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신년 새해가 시작됐다. 한 기업인이 오늘날 한국의 상황을 120년전 구한말 갑신년(1884년)에 비유한 적이 있다. 급격한 국제정세의 변화 속에서 올바르게 대응하지 못하고 우리끼리 극한적인 반목과 투쟁만 일삼다 보면 또 다른 국가적 위기가 올 수도 있음을 경고한 말이다.
올해 각종 경제 전망 자료를 보니 대부분 지난해보다 긍정적인 신호가 많은데 비해 정치는 부정적인 견해가 주를 이루고 있다. 경제는 먹구름이 서서히 걷히고 있으나 천둥과 번개를 동반한 소나기가 나타날 수도 있는 날씨로 요약된다.
이런 근거로는 우선 세계경제의 회복을 들 수 있다. 미국과 유럽 경제는 회복조짐이 나타나고 있고 중국도 높은 성장세가 예상된다. 벤처 관련 청신호는 미국 IT산업의 회복 전망과 중국의 IT 분야 투자가 늘어날 것이라는 점이다. 미국은 PC와 소프트웨어, 휴대형 단말기, DVD, 비디오게임, 디지털 카메라의 수요 증가에 따라 반도체의 수요도 늘어날 것이다. 중국은 침체된 IT산업을 활성화하기 위해 지난해 국가주도로 대대적인 투자를 계획했지만 ‘사스’로 본격화되지 못했다. 중국은 행정·금융·교육·의료 분야의 정보화에 적극적으로 투자해 국가 경쟁력을 높이고 관련 기술과 산업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한 국가 전략을 수행해 나갈 것이다. 따라서 올해의 IT는 미국과 중국이 견인차 역할을 할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이를 기회로 삼는 전략이 필요하다.
국내 경제성장률은 경제연구소에 의하면 가장 보수적인 전망이 4.3%, 가장 낙관적인 전망이 5.8%다. 지난해에 비해 성장세가 회복될 것이라는 데는 의견이 일치하고 있다. 세계 경제 호전에 힘입어 수출이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그동안 위축됐던 설비투자도 늘어날 것으로 내다 보고 있다.
그러나 수출주도에 의한 국내경기 회복은 당분간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내수가 다소 좋아질 것이라는 관측이 있지만 경기 불확실성에 따른 고용불안, 가계신용 축소에 따른 실질구매력 둔화 등으로 전반적인 소비심리 회복을 기대하기는 쉽지 않다. 국내 수요침체는 소비의 양극화 현상을 낳아 혁신제품에 대한 수요 증가를 크게 기대하기 어렵다. 따라서 벤처기업은 당분간 내수시장의 회복을 기다리면서 해외시장을 겨냥한 마케팅 활동을 강화해야 할 것이다. 해외 틈새시장을 찾아 공략하기 위한 전략을 지속해야 한다.
주요 성장분야로는 정부가 맞춤형 교육과 관련 기술개발을 중점 지원할 예정인 e러닝이 있다. 디지털 컨버전스와 유비쿼터스 분야의 성장도 점쳐진다. 올해부터 큰 폭의 성장세가 예상되는 산업은 디지털TV 방송, 차세대 이동통신, 디지털 콘텐츠, 디스플레이 산업 등이다. 디지털TV는 디지털 컨버전스 가속화와 디지털 방송의 본격화로 시장 주도권 확보를 위한 경쟁이 매우 치열해질 것이다. 콘텐츠 분야는 IT와 문화·교육·의료 등 다양한 콘텐츠가 결합될 것이다.
제도적·환경적 측면에서 보면, 벤처 인수합병(M&A) 관련법규의 정비로 산업차원의 구조조정이 이루어지고 경쟁 강도가 완화되면서 선도기업을 중심으로 수익력이 회복될 것이다. 결과적으로 기업가치가 증가하면 코스닥 시장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돼 벤처 투자심리 회복도 기대된다.
그러나 정부가 추진중인 거래소 통합이 새로운 변수가 될 것이다. 재경부의 방안은 코스닥 시장을 통합거래소 내에서 독립된 사업본부로 운영해 코스닥의 자율성을 최대한 보장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통합이 코스닥의 정체성을 상실하게 해 기술집약형, 성장형 기업에 대한 자금조달 기능이 약화될 것이라는 우려가 있다. 당분간 거래소 통합은 벤처금융 분야에서 불확실성 요인으로 작용하게 될 전망이다.
2004년은 불확실성의 터널속에서 롤러코스터 타기를 벗어나는 해가 될 것으로 보인다. 긍정적인 면에서 본다면 모든 악재는 다 드러났고 더이상 돌발 상황만 발생하지 않는다면 불확실성 요소는 줄어들고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자신감을 가지고 도전하는 한해가 되기를 바란다.
◆ 한정화 한국벤처연구소장 hanjh@hanyang.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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