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돌이 맹인검객 ‘자토이치’의 이야기는 사실 기타노 다케시의 것이 아니다. 일본 사람이면 누구나 알고 있는 ‘자토이치’는 원래 TV 시리즈였다. 그것도 1962년부터 1989년까지 30여년 가까운 세월 동안 신타로 가츄 등의 배우에 의해 26번이나 만들어졌다. 즉, TV를 통해 너무나 익숙해져 있어서 일본인들은 ‘자토이치’ 하면 곧 신타로 가츄가 떠오르는 것이다.
베니스 영화제 감독상을 받은 ‘자토이치’는 토론토 영화제에서는 관객상을 수상했다. ‘자토이치’는 베니스 감독상과 토론토 관객상이 증명해 주듯이 작품성과 흥행성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은 기타노 다케시 감독 최고의 상업영화다.
‘자토이치’ 속의 자토이치는 TV시리즈의 자토이치와 많이 다르다. 우선 머리 색깔이 금발이다. 막부시대를 배경으로 한 기존의 자토이치에서 자유로워지겠다는 기타노 다케시의 극단적 설정이다. 시대극이지만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활달함을 갖고 전개된다. 기타노 다케시는 지금까지 ‘소나티네’나 ‘하나비’ 같은 그의 영화에 자주 등장하는 야쿠자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다. 절제된 감성 속에 비장미 넘치는 이야기를 풀어 놓는 것도 여전하다. 정중동, 고요한 침묵이 흐른 뒤 느닷없는 폭발의 액션장면도 ‘자토이치’ 속에는 계속된다.
그러나 무엇인가 다르다. 그것은 해학이다. 지금까지 단편적으로 끼어들었던 웃음의 코드는, ‘자토이치’에 이르러서 훨씬 전면에 배치된다. 폭력의 미학이 폭력의 해학으로 승화되었다는 것은 과장이 아니다. 마치 중세극에서 파스(farce)적 요소가 강조되듯이, 세익스피어 비극을 보면 비장미 넘치는 암울한 장면에서 가끔 긴장감을 일거에 무너뜨리는 웃음의 코드가 등장하듯이, ‘자토이치’에서 해학적 요소는 매우 중요한 위치를 갖는다. 그것은 삶과 시대를 보는 감독의 눈이 훨씬 여유롭고 폭넓어졌다는 것을 뜻한다.
자토이치는 맹인이고, 도박사며, 안마사다. 이 세 가지가 자토이치를 규정하는 외적 요소, 대중에게 노출된 것이라고 한다면, 숨어있는 한 가지는 그가 뛰어난 검객이라는 것이다. 자토이치는 자신의 검술 실력을 감추고 있다. 그가 적들을 무자비하게 베는 것은 선한 사람들을 위해서다. 그러나 자토이치는 영웅과는 거리가 멀다. 그는 단지 악을 제거하기 위해 검을 휘두른다. 다른 목적은 없다. 이 순수의지가 좋다.
검술의 달인 자토이치의 숙적으로 등장하는 하토리(아사노 타다노부 분)의 캐릭터를 주목해야 한다. 하토리는 은퇴한 관료로서 병든 아내와 함께 살면서 아내를 위해 악당 긴조의 검객으로 고용된다. 관객들은 하토리의 캐릭터에 연민을 느낀다. 하토리는 악 그 자체는 아니다. 그에게 생존의 대가가 주어졌다면, 그는 기꺼이 마을 사람의 이익을 대신해서 검을 사용했을 것이다.
긴조에게 부모가 몰살된 오키누와 오세이 남매는 게이샤로 일하면서 부모의 원수를 갚기 위해 기회를 엿본다. 즉 오키누, 오세이, 자토이치/긴조, 오기, 하토리의 대립적 구조는 선악의 대립이다.
특히 ‘자토이치’에서 돋보이는 것은 리듬감이다. 모든 휼륭한 감독들이 그렇듯이 기타노 다케시의 영화적 리듬감도 아주 뛰어나다. 중간에 논에서 일하는 농부들이 곡괭이 삽 등으로 일하는 장면의 리듬감은 그것 자체가 넌버벌 퍼포먼스이다. 이 신은 몇 번 더 변주된 후, 마지막 엔딩신에서 대폭발한다. 나막신을 신은 수많은 출연자들이 무대 위에서 펼치는 화려한 탭댄스는, 악을 멸하고 선이 승리하면서 평화가 찾아오는 마을의 축제적 성격을 화려하게 시각적 음악적으로 형상화한다.
영화평론가·인하대 겸임교수 s2jazz@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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