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 매개로 산업계 전반 확산
‘협업(collaboration).’
2만달러시대를 견인할 한국경제의 새해 ‘경영 키워드’로 떠오르고 있는 단어다. 산업 전반에 확산되고 있는 기업간 협업 움직임은 특히 IT를 매개로, 대기업이 중소기업을 끌어안는 형태로 이뤄지고 있어 정보화 불균형 해소에도 크게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더욱이 정부와 경제단체들도 올해 대기업과 중소기업간 협업 환경 조성을 적극 지원할 계획이어서 협업을 통한 기업경쟁력 제고 분위기는 산업계 전반으로 확산될 전망이다.
◇협업이 부상하는 배경=협업은 이미 90년대 후반부터 주요 선진국 기업들을 중심으로 생존 전략으로 활용돼 왔다. 그러나 국내 기업들의 협업은 대외적 명목 수준에 그칠 뿐 종속적인 갑을관계·신뢰 및 투명성 부족 등으로 실질적인 측면에서는 한계를 보였다. 협업이 다시 부상하는 이유는 ‘글로벌 무한경쟁시대에는 나홀로 성장에 한계가 있다’는 인식의 확산이다. 특히 최근 수년간 산업계 일부에 구축돼 온 IT인프라가 올해 본격 도입 및 활용기를 맞으면서 시스템적인 협업환경이 안정되고 있는 점도 주요 배경이 되고 있다.
◇중소·벤처기업으로 확산=대기업은 물론 중소·벤처기업에 이르기까지 협업 움직임이 활발하다. 삼성그룹은 지난해 말 ‘상생경영’의 일환으로 향후 5년간 협력사에 시설투자비 무이자지원, 제조기술과 경영기법 교육 등에 1조원을 지원키로 했다. 삼성측은 “삼성전자의 경우 협력사의 발전 없이는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하는 것이 불가능한 만큼 협력업체의 수준을 높이기 위해 지원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특히 삼성은 협력사를 포함한 중소기업의 정보화수준 향상이 산업의 협업시스템 고도화에 필수적인 요소라는 판단아래 중소기업협동조합중앙회와 함께 전체 중소기업 정보화 확산사업을 올해 본격 추진한다.
LG전자도 1차 벤더 중심으로 지난해부터 추진해 온 협력업체와의 협업시스템 구축 사업을 올해 협력업체 전반으로 확산해 나가기로 하고 올해에도 정보화 추진 여력이 없는 협력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자금 지원을 검토하고 있다. LG전자는 이와 함께 올해 25개 해외법인이 정보공유는 물론 R&D 협업까지 가능하도록 협업시스템을 구축키로 했으며 중장기적으로는 70개 해외법인 모두가 협업 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한다는 계획이다.
중소·벤처기업들도 협업을 통해 시너지 창출에 나서고 있다. MP3플레이어업체인 넥스트웨이는 칩제조회사인 텔레칩스와 같은 연구실에서 공동 연구에 돌입, 고정관념을 깬 차세대 MP3플레이어 ‘호스트 MP3’를 개발했다. 두 회사는 이같은 협업 관계를 올해 한층 강화해 독자 개발에 따른 한계를 극복해 나간다는 전략이다. e마켓플레이스인 아이마켓코리아도 고객사·공급사 등 협력사와 트리플윈(triple-win)을 달성한다는 목표다. 이 회사는 지난해 하반기부터 핵심공급사들을 대상으로 ‘통합공급사’로 선정하고 서비스수준협약(SLA)을 맺고 있으며 올 초부터는 구매사들과 SLA를 체결할 계획이다.
◇정부와 경제단체도 협업환경조성에 관심=산자부는 올해 중소기업 정보화지원사업의 핵심을 협업에 두고 있다. 개별 중소기업정보화의 다음단계로 대·중소기업 또는 기업간 연계를 상정해 놓고 있는 산자부는 올해 50억원의 예산을 투입해 프런티어 기업 약 350개사가 구매·조달 등의 업무를 타기업과 연동하는 환경을 구축할 수 있도록 지원할 계획이다. 또 기업간 설계분야 협업 환경을 조기에 정착시키기 위해 올초 생산기술연구원을 중심으로 우선 금형관련업체들의 ‘도면 협업 시스템’ 구축사업을 진행하고 이를 점차 타 분야로 확대해 나가기로 했다. 전경련도 올해 대기업과 중소협력사간 협업을 체계화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보고, ‘협력사에 대한 대기업의 지원실태’를 파악해 회원사를 중심으로 협업문화 형성에 필요한 정책 및 과제를 마련할 계획이다.
◇향후 전망=협업 분위기는 기업들이 핵심역량에 자원을 집중하고 비핵심부문은 외부로 돌리는 ‘선택과 집중’ 개념과 일맥상통한다. 넥스트웨이의 김명석 이사는 “21세기 첨단제품은 수백에서 많게는 수십만개의 부품으로 구성돼 있다”며 “핵심분야에서 획기적인 신기술을 개발하더라도 나머지 부품들이받쳐주지 못한다면 의미가 없다”고 협업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여기에 대기업과 중소기업간 양극화 현상이 심화된 것과 외부뿐만 아니라 내부고객의 중요성이 날로 높아진 것도 협업을 확산시키는 요인으로 분석되고 있다. 김종길 덕성여대 사회학과 교수는 “지난해 화물연대 파업으로 기업들이 막대한 피해를 입으면서 협력사 등 내부고객에 대한 중요성이 다시 한번 부각됐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이같은 협업 분위기는 올해를 기점으로 전산업으로 크게 확산될 것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삼성경제연구소 이범일 상무는 “협업이 효과적으로 이뤄질 경우 전체적인 경쟁력 상승 효과를 본다는 인식이 늘어나면서 협업이 하나의 트렌드로 자리를 잡을 것”으로 내다봤다.
<심규호기자 khsim@etnews.co.kr> <김준배기자 joon@etnews.co.kr>