행사가 그만한 성과를 내고 서비스도 뒷받침돼야 한다고 누구나 반문할 수 있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이제 한국의 광고산업도 세계 10위권으로 성장했고 그 발전 속도와 역동성에서는 어느 나라에 뒤지지 않는다는 점을 감안할 때, 좀 더 시간을 갖고 기회를 주는 자세가 바람직하지 않나 싶다.
필자의 경험으로도 광고대행사가 파트너로서 광고주에게 제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1년 정도의 기간이 필요하다. 이 기간 동안 광고대행사는 광고주의 비즈니스, 철학, 조직문화 등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 성공적인 캠페인, 성공적인 브랜드 관리는 파트너십에 의해 가능해지는 것이다.
브랜드는 단기간에 만들어지는 기업자산이 아니다. 그러나 브랜드가 망가지는 것은 그리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다.
우리는 지금 브랜드의 시대에 살고 있다. 마케터는 혼자서 브랜드 빌더가 되기 힘들다. 파트너가 필요한 것이다. 당신이 만약 마케터라면 10년지기(十年知己) 마케팅 파트너(광고대행사)를 갖고 있는지 자문해 보기 바란다.
◆한기훈 리앤디디비 부사장 khhan@leeddb.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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