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이공계와 김태유식 해법

 "각 정당이 이공계 출신 5명 이상을 비례대표에 포함하도록 압력(?)을 넣고 있다"는 오명 과기부장관의 말이 지난주 화제였다. 이공계 공직확대를 강조한 진반농반의 발언으로 해석됐다. 주말엔 올해 의사시험에 의대생 만큼이나 많은 이공대 학생들이 몰려 들었다는 언론 보도가 관심을 모았다. 이번에는 흥미거리 수준을 넘었다. 참담한 이 나라 이공계의 현실을 목도했다.

 노무현 정부가 추진한 가장 큰 개혁은 ’이공계 공직진출 확대 방안’이다. 물론 우리 사회의 부패구조를 타파하고 권력기관에 대한 대대적 개편이 있었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왜곡된 현상의 "제자리 돌려놓기" 성격이 강했다. 진정한 의미의 개혁적 철학과는 거리가 있다. 그런 점에서 ’이공계 출신의 공직진출을 제도적으로 보장한다’는 계획만큼 폭발적이지는 못했다.

 한두명 뛰어난 인물의 수혈이 아닌 공직 사회의 세력 대체를 추진하다보니 격렬한 찬반논쟁이 이어졌다. ’위헌적 발상’에서부터 고시합격자의 몇 퍼센트를 이공계에 할당한다고 문제가 해결되겠느냐는 비판이 거셌다. 반대편도 비슷했다. 절대적 지지자도 엄존했지만 현실화에 대한 회의가 깔린 명분에 대한 비판적 지지, 내지는 소극적 지지가 많았다.

 이면에는 찬성과 반대론자 모두 이공계 공직진출 확대 방안이 혁명적 발상에 가깝다는 인식이 도사리고 있다. 행정고시와 기술고시를 통합하고 3급 이상 고위공직자의 행정, 기술직급을 없애는 방안은 건국 이후 처음 제시되는 것이다. 그만큼 작금의 이공계 현실이 다급하다는 것을 반증하고 있다. 오죽하면 이같은 ’핵폭탄’까지 동원했을까.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단 사람은 김태유 전 청와대 과기보좌관이었다. 대학교수 출신의 전형적 선비 타입이지만 강직하고 추진력까지 갖춘 인물이었다. 그의 표현대로 이공계 공직진출 확대 방안은 조선조 실학자들의 개혁적 마인드, 사명감과 비슷한 출발점이었다. 소신과 원칙을 갖고 밀어 부쳤고 노무현 대통령도 힘을 실어 주었다. 여론도 나쁘지 않았다. 덕분에 수많은 내부의 견제와 반대에도 정책의 틀을 잡았다. 지금도 대통령은 기회있을 때마다 이공계의 역할을 강조한다. 개각에서도 이공계 출신을 발탁했다.

 하지만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이공계 공직진출 확대 방안은 김태유 보좌관의 사임과 함께 잠잠해졌다. 그의 정확한 경질 이유는 모르겠지만 어느새 이공계 문제도 동시에 뒷전으로 밀려난 것처럼 보인다. 과기자문회의가 지난해 절충형 공직확대 방안을 확정했을때부터 개혁적 대책은 이미 빛이 바랬다. 심지어 최근에는 관가를 중심으로 이공계 공직진출 확대 방안은 "물건너 갔다"는 이야기까지 나돈다.

 추진 주체는 바뀌었더라도 이공계 대책의 원칙과 명분은 이어져야 한다. 공직진출을 늘린다고 벼랑에선 이공계가 회생하리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 중요한 것은 정부가 국가 경영 아젠다로서 비젼을 제시하는 일이다. 사회 분위기를 바꾸고 고정관념을 깨기 위해서라도 정부의 일정한 역할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래야 기업과 학교의 변화가 뒤따른다.

 청와대 보좌관과 과기, 산자부장관이 모두 새로운 인물로 채워진 만큼 이공계 대책의 발전적 모색이 시급하다. 좀더 정교하고 치밀하면서도 부작용을 줄이는 정책적 대안이 기대된다. 이 척박한 환경에서 황우석 교수 같은 세계 과학계의 슈퍼스타가 탄생했다면 정부가 조금만 신경쓰면 수십, 수백명의 또 다른 황교수가 배출될 것이다.

<이택 편집국 부국장 etyt@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