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주도 휴대인터넷 기술표준 문제 없나

 국내 휴대인터넷 기술 표준화에 외국업체들이 지대한 관심을 보이는 것은 말 그대로 추후 있을 국제 표준에서 주도권 확보를 의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IT 기술과 인프라 측면에서 앞서 있는 우리나라 기업을 우군으로 끌어들일 경우 국제 휴대인터넷 표준에서 한 발 앞설 수 있게 된다. 나아가 CDMA의 사례와 같이 기업과 국가의 이해관계 또한 직결돼 있다. 그런 점에서 작년 10월 열린 한·미 통신전문가회의에서 미 무역대표부(USTR)가 휴대인터넷·위치기반서비스(LBS)의 독자 기술표준화를 문제삼았던 것은 음미해 볼만하다. 당시 미 대표단은 우리 언론에 실린 TTA 사무총장의 발언을 놓고 “정부가 표준화에 영향을 미치는 것 아니냐”는 추궁성 해명을 요구하기도 했다. 우리 대표단은 TTA의 표준화 절차가 얼마나 공정한 것인지 설명하느라 진땀을 빼야 했다.

 ◇배경=표준을 놓고 통상마찰이 생기는 것은 기술선점이 곧 시장선점으로 이어지는 IT산업의 특성에 따른 것. 특히 무선통신의 경우 3세대(G) 이동통신과 무선랜 이후를 놓고 치열한 경합이 벌어지고 있다. 미국 표준기구인 IEEE에서는 플라리온 등 벤처기업 주도의 표준그룹 의장 선출을 반대측이 무산시키기도 했다. 휴대인터넷은 4G의 전단계로 받아들여지면서 기술표준화 경쟁이 가열됐다. 이에 따라 플라리온·어레이콤·퀄컴 등 외국업체들이 국내 표준화 과정에 직접 참여할 정도로 관심을 보이면서 국내 거대 기업인 삼성전자와 ETRI가 주도하는 HPi 기술과 경쟁하는 과정에서 마찰이 생긴 것. 당초 어레이콤·플라리온 등의 기술을 적용해 조기상용화를 주장한 KT 등 통신사업자가 HPi로 돌아서는 바람에 우리 시장을 통해 세 우위를 구축하려던 플라리온의 계획에 차질을 빚게 됐다. 회사측은 “대부분 HPi진영인 가운데 어떻게 해볼 수 없었다”고 밝혔다. 하지만 전술적 측면도 강하다는 것이 업계의 시각이다.

 ◇공정성 문제 있나=표준화절차 공정성 문제로 비화될 조짐이지만, 이는 설득력이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기술표준은 회원사의 이익을 대변하는 것이 원칙. 따라서 민간기구인 TTA 회원사들이 원하는 기술로 정하게 된다. TTA의 설명에 따르면, PG05 산하 워킹그룹은 만장일치제이며, 총회는 과반수 이상 득표로 결정하도록 하고 있다. 회원사의 구좌별(회비액수별)로 투표권이 차등화되는 TTA총회에 비하면 오히려 세가 작은 외국업체에 유리한 구조다.

 현재 PG05참여 45개사중 외국업체는 5개사. 국산기술인 HPi를 표준으로 채택하도록 정부가 입김을 불었다면 절차의 공정성이 불거질 우려가 있다. 그러나 이에 대해서도 사실상 문제는 아니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과거 미국이 유럽의 WCDMA 표준 단일화에 항의했으나 이를 관철시키지 못한 것도 WTO·GATS 기본통신협정에 단일 기술표준 제정이 협정위반이라고 판단할 규정이 없었기 때문이다. ITU 산하 위원회 의장을 맡고 있는 전파연구소 위규진 박사는 “유럽 표준기구인 ETSI는 각국 정부의 투표권이 가장 크고 미국의 경우도 FCC 등 정부가 기술표준에 관여하는 등 표준정책은 중요한 국가기술정책으로 다뤄지는 게 현실”이라며 “TTA의 절차와 구조 등은 이미 국제기준을 만족시키는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이한영 KISDI연구원은 “위피의 사례처럼 무역장벽을 이유로 한 통상마찰의 가능성은 남아있다”며 “표준결정에 합리적인 근거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제시했다.

 ◇과제와 전망=공정성 논란과는 별개로 세계시장을 전략적으로 고려한 표준화를 염두에 둬야 한다는 지적이다. 우리만의 독자표준은 사실상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한국을 포함해 미국·일본·유럽의 메이저 사업자를 끌어들여 주류를 형성하려는 세계적인 기업들을 주시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플라리온의 탈퇴에 대해 업계의 한 관계자는 “협력을 통해 국내 표준화에 국제표준을 보다 많이 연계시킬 기회를 잃은 점이 아쉽다”면서 “표준을 만들더라도 기술의 상대적 비교보다 해외시장을 최우선으로 고려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국산기술 위주로 표준이 만들어지더라도 국제표준과의 연계를 전제로 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

 홍대형 PG05의장은 일단 “기술표준은 국내 서비스와 세계시장 진출을 고려한 참가 산업체의 의견을 존중해 기술중립적으로 결정한다는 방침”이라고 밝혔다.

 <김용석기자 yskim@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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